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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사회공헌.. '불우'이웃돕기는 이제 그만.....

Mr Yoo 2017. 12. 10. 21:39




기업사회공헌.. 이제 '불우' 이웃돕기는 그만...



#1. 그 '불우'했던 친구는 잘 살고 있으려나?


중학교 1학년 때 일입니다. 중학교 1학년때 저는 반에서 반장도 아니고 부반장도 아닌 '총무'를 했습니다. 그래서, 학급비도 걷고 선생님 심부름도 하고, 학교 잡일(?)도 많이 했습니다. 당시 겨울 방학 전에 학급 총무에게 주어지는 학교 잡일 세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크리스 마스 씰을 파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국군장병 위문편지와 위문품을 걷어 내는 것이었고, 마지막 하나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하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 마스 씰은 돈 있는 애들만 사는 것이었으니까 별 문제가 없었고.. 위문편지와 위문품은 대충 노트 한장 찢어서 '국군장병 아저씨 고맙습니다' 라고 써내면 그만이었는데, 문제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기억엔 1인당 500원씩 걷어서 총 2만5천원을(한 학급에 50명 이었음..) 담임 선생님에게 제출해야 했습니다. 이건 솔직히 부담 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이야 500원이 껌 값도 안되지만.. 그때는 짜장면 한 그릇이 천원, 천오백원 정도 했으니까 시골 촌동네 중학생에게는 꽤 큰돈이었습니다.


성금을 제출 해야 할 날이 다가오자 매우 매우 '성실'한 총무였던 저는 우리반 아이들에게 성금모금을 독촉하러 다녔습니다. 친구 몇 놈은 집에서 그 돈을 받아와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벌써 군것질을 해 버린 상태였으니 모금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 중에 유독 학급비도 안내고 성금도 안내고, 학교에 준비물도 가져오지 않는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저는 그 친구에게도 성금 독촉을 했습니다. 몇번 독촉하는 와중에 그 친구가 성질을 냈고, 급기야 서로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도.. 그 친구는 성금을 내지 않았습니다.


2만5천원을 다 채우지 못한채로 담임선생님께 성금과 성금을 내지 않는 친구들 명단을 제출했습니다. 며칠 후 방학식 날.. 뜬금없는 장학금 수여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참고로 그때는 중학교가 의무교육이 아니어서 학비를 내야 했습니다. 추운 겨울 날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인 가운데 학년별로 장학금을 받는 아이들의 이름이 불려졌습니다. 그 이름 중엔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지 않아 저랑 주먹다짐을 했던 그 친구의 이름도 있었습니다.


장학금의 명칭은 "불우학우 장학금"..  장학금 증서를 읽는 교무주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운동장 끝까지 울려퍼졌습니다. "이 학생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학업과 학교 생활을 성실히 수행하였기에......" ... 저는 그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무주임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 제 가슴을 또 때렸습니다. "이 장학금은 여기 모인 전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정성스럽게 모은 성금이니, 장학생들은 고마운 마음을 갖고 학업에 더욱 정진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불우학우 장학금을 받은 그 친구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수소문을 해보니 겨울방학동안 가출을 했다고 합니다. 개학 며칠 후 학교 수업이 끝나고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 몇명, 그리고 저는 그 친구 집을 물어 물어 찾아갔습니다. 산 밑에 궁색한 움막이 한채있었고, 움막안에는 빈 소주병만 뒹굴고 있었습니다. 나물과 약초 캐는 일을 한다고 하는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던 그 친구의 자취라곤 아궁이 근처에 널부려져 있는 거의 찢어진 교과서들이 전부였습니다. 그 이후론 그 친구의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2. '불우'라는 명칭말고 쓸 수 있는 다른 말을 알려주세요. 

        

며칠 전 출근 길 전철안에서 페이스 북을 스크롤 하고 있는데, '불우' 라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제 지인의 페북 친구분이 올린 글이었는데 지인의 폐북 계정을 타고 저에게까지 전달되었습니다. 글의 내용은 사회복지대학원 현장실습에서 불우청소년들을 알게 되었고 그 청소년들을 위해 앞으로 이런 저런 일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내용이었습니다. 거기까지는 뭐.. 좋았는데, 본인이 실습한 복지시설의 이름이 밝혀져 있길래..  제가 이런 댓글을 달았습니다. "불우 ......청소년"


금방 그 답글에 답글이 달렸습니다. "불우 청소년이란 표현이 좀 그렇다면 다른 좋은 말을 좀 알려주시죠?" ... 제가 또 답글을 달았습니다. " '불우'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면 안될까요? 꼭 불우란 표현으로 아이들을 구분해야만 할까요?" ... 또 다시 답글.. "그래도 불우를 대신할 수 있는 다른 좋은 표현을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 저의 답글 "불우 청소년 말고 그냥 청소년들을 돕고 싶다고 하시면 안될까요? 저는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꼭 불우라는 명찰을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또 다시 답글 "그러니까... 불우대신 쓸 수 있는 말을 알려주세요.. 자꾸 말을 돌리시네요" ... 그렇게 정말 뱅뱅 돌다가 페북을 끄고 말았습니다.





#3. '불우'이웃돕기.. 라고 해야 모금이 잘됩니다. 

  

10여년전 제가 모금회에서 일할 때에도 '불우'란 표현사용에 대해 논쟁이 있었습니다. 모금회가 아무리 모금이 중요해도.. '차별적이며 수혜자를 대상화하는  '불우' 란 용어를 쓰면 되겠느냐' 하는 논쟁이었습니다. 정확히 기억 나지는 않지만...  논쟁 석상에서 어떤 직원이 '불우' 란 표현을 좀 쓰더라도 어려운 형편을 시각적, 감정적으로 더 부각시켜야 사람들이 도와야 겠다는 마음이 생기고, 그래야 모금이 더 많이 되고.. 또 그래야 우리가 돕는 사람들도 많아지지 않겠냐는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 논쟁이 있은 후에 '불우이웃 돕기 성금' 이란 표현에서 '이웃사랑 성금' 으로 단어가 바뀌었습니다. 




#4. 엘리베이터에 붙은 "불우이웃돕기 장터"  

    

퇴근 길.. 집으로 올라오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부녀회 주최 "불우이웃돕기 김장재료 장터" 가 열린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정확히 수익금을 어디에 쓴다는 말은 없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날이 추워지자 마자 전국 방방곡곡 여기저기서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목소리와 문구, 현수막들이 넘쳐납니다.  이렇게 불우이웃을 돕는 일을 해마다 전국민이 나서서 하는 나라가 전 세계에 어디에 또 있을까 싶습니다. 지난 몇십년을 겨울마다 불우이웃돕기를 했는데.. 왜 그 '불우' 이웃은 점점 줄지는 않고 늘어만 간다고 하는 걸까요?


#5. 불우이웃 돕기방식으로는 해결이 안된다.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은 "불우"란 용어를 쓰지 않았으면 좋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불우"하다는 구분은 누가 어떻게 하는 걸까요? 단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굳이 불우란 표현을 사용할 필요없이 '이웃사랑'이란 표현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사회의 이웃사랑 방식은 대부분 경제적인 것이며, 또한 대부분 일시적이고 휘발적입니다.  따라서 성금을 내는 사람에게는 일시적으로 자기 만족의 효과가 있겠지만, 실제 수혜자들의 삶의 변화에는 별 효과가 없습니다. 1998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설립되고 거의 20년 동안 5조원에 가까운 불우이웃돕기 성금이 모금되었고, 그외 전국 수천개의 사회복지단체와 시설들을 합하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모금되어 김치로, 연탄으로, 겨울 옷과 이불로, 장학금과 생활비로 지원되었지만 여전히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성금을 모아 나눠 주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현재 이 방식이 맞는 거겠지만,  소위 '불우' 한 이웃들의 삶이 보다 나은 상태로 변화되기를 바란다면 과연 지금의 방식이 적절한 것일까요?  뭔가 다른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요? 불우이웃의 문제는 사회구조, 복지제도, 잉여자본의 배분방식에 있는데 시민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심금을 울려서 주머니 푼돈을 거두고, 기업들의 옆구리를 찔러서 수천, 수백, 수억원을 거둬들이는 이 일을 지속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불우이웃의 불쌍한 삶을 행복하게 개선하는 것' 이 진정한 사회복지단체들의 미션이라면 그들은 거리모금이 아니라, 재벌개혁과 세제개혁, 사회복지제도와 복지 서비스 전달방식의 개선을 위해 정부와 국회로 가야하지 않을까요? 기업이 정말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회공헌을 하고 싶다면 행사비와 홍보비가 훨씬 많이드는 그래서 배보다 배꼽이 몇 배 더 큰 사회공헌 이벤트는 그만 해야 되는 게 아닐까요?


2017년 12월 금요일 퇴근길에 '불우이웃을 도웁시다' 라고 외치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 목소리를 애써 피해 가려다 우리 아들이 다니는 중학교 교복을 입은 녀석들이 종을 흔들고 외치는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천원짜리 한장을 모금함에 얼른 넣고 지나옵니다.  2018년부터는 이 방식에서 조금 앞으로 나갔으면 합니다.


우선... "불우"란 표현은 쓰지 않는 것 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