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날 단상) 2026년에 ESG가 자기 기만이 아닌 실제가 되려면....
2025년 11월 OECD가 발표한 「2025 지구의 삼중(三重) 위기에 관한 환경전망 보고서」는 인류에 대한 엄중한 경고장이자, 그간 우리가 자화자찬했던 ESG 경영에 대한 냉철한 성적표이다. 현재 수준의 대응이 유지될 경우 2050년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2.1도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은, 그간 기업들이 쏟아낸 수많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가 인류의 멸종 시계를 늦추는 데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글로벌 유력 경제지들은 이미 현재의 보고서 체계를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블룸버그(Bloomberg)는 ‘The ESG Mirage’ 기획을 통해, 현행 ESG 보고와 평가 체계가 기업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이 아니라 오직 ‘지구가 기업 수익에 미치는 위험’만을 측정하는 모순을 지적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 역시 복잡한 공시 기준이 기업에 유리한 데이터만 선택적으로 노출하는 ‘체리 피킹(Cherry-picking)’의 도구가 되었다고 꼬집었다.
현장에서 느끼는 괴리는 더 크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기업의 ESG 실무자들만 읽는 ‘보고를 위한 보고’가 되었고, 신뢰성이 낮은 보고서에 대한 시장의 불신과 무시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러한 ‘ESG 자기 기만’은 실질적인 지속가능경영의 실천을 가로막는 가장 큰 방해꾼이다.

Figure 2.12. Evolution of drivers and socio-economic trends behind environmental pressures (p. 102)
OECD 보고서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경제 성장과 환경 압력 사이의 유기적 관계다. OECD 보고서는 2050년까지 세계 GDP가 2배 이상 증가하며 자원 수요를 압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신 없이 앞으로 내달리기만 하는 디지털 전환과 AI 혁신은 새로운 기회인 동시에 막대한 에너지와 자원을 소모하는 ‘양날의 검’이다. 기업들은 AI의 효율성 뒤에 숨겨진 막대한 전력 소모와 데이터 센터 냉각을 위한 수자원 고갈 문제에 대해 이제 정직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기술의 속도가 환경 회복의 속도를 앞지르는 현 상황을 방치한다면, 그 어떤 혁신도 지속 가능할 수 없다.
또한, 현재 많은 기업이 공언하는 ‘넷 제로’와 탄소 중립 목표 역시 구체적인 이행 경로 없이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아래 그래프는 현재의 정책 궤적과 목표치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보여준다. 지금 수준으로는 1.5도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

Figure 3.3. Projected GHG emissions and temperature trajectory under current policies (p. 145)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추진 중인 ESG 정책들 또한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ESG 의무공시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나, 기업들이 책임 있는 지속가능성 정책을 세우고 실천하독록 유도하기보다는 단순히 글로벌 투자 유치와 무역 장벽 대응 수준에 머물러 있다. 무엇보다 대기업의 자발성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공시 시기를 늦추는 등 대기업과 시장의 눈치를 보는 소극적인 자세가 역력하다.
공공기관 또한 예외는 아니다. 2025년 12월 발표된 공공기관 ESG 가이드라인은 본질적인 공적 영역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보다, 기관들의 '경영평가 점수 따기'를 위한 체크리스트 수준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공공기관이 사회적 가치 실현의 보루가 아니라 단순히 지표를 맞추고 점수를 따기 위한 관료적 행정에 매몰된다면, 지속가능성을 포함한 사회적 대의(大義)와 관련된 그 어떤 정책도 동력을 확보할 수 없다.
글로벌 상황은 더욱 난감하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두 번째 등장은 반(反) ESG 기조를 노골화하며 국제 공조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파리기후협약 재탈퇴와 UN 인권실사협약 무력화 등 자국 중심주의 정책은 인류가 쌓아온 보편적 국제 협력의 가치를 위협한다. 여기에 지속가능성 정책을 견인해 온 EU마저 러/우 전쟁 여파로 인한 에너지 비용과 국방비의 상승, 극우 세력의 성장, 미국 눈치보기와 거리두기 사이의 정치적 갈등 등으로 인해 ESG 영역에서 가속 페달을 밟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혼란이 환경 파괴와 기후재앙이라는 물리적 실체를 바꿀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OECD 보고서는 환경 문제를 단순화하고 온실가스 감축 중심의 단일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칸막이식 대응’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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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14. Projections of intensifying and mutually reinforcing environmental degradation (p. 165)
기후, 생물다양성, 오염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삼중 위기(Triple Planetary Crisis)’이기 때문이다. 위의 그림은 기후, 생물다양성, 오염이 서로 어떻게 상호 가중의 악순환 현상을 일으키는지 보여준다. 지속가능경영(ESG)이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기후 대응이 생물다양성 보존으로 이어지고, 오염 저감이 다시 기후 회복력을 높이는 ‘선순환의 시너지’ 가치사슬을 설계해야만 한다.
현재 기업들이 자기편의적 이중 중대성 분석을 통해 책임보다는 위기 관리 수준의 단편적이고 이슈 중심 대응에 머무는 것은 결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플라스틱 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현재와 같이 재생플라스틱 몇%를 사용했다는 홍보 방식의 마케팅적 접근만으로는 2050년까지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폐기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아래 그림은 2050년까지 관리되지 않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임을 경고하며, 생산 단계부터의 '근본적 감축'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플라스틱 생산의 증가는 온실가스 증가, 기후위기 발생, 생태계 파괴라는 악순환 고리에 직결되어 있다. 하지만, 플라스틱 생산을 감축하자는 목소리는 기업들로부터 나오지 않고 있다.

Figure 3.13. Mismanaged plastic waste and leakage to the environment (p. 163)
2026년 우리는 '지속가능성, ESG'라는 단어 앞에 솔직해지고 겸손해져야 한다. 단어 사용을 조심스러워하고 두려워해야 필요가 있다. OECD 보고서가 증명하듯, 지금의 지지부진한 발걸음으로는 닥쳐올 거대한 환경 재앙의 해일을 막을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부 국가의 이기주의를 넘어선 강력한 글로벌 협력이며, 기업의 자발성에 기댄 느슨한 권고를 넘어선 정교하고 단호한 제도적 규제다. 공공기관은 평가 점수가 아닌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공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솔선수범해야 하며, 기업은 이윤 추구가 지구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책임 있는 실천에 나서야만 한다.
ESG 교육과 컨설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에게 OECD 보고서의 문제 지적은 강력한 펀치로 다가온다. 2026년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이제껏 우리가 기업에 건네온 컨설팅이 혹여 ‘세련된 포장지’를 만드는 기술에 불과하지 않았는지 되묻는다. 컨설턴트의 역할은 클라이언트를 거짓으로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해일의 높이를 정직하게 알리고 대비하도록 하는 것이다.
2026년, 나의 강의와 글은 '평가 점수를 잘 받는 법'이 아니라 '지구 한계 안에서 비즈니스의 지속가능성을 재정의하는 법'을 안내하는 것이 되야만 한다. 기업과 기관의 경영진과 실무자의 귀를 즐겁게 하는 이 정도면 괜찮다는 달콤한 합리화 대신, 생존과 건강을 위해 체지방을 걷어내고 근육을 키우는 고통을 견뎌내도록 하는 '강단있는 PT 코치'의 길을 고집해야만 할 것이다.
Balanced CSR & ESG
유승권(이노소셜랩 지속가능경영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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