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3일자 서울신문에 게재되었던, 국내 공익재단의 개선과제에 대한 좌담회 모습입니다. 좌담회 이전에 서울신문에 제츨한 좌담회 원고 원본을 블로그에 올립니다. (아.. 어쩌면 이렇게도 사진은 거짓말을 못하는지... 제가 생각해도 제 인물이 참 없네요^^)
[1](지금 공익재단이 필요한 이유)개인‧기업 등이 설립하는 민간재단 수가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전체 민간재단 가운데 절반가량이 2000년 이후 설립됐다는 통계(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조사)도 발표됐습니다. 기업의 성장, 자산가의 등장 등 기부‧재단설립을 위한 경제적 토양이 다져졌다는 얘기도 되겠지만, 동시에 사회적 딜레마 해결을 위해 재단의 역할이 필요한 시대라는 뜻도 될 듯합니다. 현 시점에서 공익재단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사회가 발전을 거듭할수록 그에 따른 사회적 문제가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인 것 같습니다. 중학교 사회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 사회를 조직하는 기본단위인 개인, 가족, 지역사회, 국가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회문제는 이 네 가지 기본단위 안에서 해결이 되었지만, 현재시점에서 가족과 지역사회의 기능적, 구조적 해체가 급속히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즉 사회적 안전망이 예전보다 많이 헐거워지고 빈틈이 많아졌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안정망을 다시 촘촘하게 만드는 역할을 20세기 들어 새롭게 탄생한 조직인 공익재단에서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익재단이 해체되어가는 가족과 지역사회를 대신해 사회적 안정망을 촘촘히 해야 한다는 역할론에 대해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예전엔 공부방으로 불리웠지만, 2002년 아동복지법개정으로 지역아동센터로 불리고 있는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사례입니다. 1998년 IMF 시절로 돌아가 보면, 갑작스런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기업의 줄도산으로 많은 가장들이 하루아침에 실직상태에 놓였습니다. 노숙자가 급증했고, 살림만 하던 주부들이 일당벌이에 나섰습니다. 경제적 사회적 불안으로 인해 이혼율도 급증하여, 가정해체란 말이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더 이상 가족이 아이들의 사회적 안정망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한 것이 소위 공부방이라는 곳이었습니다. 1998년 이전 전국에 200여개 안 팍 이었던 공부방이, IMF를 겪으면서 500여개로 늘어나고,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약 5,000여개로 그 수가 늘어나, 현재 대략 100,000명의 저소득층 아이들이 지역아동센터에서 방과 후 돌봄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역아동센터가 증가하고 가족대신 사회적 안정망의 역할을 한 데에는 민간 공익재단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2002년 아동복지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공부방은 소외 ‘미인가 개인시설’이어서 정부의 지원은 커녕 공식적으로 아이들을 보호할 수 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파악하고 민간 공익재단들이 공부방을 돕는 사업을 많이 했습니다. 사회복지재단과 기업재단들이 공부방의 운영비, 사업비, 프로그램비, 급식비 등을 지원했고,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자생력과 조직력을 키운 공부방들이 협회를 결성하고, 공동으로 법 개정을 통해 2002년 지역아동센터라는 공식명칭을 얻고 정부로부터 기본운영비 지원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매월 200여만원 내외의 정부지원금을 가지고는 지역아동센터 선생님 월급도 주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기본 운영비는 정부에서 지원받았지만,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데 필요한 교육비, 프로그램비, 급식비, 간식비, 냉난방비 등은 거의 대부분이 개인 및 종교단체, 민간공익재단과 기업에서 후원을 해 준 것입니다.
지역아동센터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기존의 사회안정망이 해체되고 뚫렸을 때 그 기능을 대신할 새로운 사회조직이 나타납니다. 그 사회조직이 자생하고 조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영양분, 즉 자원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민간공익재단입니다. 국가의 법적 제도적 안정망은 민첩하게 움직일 수도 없을 뿐더러, 그 안정망의 그물코가 촘촘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어떠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에 예방적 사업(Before Service)을 하기에도 어렵습니다. 민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시민단체와 자생적 조직들이 사회적 안정망을 촘촘하게 하고, 예측 가능한 사회문제에 대한 예방적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미래에도 민간공익재단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2](재단이 사회변화를 위해 할 역할) 민간 공익재단의 사업영역은 주로 교육‧복지 등입니다. 정부의 주요 관심분야와 상당히 겹칩니다. 그러나, 정부의 예산 규모가 민간재단에 비해 월등히 크기 때문에 ‘재단이 과연 의미 있는 사업을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민간재단이 예산상 제약을 넘어서 정부는 하지 못하는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역할과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민간공익재단과 정부가 같은 사회문제를 가진 같은 사회 안에서 존재하는 이상 주요 관심사가 상당히 겹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봅니다. 다만, 해결하는 방식, 자원이 투입되는 시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앞선 질문에 대한 답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국가의 교육, 복지정책은 대부분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나면, 그 문제에 대해 기존의 법적, 제도적 차원,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당해 연도의 국가예산범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그것으로 해결이 안 되면, 새로운 법과 제도를 만들고 다시 예산을 편성하고 하는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에 반해 민간 공익재단의 경우는 오늘 새벽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오전 중에 자원을 긴급하게 투입하고, 오후에 문제를 막아낼 수 있는 민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민간공익재단은 앞으로 일어날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측성 사업을 펼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측성 사업의 대표적인 사례가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민자, 탈북자 등에 관한 사업입니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기에 앞선 시민단체와 지역사회의 자생조직들이 외국인노동자의 인권, 노동권, 결혼이민자문제, 다문화가정 자녀의 문제, 탈북자들의 한국 사회적응 문제 등에 대한 이슈를 제시하고 정부의 지원을 촉구했습니다. 정부의 대응은 그리 빠르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두고 보자는 자세를 취했고, 당연히 이들 문제를 해결할 관련법들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실태조사를 하고 정부지원을 촉구함과 동시에 민간 공익재단들의 지원과 후원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에 이르자, 외국인노동자, 결혼이민자(다문화가정), 탈북자를 지원하는 단체들이 자리를 잡고 조직력을 키웠습니다. 민간공익재단과 기업재단들이 소위 스폰서 역할을 했습니다. 민간단체의 이러한 앞선 사업들이 효과가 있다는 사회적 검증을 통과하자 정부의 공식적인 지원책이 마련되었습니다.
즉, 민간공익재단은 정부보다 한발 앞서서 우리사회에 닥칠 미래의 사회문제를 예측하고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정부가 직접적으로 손을 잡기 어려운 다양한 민간 사회적 조직들과 실험적인 협력을 통해,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최근에 일부 대형장학재단들이 정부의 무언의 압력으로 인해 대학생 등록금 지원사업에 대부분의 자원을 쏟아 붓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첨언하자면, 국내 민간공익재단들이 미래의 사회문제를 예측하고 선재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조사, 연구의 전문성과 역량을 많이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재단이 정답은 아니지만, 미국의 주요재단의 경우에는 많은 재원을 사회문제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리서치분야에 투자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미국 민간재단의 리서치능력은 기업이나 대학의 연구소 수준보다 앞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훌륭한 리서치 능력으로 파악된 예측가능한 미래의 사회문제에 대하여, 그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NGO, NPO와 손을 잡고 실험적인 다양한 방법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합니다. 조사해보시면 알겠지만, 국내의 주요 민간공익재단의 리서치 수준은 매우 낮습니다. 기업이나 대학의 연구소에 비하면 거의 초등학생 수준의 조사연구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 민간공익재단들이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사연구의 전문적 역량을 빠른 시간 내에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공익재단이 관심을 가져야할 특정분야) 국내 재단들의 목적사업이 장학분야에 지나치게 몰려있습니다. 국내 사회적 현실을 감안했을 때 민간 재단들이 더 관심을 갖고 투자해야하는 구체분야‧사업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국내 재단들의 대부분이 장학재단인 이유는 몇 가지 있습니다. 사회복지재단이나 비영리의료재단, 문화재단 보다는 장학재단이 행정적으로 설립하기도 쉽고, 운영상에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덜 요구됩니다. 당연히 재단자체를 운영하는 사업비와 운영비도 적게 들기 때문에, 전문성이나 운영상의 부담을 느끼는 소규모 자산가들이 장학재단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서울이 아닌 지역으로 가면 더욱 심해집니다.
국내 사회적 현실을 감안했을 때 민간 재단들이 더 관심을 갖고 투자해야하는 분야는 이미 정답이 나와 있다고 봅니다. 국내의 많은 기업과 대학연구소, 언론에서 앞으로 닥칠 한국의 사회문제에 대해서 정리한 것 이 있습니다. 인구노령화, 저출산, 청년실업, 소득불균형과 빈부격차의 심화, 소득과 지역에 따른 교육기회불평등, 다문화시대의 도래, 지역사회와 가족의 지속적인 해체 등 이미 들어 난 사회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민간공익재단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고 봅니다.
거시적으로 볼 때는 민간공익재단이 관심을 갖고 투자해야 하는 분야는 우리사회가 당면한 대부분의 문제에 해당합니다. 단,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민간공익재단이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투자해야 하는 분야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점과 방법상의 문제라고 봅니다. 민간 공익재단이 수동적으로 정부의 모자란 예산이나 보충해주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후차적인 지원은 실제적으로 별 효과도 없습니다. 민간공익재단은 앞으로 닥칠 사회문제에 대하여 선제적이고 실험적인 지원과 투자를 통해, 뒤 따라올 정부가 보다 안정적으로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선행적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민간공익재단들의 관심분야가 좀 더 다양화해야 한다는 생각과 오히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고른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복지 분야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민간재원의 역할이 당연히 필요하다는 생각이지만, 실효성을 놓고 보면, 현재 있는 재단들이 서로 협력을 통해 몇가지 중요한 사회문제에 대해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함께 해결하고자 한다면, 상대적으로 단기간 내에 사회적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4](군소재단의 활용) 자산규모가 10억원 미만이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불분명한 군소재단이 다수 있습니다. 세제혜택을 받는 재단이 공익적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을 두고 ‘사회적 낭비’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군소재단이 적절한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할 방법이 있으신지요.
기본자산 10억 미만의 공익재단들이 받을 수 있는 세제혜택은 실질적으로 일년에 얼마 되지 않습니다. 자산으로 인한 재산세, 소득세, 취,등록세 정도의 감면인데, 실제 활동이 거의 없는 경우는 작은 금액의 세금 감면조차도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조사해보시면 알겠지만, 군소재단들의 경우 대부분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개인이 자산을 출연한 향토장학재단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이유는 첫째, 기본자산에 대한 자산수익이 발생하지 않아 사업비가 없기 때문이고, 둘째, 지역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재단 운영에 대한 재미와 보람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업의 의지가 있는 재단에 대해서는 과감히 기본자산을 사업비로 전환할 수 있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10억이 기본자산이라고 한다면, 1년에 정기예금이자로 최대 4천만원 정도 밖에 발생하지 않는데, 이것을 가지고 의미 있는 사업을 하기란 사실 상 불가능합니다. 지역에서 소년소녀가장, 저소득 가정의 고등학생 수입료 스무명 정도 대납해주면 한해 사업이 끝납니다. 이런 군소재단들에 대해서 한시적으로 기본자산을 사업비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기본자산 10억을 5년 또는 10년 동안 앞으로 사업비로 사용하고, 그 이후에 기본자산이 모두 소진되면 법인의 문을 닫거나, 다시 기본자산을 충족할 경우 법인 운영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한다면, 많은 군소재단들의 묶여 있는 재원들이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 전문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군소재단을 도와줄 수 있는 정부 또는 비정부 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에 민간재단운영에 대한 전문가가 많이 없는 상황입니다. 민간재단을 허가, 관리, 감독하는 지방자치단체나 중앙부처의 경우에도 재단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보니, 재단운영이나 사업과 관련되어 도움을 받고 싶은 군소재단의 이사장들이 묻거나 도움을 받을 곳이 없습니다. 정부나 민간단체에서 재단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그 전문가들이 군소재단들을 지원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국내에서는 1999년 아름다운 재단이 시민단체들을 돕고 나눔 문화를 확산시키자는 취지에서 설립되었는데,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아름다운 재단과 같이, 군소재단의 싱크탱크 역할을 할 수 있는 민간단체가 하나 쯤 생겨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재단 운영에 대한 재미와 보람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인데, 대부분의 군소 재단들이 지방에서 자수성가해서 어느 정도 자산을 모으신 지방유지분들이 설립한 경우가 많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성공했는데, 인생 돌이켜 보니 돈도 중요하지만 명예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신 경우입니다. 그래서 인생 후반기에 지역사회에서 인정도 받고 존경 도 받고 싶어서 재단을 하나 만들기는 했는데, 재단 사업하기가 수월치도 않을뿐더러 어떤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연말에 지역 고등학생 장학금 한번 주고 나면, 일년내내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뭐.. 그런 일이 몇 해 반복되다 보면, 내가 재단을 왜 만들었나 하는 후회를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군소재단들의 성공사업사례를 의도적으로 좀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나 지자체는 좀 힘들겠지만, NGO나 지역 언론들이 지역의 군소재단들과 손을 잡고,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나, 여러 군소재단들이 함께 재원을 모아 지역사회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공동 프로젝트 등을 기획하여 성공하고, 그 사례들을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언론들이 잘 알려준다면, 지역에 웅크리고 있는 군소재단들이 어느 정도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5](정부와 재단의 거버넌스 가능성) 민간 재단과 정부가 일부 공익사업을 벌일 때 ‘협치(거버넌스)’하면 효율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이 있습니다. 예컨대, 공익시설 운영 등을 노하우가 있는 민간재단에 맡기고 대신 정부는 토지 등 인프라와 행정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한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만약, 동의하신다면 민간재단과 정부가 협치할 수 있는 영역이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회복지분야에 있어서 공익시설에 대한 인프라를 정부가 제공하고, 민간재단이 운영을 맡는 소위 위탁운영방식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민간위탁방식에 대한 일부 지자체의 회의적인 평가 때문에, 민간에 위탁했던 지역복지시설들을 지자체가 직영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공공인프라를 정부나 지자체가 제공하고, 민간재단이 운영하는 방식은 협치라기 보다는 위탁운영이고, 협력이라기보다는 정부의 관리, 감독을 민간재단이 받는 형식이 됩니다. 더욱이 사업역량과 자금능력이 부족한 민간재단들이 재단의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본래의 고유목적사업은 하지 못하고, 시설위탁사업만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단순한 형태의 정부와 민간재단의 협력형태보다는 보다 자유로운 형태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정부나 민간재단이나 같은 사회 안에서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같은 시각과 같은 방법을 가지고 일한다고 한다면, 자원이 중복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자원을 지원받는 입장에서도 혼란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때문에 정부와 민간재단은 긴밀한 의사소통채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김대중, 노무현정부 당시에는 정부와 지자체가 민간재단, 시민단체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하나의 사회문제를 가지고 각각의 입장에서 해결방안을 논의 하였던 자리가 종종 마련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도 그러한 자리에 참석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이명박정부에 들어서는 그런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이야기를 별로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마련되었다고 하더라도, 정부의 정책을 설명하고 그 정책에 부족한 예산을 민간재단에서 지원을 좀 해달라는 일방적인 의사소통의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저 또한 최근까지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정부와 민간재단은 같은 사회문제를 가지고서도 서로 다른 시각과 다른 방법으로 문제해결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는 민간재단에 대해서, 민단재단은 정부에 대해서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며, 상호간의 영역과 사업방식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한 신뢰와 인정은 상호 충분한 의사소통과 이해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정부와 민간재단이 협치 할 수 있는 특정한 영역이 존재한다기 보다는 모든 영역에서 협치 할 수 있겠지만, 그 이전에 상호간에 충분한 의사소통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과 자세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7](재단의 신뢰성 담보를 위한 대책) 부유층이나 기업이 세운 공익재단을 여전히 불신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국민적 시선이 있습니다. 언론 등을 통해 재단이 탈세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거나 재벌 총수가 위법한 행동을 하고 준조세적 성격으로 재단을 설립하는 경우 등을 지켜봤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이같은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기위해 각 재단과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하고 제도를 갖춰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탈세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의 대부분은 재단의 특성상 문화재단인 경우가 많습니다. 장학재단이나 복지재단은 설립목적과 운영의 특수성으로 인해 탈세를 하기가 어렵고, 탈세를 한다고 해도 매우 제한적입니다. 탈세의 문제가 되는 기업의 문화재단에 대한 정부와 시민단체들의 철저한 감시와 감독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총수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재단을 설립하는 것에 대해서는 기업재단에서 일하는 실무자의 한 사람으로써, 공정한 대답을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대신 사회복지현장에서는 그렇게라도 마련된 소중한 재원이 잘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며, 기부에 대한 약속이 잘 지켜지도록 언론과 시민단체들의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이슈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기업이나 재벌총수에 대한 국민적 불신에 대한 해소는 정부나 기업재단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른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이미 매우 놓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기업이나 재벌총수가 반사회적이고 윤리적인 행동을 하고나서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아무리 많은 자산을 기부한다고 해고, 이젠 국민들이 그것을 무마해주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기업과 재벌총수가 이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방식이 아니라, 애초에 윤리적인 경영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업사회공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공헌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기업의 비윤리적인 문제가 가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업들도 이미 인식하고 있습니다.
[8](재단 설립자 및 설립 희망자에 대한 당부) 재단 설립을 고려하는 자산가나 재단의 허가‧감독을 책임지는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으시다면 어떤 것이 있으실까요.
최근에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 그리고 개인 자산가 분들이 재단설립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몇몇 기업과 개인 분들을 만나 재단 설립에 대한 말씀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재단설립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가장 먼저 물으시는 것이 “재단 설립이 어렵냐? 어떻게 하는 거냐? 준비할 서류가 뭐냐?” 등 “설립”자체에 무게 중심을 두시는 데, 그럴 때 드리는 말씀은 “재단설립은 어렵지 않습니다. 기본 여건만 갖추면 설립 자체는 쉽죠... 대신 운영하기가 어렵습니다.” 라고 답해드립니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개인 자산가 등 설립에 필요한 기본자산은 겨우 마련이 되었는데, 설립 후 운영자금에 대한 대책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막연히 후원금으로 충당할 것이다. 사업이 잘 되어 추가 자산을 투입할 것이다. 라고 하시는데, 막상 재단을 설립하고 나면, 상황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문제가 제기된 활동이 없는 뇌사상태의 재단이 이런 경우입니다. 따라서 재단설립에 앞서 설립 이후에도 충분히 사업을 추진할 자금이 마련되어 있느냐를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적어도 설립요건이 되는 최소 기본자산의 5~10배 정도의 운영자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충분한 운영자산이 확보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 다음 단계로 재단을 잘 운영할 수 있는 실무자가 필요합니다. 향토장학재단의 경우 대부분 설립자 본인이 실무를 겸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문성이 없다보니 사업이 주먹구구식이 되기가 십상이고, 귀중한 재단의 사업비를 엉뚱한 곳에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전문 실무자를 월급주고 고용할 수 없다면, 수소문해서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험자를 재단의 이사나 운영위원, 자문위원으로 영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부, 지자체, 민간단체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인력풀을 구성하고 지원해 주는 방안이 좋다고 봅니다. 단 정부단체나 지자체의 전현직공무원이 민간단체에 직접적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재단의 허가나 감독을 책임지는 정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이미 서울신문 본 기획기사를 통해 많은 부분이 제시되었으니, 정부관계자들이 잘 보시고 현실화 해주셨으면 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민간공익재단을 정부의 관리, 감독대상이나 부족한 정부예산을 채워주는 역할 정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갈 파트너로 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정부와 민간공익재단간의 다양한 의사소통의 장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에서도 공익재단과 관련된 전문성을 갖춘 공무원들을 많이 양성해 주셨으면 하고, 허가제를 바탕으로 해서 민간공익재단을 통제하려는 의도보다는 점진적인 인가제로의 전환을 통해, 다양한 민간재원이 공익사업에 투자 될 수 있도록 물고를 터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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