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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사회공헌담당자 나영훈 - POSCO 사회공헌팀 나영훈 차장

by Mr Yoo 2013. 11. 10.

 

 

기업사회공헌담당자 - POSCO 사회공헌팀 나영훈차장

 

2013년 11월8일 금요일 저녁.. 몇번의 약속을 미루고 미룬 끝에.. 드디어.. 그를 만나러 가기위해 회사를 나섰다. 예쁜 처자를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닌데.. 마음 속에 약간의 들뜬 설레임이 있었다.... 금요일 퇴근시간... 회사 앞 도로가 꽉 막혀있었다.  택시를 타자니.. 돈이 없고... 버스를 타자니.. 양재 SPC 사옥에서 대치동 포스코 사옥으로 바로 가는 게 없네... 전철은 또 애매하고... 시계를 보니.. 6시20분이었다... 부지런히..걸어가면 약속시간인 7시까지 갈 수 있겠다 싶어... 힘차게 팔을 휘두르며... 그를 향해 걸어 갔다.

 

7시 10분... 포스코 사옥 뒷편.. 순대볶음 집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그를 처음 만난 건.. 나영훈 차장이 아닌.. 나영훈 과장이었던 2010년 여름.... 함께 일하던 동료가 정말 괜찮은 기업사회공헌담당자가 있으니.. 꼭 만나봐야 한다고 해서.. .(그를 한번 만나본 사람들은 그에게 반한다..... 참.. 부러운 능력이다.^^) 그를 처음 보았다. 그 이후 3년 남짓이 지난 지금... 그와 마주 앉아.. 기업사회공헌담당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유승권 (이하 유) : 인터뷰 날짜 잡기 정말 어려웠다... 바쁜 건 알지만.. 너무 튕기는 거 아닌가? 메이저 언론이 아니라서 무시하는 건가?

(늘 말씀드리는 거지만.. 짧은 글을 위해... 반말체를 사용하는 것이지.. 실제 인터뷰는 공손하게 진행했습니다^^)

나영훈 (이하 나) : ㅎㅎㅎ... 그건 아니고... 퇴근 후에 참석하는 모임들이 몇개 있는데.. 그것 때문에.. 개인적인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유 : 어쨌거나.... 시간 내 주어서 고맙다. 나차장님의 인터뷰를 기다리는 블로그 애독자들이 많았다. 오늘이 그날이다. 나도 기대가 크다.

나 : 알고 보면.. 별거 없는 사람인데.... ^^

 

유 : 일단 POSCO와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부터 듣고 싶다.

나 : 그 이야기를 하려면.. 쫌 돌아와야 하는 데... 괜찮겠나?

유 : 상관없다... 시간 많다.

 

10살 때 부터 사회복지사를 꿈꾸었던.. 교회소년...

 

나 :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다. 10살 무렵 가까운 분 덕분에 '사회복지' 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린 마음에.. '사회복지사'를 해야되겠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겼다. 아마도..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알 것 같은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미션)' 이란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사회복지학과를 진학목표로 삼았는데... 고3때 성적이 쫌 잘나와서... 고 3 담임선생님이 경제학과에 들어가라고.. 원서를 써주셨다.. 그런데... 학력고사 시험보러 갈때.. 어머니가 주신 청심환을 먹었다... 근데.. 도저히 손이 떨려서 주관식 답안을 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전기(예전 학력고사 시절에는 前기와 後기가 있었다. 지금처럼 수능을 보고.. 수능점수에 따라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전기대학 중에 한곳을 선택해서 시험을 보고.. 전기대학에서 떨어지면.. 후기대학 중에 다시 원서를 넣고 다시 시험을 보는 그런 식이었다. 나도... 학력고사 시대라서..^^)에 떨어지고.. 결국 후기에 사회복지학과를 갔다. 그때.. 속으로..  "아! 나는 사회복지가 운명인가 보다... 딴 길로 가려고 했더니... 하나님이 대학을 떨어뜨리시는 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부족한 나를 주위 환경을 통해 훈련시킨다.... 나영훈 중위

 

나 : 나는 나를 쫌 잘아는 편이다. 굉장히 내성적이기도 하고... 남 앞에 나서는 것도 잘 못하고.. 누굴 만나고 싶어도.. 전화해서 만나자고 말도 잘 못한다... 그런데 대학교 때  내가 사회복지를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어서는 안되겠다 싶었다. 나 스스로는 고치기 힘들 것 같고.. 어떻게 하면 될까 싶은 생각을 하다가.. ROTC를 하면 쫌 나아질까.. 싶어서.. ROTC에 지원하고... 철원에서 장교생활을 했다. 덕분에 리더십이 쫌 생기고... 나름  직장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기반이 된 것 같다.

유 : 사모님과.. CC 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 : ROTC를 한 이유중에 하나였다. 대학교 1학년 때 부터 사귀었는데..  군대 갔다오면 고무신 거꾸로 신을까봐... 4년 동안 붙어 있으려고.. RT를 했다^^

유 : 졸업하고.. 군대 있는 동안 어차피 떨어져 있었을 텐데..

나 : 그래서.. 아내를 처가가 있는 강원도 태백에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취직을 시켰다...처가에 가 있으면 일단 부모님이 지켜주실 거고... 나는 대학교 때 부터 사회복지현장에 나가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러려면 부부 중에 한사람은 안정적인 벌이가 있어야 되겠다 싶어서.. 아내에게 공무원시험을 보라고 했다. 고맙게도.. 아내는 내 말을 잘 따라 주었다.

유 : 우와~~ 정말 주도면밀하다.. 생긴거는 안그런데.. 한여자의 인생을 그렇게 조종하다니... 그럼.. 대학교 1학년 때 만나서.. 지금까지...

나 : 그러게.. 내가 나름..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주도면밀한 점이 있다. 아무튼.. 남들 다하는 미팅, 소개팅도 한번 못해보고.. 24년째... 커플이다..

유 : 후회되나?

나 : ........아.. 아니... 내 인생에 있어...여러모로  최고의 선택이었다. ^^ 

 

사회복지사 나영훈...

 

나 : 군을 제대하고 나서.. 기업에 입사하려고 원서내고.. 면접까지 봤는데.. 낙방했다... 그때도 속으로.. "역시.. 사회복지가 아닌 다른 길로 가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길을 막으시는 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포기하고... 사회복지신문에서.. 채용공고를 보고.. 서울에 있는 몇군데.. 복지관에 원서를 냈는데... 그중에서 제일 작고.. 형편이 어려운 M복지관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작은 곳을 선택한 이유도 아마 신앙적인 사명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복지관 사회복지사 나영훈으로 1996~1999년까지 살았다.

유 : 그럼.. 해비타트에서는 어떻게 일하게 된건가?

나 : 1997년 복지관에서 일할 때... 운좋게.. S기업에서 지원한 사회복지사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호주에 가보니.. 정말 그곳엔 우리나라에선 경험할 수 없었던... 생활속에 다양한 자원봉사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복지관에서 일할 때도 자원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당시만 하더라도.. 자원봉사가 크게 활성화 된 때는 아니었다... 그래서.. 자원봉사 쪽으로 관심도 있었고... 아내는 태백에서 공무원을 하고 있었고... 그러니... 같이 살고 싶기도 해서.. 복지관을 그만두고... 태백 해비타트 간사에 지원해서 태백에서 1999년 부터 2004년까지 일하게 되었다.

유 : 해비타트 간사의 일은 좋았나?

나 : 해비타트에 입사하고 나서.. 깜짝 놀랐다. 해비타트를 운영하는 원칙이... 정말.. 대학 4년동안 배운 '사회복지의 원칙' 그대로였다. 그래서.. 나는 이걸 만든 사람이 정말 훌륭한 사회복지사 인줄 알았더니.. 해비타트의 설립자 Millard와 Linda Fuller 는 사회복지사가 아니라.. 미국의 사업가였으며... 클라렌스 조단이라는 목회자가 해비타트의 운영원칙을 만들었다.. 성경에서 찾아낸 남을 돕는 원칙을 해비타트의 원칙으로 삼은 것이었다.... 태백에서는 정말 열심히 신나게 일했다. 그 정점이 2002년 8월 이었다. 아시다시피...지미카터 前미국대통령이 해비타트의 열렬한 팬이자.. 자원봉사자였다. 그가 태백을 찾은 것이다. 태백이 생긴이래.. 최고의 인사가 방문하는 것이었다. 태백시청을 비롯하여.. 태백의 모든 기업, 시민단체들을 나서서.. 해비타트를 도와주었다. 많은 사람들의 손길과 도움이 기적과 같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그 효과가 딱 1년이 지나니.. 모두 사라져 버렸다. 내 능력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월급이 80만원이었는데.. 부족한 후원금으로 월급 받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고민했다. 기업으로 부터 후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후원자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고민 하다가... 기업에 가서 일을 한번 해보자... 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절친이었던 친구가 POSCO에서 마침 사회복지사를 뽑는다고 알려줘서... POSCO 자원봉사지원팀에 사회복지사 모집에 원서를 내게 된 것이다.

유 : 아... 정말 긴 이야기다.. (여기까지 듣는데... 1시간이 걸렸고... 순대 볶음과 소주 한병을 비웠다.)

 

 

회사 최초이자 마지막 공채 사회복지사...

 

유 : 내가 알기론 나차장님 입사전에도 이미 POSCO엔 사회봉사단이 있었고.. 잘 운영되었던 걸로 아는데.. 생뚱맞게 사회복지사를 공채한 이유가 뭔가?

나 : 실제로..내가  POSCO에 입사하기 1년전 포스코사회봉사단이 결성 되었고... 회사내에 자원봉사지원팀이라는 것이 꾸려졌다. 그런데... 1년 정도 해보니까... 뭔가 아쉬움이 있었는지... 자원봉사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가 필요했었나 보다.. 그래서 사회복지사 공채를 했고.. 운좋게 내가 입사하게 된 것이다.

유 : 나차장님 이후에도 포스코에서 사회복지사를 공채한 경우가 있었나?

나 : 없다...ㅎㅎㅎ 내가 처음이자 현재까지는 마지막이다.

유 : 왜? 나차장님이 일을 너무 잘해서..? 아니면 너무 못해서?

나 : 그게.. 내가 포스코에 입사를 해보니.. 이미 벌써 사회봉사, 지역사회연계활동을 너무 잘하고 있는거다... 돌아가신 박태준회장님의 명으로 1988년에 이미... 포스코 각 공장 및 부서와 지역사회 마을단위로 '1부서 1촌' 자매결연이 되어 있었고... 각 부서에는 마을담당자들이 있어.. 마을의 대소사와 어려움을 돕는 역할을 공식적인 업무로 하고 있었다... 그러니... 사회복지사가 입사해봐야.. 별거 있었겠나... 이미 잘하고 있는데... 아니면... 회사에서 사회복지사를 뽑아 놨더니.. 회사에서 시키지도 않은 일만 하고... 자꾸 딴생각만 하니.. 그런 애들을 회사 내에 많이 두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ㅎㅎ

유 : 시키지도 않은 일? 딴생각을 했다고?

나 : 실제로 회사에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다가 짤릴 뻔한 일이 있었다. 한번은 파키스탄에 큰 수혜가 났는데... 사우디아라비아와 포스코가 합자한 회사가 마침 파키스탄에 있었다.  수혜지역에 사우디아라비아측에서 구호캠프를 차렸고... 포스코는 그 캠프에 구호물자를 지원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내가 파키스탄으로 날라가 구호물자를 사서 트럭에 싣고.. 구호캠프로 갔다. 구호캠프로 가는 길은 정말 처참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은 채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었다. 갓난 아이가 그냥 흙바닥에 뉘어져 있어도.. 누구하나 돌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구호캠프에 가보니.. 여기는 완전히 천국인거라.... 심지어 6개월 분의 식량이 비축되어 있더라...구호 캠프 안과 밖의 상황이 너무 대조적이었다. 캠프는 철책을 치고.. 아무나 못들어오게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급한 마음에 사우디아라비아측 구호캠프 소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가져온 구호물품중에 1/3은 구호캠프에 약속대로 주고.. 나머지 2/3는 구호캠프 밖에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한국에 와보니.. 난리가 난거다.. 사우디아라비아측 회사에서.. 식량의 2/3가 제대로 도착하지 않았다고.. 포스코에 전화를 한거지... 나는 구호캠프소장의 양해만 구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짧기도 했고... 현지상황을 잘 모르는 한국본사를 설득 할 시간적 여유와 상황도 아니었다... 회사입장에서 보면... 난민들 몇명을 더 구호하는 것 보다.. 회사간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데...  실무자가 맘대로 약속을 어겨버렸으니... 짤리고도 남을 일이었다.

유 : 그래서 어떻게 됐나? 짤리지 않았으니.. 지금까지 일하고 있을텐데...?

나 : 우리회사와 사우디아라비아회사에 그 당시 상황을 잘 설명하고... 설득했다. 나중에 양쪽 회사 사장님이 오히려.. 잘 했다고 칭찬하시더라...ㅎㅎㅎ

유 : 깨알같은 자기 자랑이군..... 먹을 것도 없는데.. 커피나 한잔 하러 가자.... (콩다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영훈 차장이 생각하는 기업사회공헌담당자의 역할은?

 

찐한 에스프레소 더블샷과 구수한 아메리카노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유 : 후원하는 기업의 입장을 잘알기 위해.. 포스코에 입사했는데... 내년이면 벌써 10년이다. 아직도  기업의 입장을 잘 모르는 건가?

나 : 그러게... 잘 배워서.. NGO와 현장에 돌아가 보탬이 되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10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배우는 중이다. 어느 시점에 되면... NGO로 돌아가는 날이 오겠지....^^

 

유 : 나영훈 차장님이 생각하는 기업사회공헌담당자는 어떤 사람인가?

나 : .... 일단 기업사회공헌담당자의 정체성이 애매모호하다.... 아니... 우리나라 '기업사회공헌'의 정체성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이겠다. 어떤 기업은 정말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사회공헌활동을 한다. 어떤 기업은 '기업 홍보'를 하기위해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또 어떤기업은 처리하지 못하는 '재고처리'와 팔리지 않는 물품을 소진하기 위해 사회공헌활동을 한다. 또 어떤 기업은 회장님이나 사장님의 '명예욕' 때문에 사회공헌활동을 한다... 심지어는 회사의 잘못을 덮어버리기 위한 위장막으로 사회공헌활동을 한다....   이 모든 것이 '사회공헌활동'이라고 불리우고 있으니... 기업의 사회공헌담당자들이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 역할이 애매모호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유 : 그렇다면.. 포스코의 나영훈 차장님의 기업사회공헌담당자로서의 역할은 어떤가?

나 : 나는... 포스코의 기업적 가치와... 우리 사회를 위한 사회적 가치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알다시피.. 기업사회공헌은 어떤 시점에서 기업적가치와 사회적가치가 공존하지 못하고 충돌하는 부분이 생긴다. 그럴때.. 기업사회공헌담당자는 기업적가치와 사회적가치를 무리없이 잘 배분하여 사업을 진행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비율은 기업적가치 3과 사회적가치 7정도의 비율을 갖는 것인데... 실제로는 기업적 가치 7과 사회적 가치 3을 유지하는 것도 버거울 때가 있다.

 

유 : 기업적가치와 사회적가치의 균형을 맞추기가 왜? 어려운 것 같은가?

나 : 앞서도 말했지만... 기업마다 생각하는 '기업사회공헌'의 목표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지난 20여년 동안 양적으로는 기업사회공헌이 많이 발전했지만... 진지하게 기업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공헌' 해야 하는 지를 고민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의 리더가 바뀔 때 마다.. 그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홍보'로 갔다가..  '재고떨이'로 갔다가.. '봉사'로 갔다가...'후원'으로 갔다가..'국내'로 갔다가.. '해외'로 갔다가... 이렇게 오락가락하다보니... 실질적인 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뭔가 하긴 한 것 같은데.. 남은 것은 없는 꼴이 되어 버렸다.

 

유 : 그게... 기업사회공헌담당자가 잘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인가?

나 : 어느 회사나 그렇지만.. 의사결정단계는 대개 실무자(실무책임자).. 부서장(임원)... 사장(회장)의 3단계로 되어 있다. 현재 기업사회공헌담당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개.. 의사결정의 가장 아래단계인 실무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실무자가 아무리 기획을 잘하고.. 기업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균형을 잘 맞추어서.. 사회공헌활동을 하고자 해도... 이 분야를 잘 모르는 부서장이 이해를 충분히 못해서... 최종 결정자인 사장에게 전달을 잘 못하거나.... 부서장이나.. 사장이 기업사회공헌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이해를 가지고 있으면.. 실무자가 아무리 열심히하고 잘해도 현실적으로 그게 기업전체의 사회공헌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유 : 현실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기업사회공헌실무자들이 적어도 임원자리에 가서.. 뜻을 잘 펼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랄 뿐이다. 나차장님이 어서 임원이 되시라...

나 : 기업에서 임원이 되는 것이 어디 쉬운가? 나는 실무자로서 역할을 하다가 NGO 현장으로 돌아가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사회복지사가 기업사회공헌담당자를 한다는 것....

 

유 : 그렇다면... 사회복지사가 기업사회공헌담당자로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요즘은 기업사회공헌도.. 사회복지뿐만 아니라.. 문화, 환경, 교육, 예술 분야 등 다양해지는 데....

나 : 나는 그래도 사회복지사가 기업사회공헌을 하면... 다른 전공자보다는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기업사회공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 하나가.."사람"이다.  "사람"이 중심이 되지 않는 기업사회공헌은 정말 진정성이 없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에 대한 깊은 고민과 사람의 복지에 대해 공부한 사회복지사들이 기업사회공헌담당자가 된다면.. 다른 사람들 보다는 더 멋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유 : 그렇다면... 기업사회공헌담당자를 꿈꾸는 후배 사회복지사들에게 한마디.. 부탁...

나 : 내가 여러자리에서 사회복지사 후배들에게 한 말인데.. 사회복지사로서 '기업사회공헌'이 최종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사회복지는 '소외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일인데... 기업사회공헌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 보인다. 기업에 들어와서.. 기업이 잘하는 것을 잘 배우고... 기업의 자원을 어떻게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고민하고.. 방법을 터득해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서.. 일하는 것이 사회복지사로서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사회공헌담당자는 사회복지사에게 있어... 하나의 과정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유 : 그건.... 나차장님의 개인적인 생각과 바램이라는 한계를 두면 어떨까? 아까도 말했지만... 진정성을 가진 현장의 사회복지사가 기업의 중요 의사결정권자가 되면... 충분히 '소외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 : 맞다... 내가 그런 역량과 비전이 없으니까.. 하는 말이다. 뛰어난 사회복지사가 기업에 들어와 기업사회공헌을 정말 멋지게 잘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나 또한 분명히 있다. 

 

 

나영훈 차장... POSCO에서 그동안 어떤 일을 했나?

 

유 : 자! 내년이면 포스코에 입사한지 10년이다.. 그동안 기업사회공헌담당자로써.. 어떤 일을 했나?

나 : 많은 일을 했지....ㅎㅎㅎ.. 기업사회공헌이란 이름으로 해 볼 수 있는 건 어지간히 해본 것 같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글로벌 대학생 봉사단인 "비욘드"와 "긴급구호"활동은 나에게 있어 분신이자.. 열매와 같은 존재들이다.

유 : 비욘드... 비욘드는 나영훈차장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 : 글로벌 나눔인재를 키운다는 애초의 목표가 어느정도 성과를 내는 것 같다. 올해까지 7기..700명의 비욘드가 길러졌는데... 국내 최고의 대학에서 부터..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이름없는 대학의 친구들까지... 함께 했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갈 것인가?  지구촌 어려운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젊은 시절의 고민과 체험이... 분명히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본다. 비욘드가 아니었다면.. 이기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세상에서.. 그들 또한 이기적인 삶을 살았을 것인데... 1년간의 비욘드 생활을 통해... 자신들의 삶과 비전을 세상을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에 방향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유 : 비욘드를 통해 나영훈 차장님의 '아바타'들을 생산해 내는 건가?

나 : 아바타... ㅎㅎㅎㅎ... 내가 잘 못하니까... 더 똘똘한 친구들을 데려다가.. '세뇌' 시킨다고 보면 될까? 아무튼 그 친구들이 성장해서.. 우리사회에 리더가 될 때 쯤이면... 지금 보다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라... 본다...

 

유 : 긴급구호는 어떤가? 포스코에서 만드는 긴급구호 박스 하나가.. 그렇게 큰 도움이 되나?

나 : 우리나라 구호현장에서는 그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하는 것 같다... 워낙 국내 긴급구호는 잘 발달되어 있어서... 그런데.. 저개발 국가의 구호현장에 가면.. 포스코의 긴급구호 박스는 정말 기적과 같은 존재가 된다. 상상을 못하겠지만... 구호현장에 가서... 힘든 상황에 처한 그들에게 박스하나를 건내면.. 그렇게 고마워하고.. 그 박스 하나를 전달 받은 그들의 눈에서 희망의 불씨를 본다. 구호박스하나로 인해... 제로(0)인 사람들이 1의 존재가 되는 순간이다. 넘어지고.. 물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는 사람들이 그 박스 하나를 딛고 일어설 수 있으니까.... 

 

기업사회공헌담당자들의 롤모델.. 나영훈 차장...

 

유 : 나영훈 차장님은.. 기업사회공헌담당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기업사회공헌담당자를 꿈꾸는 많은 취준생들에게 모범적인 롤모델로 자리잡은 것 같다.. 본인은 그걸 느끼나?

나 : 음... 그게... 나는 솔직히 잘모르겠다. 회사에서 하는 일도 하루 하루.. 헉헉거리며 처리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롤모델이 된다는 것은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다.

유 :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포스코 사회공헌팀의 나영훈차장은 많은 후배들에게 있어... 하나의 목표가 되고 있다.. 목표로서 선배의 역할을 쫌 해야되지 않나?

나 : 으...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해본적은 없는데.. 왜냐하면... 앞에서도 계속 말했지만... 기업사회공헌담당자가 내 최종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그저 이곳에서 잘 배워서... 다음 일할 곳에서 잘 써먹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걸로 족한 사람이다. 누구의 목표가 되기에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유 : 알겠다... 이 블로그에 소개되고 나면.. 나영훈차장님을 만나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질 것 같은데.. 괜찮겠는가?

나 : 일단 시간이 되야 되는데.. 당분간... 쫌 바쁘다.. 오늘도 이 미팅 끝나고.. 교회 모임이 기다리고 있다. 빨리 가봐야 된다.

 

앞으로 나영훈 차장은 어떻게 일한 것인가?

 

유 : 교회모임 가셔야 한다니까... 정리를 좀 해야겠다. 앞으로 기업사회공헌담당자인 나영훈차장님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나 : 일단... 지금 내게 맡겨진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공부도 하고.. 노력도 더 할 것이다. 기업적가치와 사회적가치를 좀더 균형있게 유지하기 위해서 애써야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던지... 아니면.. 내 생각에 나와야 할 때가 되면... 회사에서 배운 것들을 가지고 현장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우리나라 보다는 '인도' 쪽을 생각하고 있다. 아시겠지만... 인도에서 얼마전 CSR법을 제정했다. 인도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모든 기업들은 수익의 2%를 인도와 지역사회를 위한 CSR활동에 사용해야 한다... 그것도 우리처럼 생색내는 활동이 아니라.. 아주 계획적이고 잘 만들어진 CSR활동을 해야한다.  인도에 한국기업들도 많은데... 한국기업들이 CSR활동을 할 때.. 한국과 인도사이에 다리를 놓아 줄 단체나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 역할을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다......아직은 생각수준이다... 구체적인 계획이 서있는 상태는 아닌데.. 나이가 먹어가니까.. 무릎에 힘이 없어지기 전에 무슨 일을 저질러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유 : 인도에서 볼 날이 있을 것 같군^^ 자~ 마지막으로 형식상 질문인데.. Mr Yoo의 블로그를 읽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

나 : 음... Mr Yoo 같은 Mr Kim, Miss Lee, Mr Park 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양하고 신선한 생각과 아이디어.. 실력을 가진 친구들이 기업사회공헌담당자로 잘 자리를 잡고.. 그들을 통해... 아직 갈길이 먼 우리나라의 기업사회공헌이 어서 빨리 정체성을 찾고.. 소외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진짜 공헌할 수 있기를 바란다. 

유 : 좋은 말씀에 감사.... 바쁜 시간 내 주심에도 감사...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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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중에 하나인 POSCO에서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사회공헌활동 현장을 책임져온 나영훈차장... 신앙안에서.. 늘 겸손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에게 늘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으로.. 닮고 싶은 선배로...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로 자리잡고 있다. 그가 걸어간 발자국을 보며.. 나도 그의 뒤를 따르는 후배의 한 사람으로써... 그가 남긴 숙제들을 하나 하나 풀어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그가 한 말들을 곱씹어 보았다. 부족하고 허접하기 이를 때 없는 글로.. 그의 좋은 말들을 담아내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