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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anced CSR & ESG

ESG, 얼마면 되겠니?

by Mr Yoo 2022. 7. 16.

 

ESG, 얼마면 되겠니?

 

 

목요일 오전 8시 서울 한 가운데 위치한 빌딩 17층 회의실에서 미팅을 시작했다. 소나기가 내린 여름 아침의 광화문 사거리는 후덥지근 했는데 빌딩안 회의실은 살짝 추울만큼 에어컨이 세게 틀어져 있었다. 

 

전날 밤 9시 업계 지인 L상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R그룹에서 긴급히 ESG 컨설팅을 받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꼭,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이유가 궁금해서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R지주 전략기획팀/비서실 P부장은 명함을 건네며 이렇게 운을 뗐다.  

 

"아침 일찍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L상무가 유이사님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더군요. 제대로 ESG 컨설팅을 하신다고요"

 

"과찬입니다. 이제 컨설팅을 시작한지 겨우 2년 밖에 안되었습니다. 하나씩 배우면서 해나가고 있습니다."

 

P부장의 금테 안경 뒤로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나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나 보다.

 

"아... 그래요. 저는 이 업계에서 20년 가까이 일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컨설팅을 하신게 아닌가요?"

 

"네, 기업에서 CSR 업무를 주로 하다가 2019년 말에 이노소셜랩에 합류에서 ESG 컨설팅을 시작했습니다."

 

P부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잠시 뜸을 들였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아.. 그렇군요. 급하게 모시느라 제가 유이사님 이력을 제대로 찾아보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력이랄게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불러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죠. 이렇게 급하게 만나자고 하신 이유가...?"

 

"네...,  L상무가 말씀드렸겠지만, 어제 저희 회장님께서 ESG 컨설팅을 좀 알아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ESG에 대해 별 말씀이 없으셨는데... 어제 저녁에 친구분인 Y기업 P회장님과 식사를 같이 하셨거든요. 그 자리에서 P회장님이 Y기업 최초 지속가능보고서를 주셨습니다. P회장님이 잘 나왔다고 자랑을 좀 하셨나봐요. 회장님께서 저녁 식사를 마치시고 저에게 ESG 컨설팅을 알아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급하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

 

"아.. 그러셨군요. 지속가능보고서를 제작하고 싶으신 거군요?"

 

"회장님께서 정확히 말씀하지는 않으셨는데, 지속가능보고서를 포함해서 전반적인 ESG 컨설팅을 알아보고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럼, 컨설팅 범위를 어느정도로 생각하고 계신건가요?"

 

"아, 저는 ESG를 잘 모릅니다. 신문 기사를 보기는 했는데 저희 회사하고 딱히 관련된 것은 없어 보이더군요. 저희 회사가 상장사이긴해도 아직 자산규모가 지속가능보고서를 낼 만한 정도는 아니고... 대부분 지자체나 공공기관을 상대하는 B to G 회사이다 보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개인적으로는 우리회사가 ESG를 해야하나 싶습니다. "

 

P부장 옆에 가만히 앉아 있던 J과장이 P부장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였다.

 

"지속가능보고서를 포함해서 전반적인 ESG 컨설팅을 받으면 어떤 내용이 포함될까요?"

 

"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ESG 경영이라고 합니다만, 글로벌하게는 지속가능경영이라는 표현이 보다 정확합니다. 지속가능경영은 비즈니스 모델과 상관 없이 모든 기업이 해야하는 상식과 원칙이 되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일반적으로 지속가능경영 컨설팅은 지속가능경영과 관련된 글로벌 가이드 라인을 가지고 '현황진단'을 하고, 그 현황진단을 바탕으로 '개선과제'를 도출합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대부분 지속가능경영체계를 따로 세워놓지 않고 있기 때문에 현황진단을 하게 되면 첫번째 과업으로 '지속가능경영체계'를 수립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 후에.... "

 

"아..죄송합니다만, 저희가 그렇게 상세한 설명을 들을 시간은 없구요. 회장님이 오늘 10시30분쯤 출근하시는데.. 그때 보고를 드려야 해서요."

 

P부장이 내 말을 끊었다. J과장에게 고개짓을 했다. J과장도 고개를 끄덕하더니 말을 꺼냈다.

 

"회장님께서 지시하시면 바로 보고를 해야하는 것이 저희 비서실의 역할이라, 유이사님께서 이해를 좀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궁금한 내용은 전반적인 ESG 컨설팅을 포함해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하는데 어느정도 기간과 비용이 소요되는가하는 것입니다."

 

비서실의 생리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밤 9시에 전화를 해서 다음날 아침 8시에 만나자고 하고, 설명은 안듣고 견적부터 내라고 하다니.. 하지만, 이런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어서 놀라거나 당황하지는 않았다.  

 

"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저희 회사가 현재 실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에 '현황진단 + 지속가능경영체계 수립 + 지속가능보고서 발간' 을 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10개월을 진행하고 비용은 OOO입니다."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앉았던 P부장이 갑자기 허리를 세우더니 나를 쳐다봤다.

 

"네.. 10개월에 OOO이라고요? " 

 

"네.. 그렇습니다."

 

J과장이 당황한 P부장을 대신해 서둘러 말을 꺼냈다.

 

"아... 저희는 올해 10월 말에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하고 싶은데요. 저희 28주년 창립기념일이 11월 초라 그때를 맞추면 해서요"

 

"10월이면 이제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는데, 현황진단, 지속가능경영체계수립, 보고서 제작까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기간입니다."

 

"아니.. 어제 밤에 L상무가 3개월이면 유이사님 같은 전문가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해서... 제가 뵙자고 한건데..."

 

P부장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L상무가 무슨 말씀을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ESG 컨설팅을 받기 원하신다는 내용만 전달 받았습니다. 지속가능보고서만 만든다고 해도 3개월은 어렵습니다. 혹시, 사내에서 ESG나 지속가능경영을 담당하는 팀이 있으신가요?"

 

P부장은 말을 잇지 않았고, J 과장이 답했다.

 

"없습니다. 하게되면 저희 팀에서 하든지, 아니면 홍보팀에서 할 것 같습니다."

 

P부장이 스마트 워치를 슬쩍보더니 자세를 고쳐잡고 거래를 제안했다.

 

"유이사님.. 솔직히 저희가 ESG를 잘 모릅니다. 그래도 ESG가 대세니까 우리회사도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죠. OOO원에 11월까지 지속가능보고서 제작을 하시는 것으로 하시죠. 컨설팅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받는 것으로 하고, 지속가능보고서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내용은 크게 상관없습니다. 유이사님께서 보시고 좋은 내용들을 잘 골라서 잘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P부장은 내가 말한 금액의 절반을 제시하며 겉보기에 그럴싸한 보고서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어제 회장이 받은 Y기업의 지속가능보고서도 자기가 보기엔 70% 이상 실제와 거리가 멀다고 했다.  

 

"지속가능보고서라는 것이 좋은 내용만 골라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요. 한 달을 더 주셔도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P부장이 마른 손을 몇 번 어루만지더니... 

 

"좋습니다. 천만원 더드려서 OOO원에 11월까지 하시죠. 더도말고 덜도말고 Y기업 수준 정도만 해주시면 됩니다. 저도 비서실에 오기전에 3년 정도 홍보팀장으로 일했기 때문에 보고서 만드는 생리와 견적을 아주 모르지는 않습니다. 4개월에 OOO원 정도면 꽤 괜찮은 조건이죠. 중간에 귀찮게 해드리지 않을 거구요. 유이사님이 다 알아서 해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시죠."

 

"제가 급하게 알아보긴 했는데... 저희와 비슷한 기업들이 6개월에 OOO원 정도 비용으로 지속가능보고서를 만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시간이 조금 빠듯하기는 하지만... 유이사님 정도의 최고 전문가라면 4개월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J과장도 말을 보탰다. 

 

순간 L상무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탁을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하는 내 성격을 이렇게 이용하다니... 당분간 L상무 연락을 피해야겠다.

 

"정말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4개월 동안 지속가능보고서를 만드시려고 한다면 저희보다는 홍보대행사 쪽으로 알아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 회사는 그 정도 역량이 안되기도 하고 보고서 제작 대행보다는 컨설팅과 교육이 주된 비즈니스입니다. 홍보대행사라고 하면 그 정도 가격에 4개월에 해주는 곳이 있을 것 같습니다. "

 

P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J과장이 P부장의 표정을 살폈다.

 

"아무래도 L상무가 소개를 잘못 한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아침부터 오시라고 했는데... 저희 쪽과는 인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살펴가십시오."

 

P부장이 회의실을 나갔다. 탁자 위에 내 명함이 그대로 놓여져 있었다.

 

"저희가 준비를 제대로 못해서 죄송합니다. 혹시, 괜찮은 보고서 제작 대행사를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J과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죄송하기는요. 괜찮습니다. 제작 대행사는 아는 곳이 없습니다. 요즘은 어지간한 홍보대행사들이 지속가능보고서를 다 만들더라구요. 찾아보시면 어렵지 않게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엘리베이터 안 뉴스 스크린에 "Y기업 업계 최초 지속가능보고서 발간, ESG 경영 박차" 라는 헤드라인이 떠 있었다.  

 

... P부장의 명함을 탁자에 두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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