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G는 '지배구조'가 아니다.
용어의 정의 = 첫 단추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용어의 정의' 이다. 용어의 정의는 첫 단추와 같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 다음은 아무리 제대로 하려고 해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용어의 정의를 잘못 알고 있으면 배우는 일 뿐만 아니라 그 용어를 사용하는 일상과 일에서도 꼬이는 일이 많다.
이 블로그에서 수백차례 강조한 바 있지만 이 업계에서 대표적으로 잘못 사용하고 있는 용어가 CSR이다.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의 올바른 정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고 이것을 기업 경영의 실무용어로 다시 정의하면 '사회책임경영'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많은 언론과 교수, (자칭) 전문가들은 CSR을 '기업사회공헌' 로 정의하고 사용한다. 사회책임경영의 일부분으로 사회공헌이 포함될 수 있지만, 사회공헌자체가 사회책임경영은 아니다.
같은 이치로 ESG에서 G(Governance)를 지배구조라고 정의하는 것은 편협한 해석이다. 거버넌스의 구성요소 중에 하나가 지배구조일 뿐 지배구조와 거버넌스가 같은 말은 아니다.
지속가능경영, 사회책임경영의 실행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ISO26000에서 거너번스는 "조직이 목표를 추구하는데 있어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사항을 수행하기 위한 체계" 라고 정의하고 있다. 지배구조라는 단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아무데도 없다.
거버넌스의 어원은 그리스어 kubernáo 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이 단어를 '배를 조종하다' 라는 뜻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즉, 배가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가기위해 선장과 선원들이 힘을 합해 배를 움직이는 것을 kubernáo 라고 하고 이것이 영어 거버넌스의 어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학문적 정의를 봐도 거버넌스는 지배구조와 같은 뜻이 아니다. 거버넌스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Kooiman & Vliet(1993)는 거버넌스를 "공식적인 권위 없이도 다양한 행위자들이 자율적으로 호혜적인 상호의존성에 기반을 두어 협력하도록 하는 제도 및 조정형태"라고 정의했으며, Keohane & Nye(2000)은 "거버넌스는 조직의 집단적 활동을 이끌고 제약하는 공식 혹은 비공식 과정과 제도들"이라고 정의했다.
국제기구의 정의도 마찬가지다. UNDP(1997)는 "거버넌스란 모든 수준에서 세계와 국가의 문제를 관리하기 위한 경제적, 정치적, 행정적 권한의 행사이며 시민과 집단이 그들의 이익을 분명히 하고, 법적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고, 차이점을 중재하는 메커니즘, 프로세스 및 제도"라고 했다.
물론, 이렇게 설명하면 그건 '일반적인 거버넌스' 의 정의이고 '기업 거버넌스'는 지배구조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라고 응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기업 거버넌스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Bod Ticker(1994)는 "기업 거버넌스란 기업의 방향에 대한 지배권을 형성하고, 경영자의 행동을 감독하며, 법률과 제도에 의해 정해진 기업의 책임을 수행해 나가는 의사결정과 실행 체계" 라고 했으며 MM Blair(1995)는 "소유가 분산된 기업에서 누가 최종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고 기업활동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위험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규정하는 법적, 제도적, 문화적 매커니즘" 이라고 했다.
OECD의 기업 거버넌스 정의는 다음과 같다.
"기업 거버넌스란 공공의 이익과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지속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기업을 지도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을 의미하며, 기업의 목표 설정, 목표 달성 수단, 성과 모니터링에 필요한 구조를 제공하고, 회사 내에서 권한 및 책임의 분배 및 의사결정 방식을 결정하는 것"
거버넌스는 왜 지배구조가 되었나?
그렇다면 거버넌스를 한국말로 뭐라고 불러야 할까? 거버넌스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거버넌스에 딱 적합한 한국어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거버넌스 학회>는 거버넌스를 그냥 거버넌스로 부르기로 했다. 그렇다면 기업 거버넌스는 왜 지배구조라고 부르면 안되는가?
기업 지배구조(支配構造)를 영어로 직역하면 'Corporate rule structure' 가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제도와 법칙이라는 영어단어 Rule에는 '어떤 사람이나 집단을 자신의 뜻대로 복종하게 하여 다스리거나 차지하다' 라는 뜻도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말 지배구조를 영어로 표현하면 "rule structure" 인데, 영어에서 rule structure를 Governace와 같은 말로 쓰지 않는다.
거버넌스는 '복종, 다스림, 차지'와 같은 누가 누구를 소유하거나 누가 누구에게 강제, 명령하는 의미가 아닌 이해관계자 사이의 협의(協議, discuss)나 합의(合議, agreement)를 의미한다.
이렇게 설명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지배구조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네요" 라고 할지 모른다. 아직, 여전히, 그리고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는 상명하달식이고 상사가 부하에게 강제하고 명령하는 식이니까 말이다. 우리나라 기업 거버넌스의 현실이 '지배구조' 이기 때문에 거버넌스를 지배구조라고 부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인 동시에 거버넌스를 지배구조라고 정의하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기업 지배구조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사용된 계기는 1997년 IMF외환위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IMF는 우리나라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 오너 독재 체제인 기업 의사결정 구조를 주주와 이사회 중심의 거버넌스로 개혁을 요구했다.
오너의 개인 왕국처럼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영 방식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준법, 윤리경영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으며 아무리 잘못된 결정이라도 오너의 결정이면 아무도 반대하지 못하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이 IMF의 지적이었다. 오너 1인 의사결정체계는 오너에게 모든 리스크가 집중되는 매우 불안정한 경영체계이다. IMF는 한국 기업의 고질적인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이사회 중심의 기업경영 전환을 요구했고, 사외이사제도, 감사제도의 도입을 의무화하고 기업 공시를 강화 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정부와 한국거래소(KRX)는 IMF의 요구를 받아들여 기업지배구조개선을 약속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IMF구제금융지원을 종결한 2001년의 다음해인 2002년에 KRX 산하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를 설립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지원센터>는 2010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으로 개칭했고, 다시 올해 2022년 <한국 ESG 표준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렇게 오너 1인 독재의 지배구조를 주주중심 또는 이해관계자 중심 거버넌스로 바꾸기 위해 20년전에 사용된 '지배구조'라는 용어가 지금 ESG시대에도 남아 그대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일제시대에 식민지 지배를 위해 일본이 우리에게 썼던 식민지 용어를 광복 이후에도 좋은 말이랍시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지배구조'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통제성, 강제성, 일방성은 기업 거버넌스의 지향점이 결코 아니다. ESG와 관련된 글로벌 가이드라인을 조금이라고 살펴본다면 '지배구조' 라는 말 보다는 '거버넌스'라고 그냥 쓰던지, 아니면 '의사결정 구조 또는 방식'이라고 풀어 쓰는 것이 훨씬 좋은 표현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Balanced CSR & ESG 유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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