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회공헌담당자가 여름휴가에 읽으면 좋은 책
송곳
최규석 / 창비 / 2015
너는 왜 그딴 회사로 옮겼니...
2004년 여름... 풀타임 그룹홈 생활교사를 그만두고, 이*드복지재단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저에게 사회복지사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사회복지대학원 진학을 권했던 대학선배가 대뜸 안부를 전하는 전화기 너머에서 시큰둥하게 한 첫 대답이 .. "너는 왜 그딴 회사로 옮겼니.." 하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당황했고.... 선배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회사가 어때서요?" ..... 선배의 대답 " 몰라서 물어.. 너네 회사 노사관계가 시끄러워.. 노동조합이랑 갈등이 많다고.... 사람 막 짜르는 회사야... " ....... 회사에 입사한지 두어달이 지난 시점에서도 저는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직원들이 회사 정문 앞에서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강건너 불 보듯 그냥 흘려보고 지났을 뿐..... 그룹홈에서 받던 월급의 몇배이상을 받는 것에 희희낙낙 만족하며, 어떻게 하면 내 앞에 떨어진 업무만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저는 그 회사의 사회공헌 담당자였습니다.
2004년 프랑스의 유통업체인 까르푸가 부진한 실적을 이유로 한국에서 사업을 접고, 이*드에 회사를 팔았습니다. 까르푸는 회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매각에 좋은 조건을 얻기 위해, 많은 수의 정규직 매장직원들을 정리해고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전환 했습니다. 최규석 작가의 웹툰이자 단행본 3권으로 출간된 '송곳'은 그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한국 까르푸를 사들인 이*드는 홈*버로 상호를 바꾸었고, 그 과정에서 또 적지 않은 수의 직원들을 회사 밖으로 내몰았습니다. 그 이후 2008년 이*드는 홈*버를 다시 홈*러스에 매각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그 회사의 사회공헌 담당자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부끄럽지만... 해고되는 직원들의 형편을 한번도 살핀 기억이 없습니다. 그저 회사가 시키는 일에만 매달려 열심히, 그저 열심히 밤낮으로 일했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웹툰 송곳의 스크롤바를 내릴 때 마다 10여년전 내가 일했던 그때 그 회사의 기억이 겹쳐지는 묘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송곳을 읽을 때 마다 기억나는 안산의 정사장님....
그룹홈에서 생활교사로 일할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에는 아동그룹홈이 아동복지법상 아동복지시설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룹홈 운영비를 100% 후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늘 운영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어렵게 어렵게 아이들을 돌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때 제가 다니고 있던 교회의 장로님 한분이 제가 일하던 그룹홈을 돕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후원금을 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 장로님은 안산에서 꽤 규모가 있는 기계부품공장을 운영하던 사장님이었고 교회에서는 헌금을 많이 내는 분으로 유명한 장로님이었습니다. 하루는 후원금을 받기 위해, 장로님이 알려주신 공장으로 찾아갔습니다.
저는 공장 정문 앞에 이르러, 공장에 들어가는 것을 한참동안 망설였습니다. 후원금을 받으러 가는 것이 창피했던 것이 아니라... 한여름 그늘도 없는 뙤약 볕... 공장 정문 앞에 힘없이 웅크리고 주저 앉아있는 십수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노동자들은 "밀린 임금을 달라" ... "여권을 돌려달라" .... "일하다가 다친 노동자를 치료해달라" 는 문구가 쓰여있는 피켓을 들고 있었습니다. 노동운동단체 간사로 보이는 한국인 한분이 소리도 잘 나지 않는 핸드 마이크를 손에 들고 계속 쉰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체불 임금을 지급하라!" "노동자들의 여권을 돌려줘라!" "일하다가 다친 노동자들의 치료비를 지급하라!" ....
그 모습을 뒤로하고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사장실로 안내 받은 저는 얼음이 동동 띄워진 아이스커피를 대접받았습니다. "유선생님... 밖이 많이 시끄럽지요..... 자기내 나라에선 한달에 백달러도 못받고 일하던 사람들한테 한달에 천달러도 넘게 주는 데 불만이 너무 많아요... 회사 운영하기 쉽지 않아요.... 아.. 내가 너무 물러서... 경찰들을 안 부르니까... 계속 저러고 있네.... 아이고.... 어쩌면 좋아..." ...... "요즘 회사 경영하는게 쉽지 않아서... 후원금을 많이 못드려요... 그래도 결혼도 안한 총각이 애들 키우고 있다니... 참 대단해...." 하며 힌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얼마 안되요... 애들 간식이나 사주세요" ..... 잠시 망설였지만... 저는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아서 꾸벅 인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오기 전에 그 회사의 총무팀장이 사장실로 들어와 사장님과 제가 나란히 서서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을 사진찍어 갔습니다.
그렇게 받은 삼십만원을 아이들 여름캠프에 썼습니다. 송곳을 읽을 때 마다 자꾸 그때 그 사장님이 주신 후원금 봉투와 정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 그 삼십만원을 노동자분들께 드리고 왔어야 했던건 아닌가 하는 후회가 자꾸듭니다.
사회공헌보다 중요한 내부고객만족...
집에서 가족들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는 목회자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신도수가 천명이 넘는 안정된 지방교회의 담임목사였고, 교회에서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와 노인요양센터를 통해 복지사업도 열심히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신도들을 이끌고 봉사활동도 열심히 한 덕분에 그 지역의 자원봉사협회 회장도 맡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지속적인 가정폭력을 행사하던 사람일 줄은 주변인들은 꿈에도 몰랐다고 합니다.
기업사회공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기업의 내부 구성원... 즉 임직원들한테는 월급 준다고 막 대하고... 막 짜르고... 막 하면서... 그렇게 번 돈으로 기업사회공헌한다고 기부하고 사진찍고, 그러면 좋을까요?..... 그런 모습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이 사회공헌을 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좋은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한 것인데... 자기 식구들한테는 잘하지 못하면서 남한테 잘하는 척.. 밖에 나가서만 착한 척 하는 것은 잠깐은 속일 수 있지만... 결국 들통이 나고.... 그동안 해왔던 착한 일들이 오히려 욕먹을 꺼리가 되어 버립니다.
그럼... 사회공헌담당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임직원들을 자기 식구들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아주 좋은 회사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회사들을 GWP(Great Work Place)라고 부릅니다. 사회공헌을 잘하는 회사가 되기 전에 먼저 GWP가 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경영자가 앞장서 GWP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아주 좋은 기업도 있지만.... 현실엔 그렇지 않은 기업들이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저 같은 기업사회공헌담당자들은 양심에 부담을 덜 느끼기 위해 GWP만 골라다니며 일하면 될까요? 당연히.... 골라다니며 일할 수 도 없지만.... GWP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회사에서도 사회공헌담당자들은 일할 수 밖에 없고 일을 해야만 합니다.
GWP가 남의 일이기만 한 회사에서 일하는 사회공헌담당자들이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회사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하면서 대우도 가장 낮게 받고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일을 찾아내서 해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OO 돕기 바자회" 나 "OO돕기 기부행사" 이런 걸 하라는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로 인정하고, 그분들의 자존심과 마음이 상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그분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서 회사에 제안하고 일을 만들어 가라는 말씀입니다.
'기업사회공헌팀은 회사 밖의 사회공헌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라고 되물으시면... 회사내에 그런 일을 하는 조직... 예를 들어 기업문화팀이 존재하면... 그 팀을 믿고 협력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회사내 약자를 위한 담당팀이 없다면 사회공헌팀이 그 일을 해도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노동조합과 함께 하는 사회공헌도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습니다.... 회장님이나 사장님이 당장은 싫어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이 회사를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만드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아직 완결이 되지 않았지만... 이번 여름휴가에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웹툰 송곳은 현재 휴재 중입니다. 작가님의 충분한 휴식 후에 더 좋은 연재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웹툰이 지난 5월에 단행본 3권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미생'과 더불어 워낙 유명한 웹툰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분들은 다들 보셨겠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은 여름휴가때 방바닥만 긁지마시고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이라 추천합니다. ....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더운 여름입니다. 이번 주말은 전국적으로 비가 오고 있는데.... 집안에 널어 둔 빨래가 빨리 말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선풍기 두대를 열심히 돌리고 있습니다. 블로그 찾아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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