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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직원 행복 추구했더니 ESG가 됐다.

by Mr Yoo 2025. 12. 22.

<기고문> 중소기업뉴스 

직원 행복 추구했더니 ESG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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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9월, 부평공단에서 작은 기계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삼촌에게서 연락이 왔다. 독일 원청사에서 뭔가를 요구하는데 직접 와서 좀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삼촌 회사는 규모는 작지만 이름난 독일 업체 세 곳에 30년 가까이 부품을 공급해 온 1차 협력사다.

오랜만에 만난 삼촌은 인사도 채 마치기 전에 서류를 내밀었다. 독일 B사가 보낸 ‘인권영향평가 자가진단 체크리스트’였다. 여기저기 체크하고 답변을 적어 놓은 흔적이 보였다.

체크리스트를 훑어보는 나에게 삼촌이 말했다. “외국인 직원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지난 1년간 한 활동을 적으라는데, 뭘 적어야 하는 거냐?”

삼촌 회사의 전 직원은 19명, 그중 8명이 베트남, 캄보디아, 몽골에서 온 외국인 직원이다. 10년 전만 해도 외국인 직원은 한두 명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한국인 직원들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 외국인 직원들이 없으면 공장 문을 닫아야 할 처지라고 했다.

B사가 보낸 체크리스트는 독일 공급망실사법에 따라 1차 협력업체의 인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고, 인권, 노동권, 노동조건과 환경, 안전과 보건 등에 관한 60여 개의 질문으로 구성돼 있었다. 질문 대부분은 큰 어려움 없이 답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 새로 추가된 주관식 문항 중 ‘외국인 직원의 인권과 행복’에 대한 질문이 문제였다.

삼촌은 직원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큰 노력을 해왔다. 당신 역시 10대 시절 야간공업고등학교를 다니며 공장에서 일했고, 기술을 익혀 독립하기까지 20년 넘게 인권·노동권을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 채 힘들고 고단한 노동을 견뎌냈다. 그래서 당신 회사에서는 그런 경험이 반복되지 않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각별히 신경 썼다. 가족이 살던 빌라를 외국인 노동자 기숙사로 내어줬고, 회사 식당을 책임지는 숙모님은 기숙사 살림살이까지 챙겼다. 또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은 직원들을 위해 공단의 도움을 받아 국가별 언어로 된 업무 안내 매뉴얼을 만들어 교육했다.

공장 외관은 다소 허름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독일 공장이 부럽지 않을 만큼 안전시설과 휴게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회사 식당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베트남 쌀국수나 몽골식 양고기구이 같은 메뉴가 나온다. 숙모님은 외국인 직원들을 위해 지역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다문화 요리 교실에도 자주 다닌다.

나는 삼촌이 그동안 외국인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해온 일들을 그대로 적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촌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 정도는 웬만한 데서 다 하는 일 아니냐”며 자랑할 건 못 된다고 했다. 나는 자랑을 하자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쓰면 된다고 다시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8년 차 외국인 직원인 M주임이 보고할 일이 있다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마침 잘됐다 싶어 M주임을 앉히고 간단한 인터뷰를 했다.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낀 적이 있어요?” 내가 묻자 M주임은 즉시 답했다. “아니요. 저는 여기서 7년 넘게 일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대표님이 직원들한테 정말 잘해 주세요.”

삼촌이 자리를 비켜주려 하자 M주임은 괜찮다며 말을 이었다. “외국인 노동자라고 제대로 대우 안 해주고 괴롭히는 공장이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 회사는 안 그래요. 외국인 직원들 모두 오래 일하고 싶어 해요. 대표님이랑 사모님이 정말 잘해 주시고, 월급도 휴가도 잘 주니까 너무 좋아요.”

나는 이런 내용을 잘 정리해서 체크리스트에 담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 M주임이 회의 테이블 위에 놓인 체크리스트를 슬쩍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외국인 직원들한테 직접 답을 쓰게 하면 좋은 내용이 많이 나올 것 같은데요?” 삼촌은 그게 좋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며 M주임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 겨울이 된 얼마 전, 삼촌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메시지에는 ‘2025년 인권경영 A등급 협력회사’라는 문구가 새겨진 인증패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내가 다녀간 다음 날, 삼촌은 외국인 직원들을 모두 불러 간담회를 열었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솔직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몇 가지 개선 과제도 발견했다고 한다. 간담회 내용과 개선 과제에 대한 실행 계획을 간략히 정리해 체크리스트에 첨부했더니, B사에서 그 내용을 보고 매우 인상적이고 모범적인 활동이라며 극찬했다고 했다.

곧이어 삼촌이 사진 몇 장을 더 보내왔다. 사진 속에는 선물을 포장하며 웃고 있는 외국인 직원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삼촌 회사는 몇 년 전부터 임직원 자녀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직접 사서 전달하고 있는데, 외국인 직원들도 예외가 아니다. 택배 상자에 이것저것 선물을 담으며 환하게 웃는 그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ESG, 지속가능경영을 어렵게 느끼는 중소기업이 많다. 성가신 규제이자 불필요한 비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ESG, 지속가능경영의 본질은 세상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드는 기업을 늘리는 데 있다. 일하기 좋은 회사, 직원들이 행복하게 오래 머물고 싶은 회사를 만드는 일, 바로 그 일이 ESG이고 지속가능경영이다.

출처 : 중소기업뉴스(http://www.kbiz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