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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anced CSR & ESG

ESG, 스티커 붙이기... 누워서 침뱉기

by Mr Yoo 2022. 8. 28.

 

 

ESG, 스티커 붙인다고 똥차가 스포츠가 되나?  

 

회장님만 모르시면 되는거 아니야?

 

수년 전 모 기업에 다니던 때의 일이다. 출근하자마자 팀장회의가 소집되었다. 대외협력본부장인 전무방에 상무와 홍보팀, 대외협력팀, CSR팀 팀장이 모였다.

 

자리에 앉지도 않았는데 상무가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OO일보 C부편집장한테 카톡이 왔어.... 알바건 기사 나갈 것 같다고... 그러게 진작 막았어야지.. 팀장들이 셋이나 되는데 이제껏 뭐했어 "

 

"아무래도 지난 번에 광고비 올려달라고 한 거, 힘들다고 했더니 그러는 거 아닐까요?"

 

홍보팀장이 전무와 상무의 눈치를 번갈아 살피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놈의 신문들은 양아치들도 아니고.... 맨날 돈 내놓으라고 난리야... "

 

상무가 말을 험하게 내뱉자, 잠자코 있던 전무가 입을 열었다.

 

"김상무, 양아치라니... 말을 곱게 써야지... 신문도 먹고 살아야지, 아무튼 이번에 또 나가면 안됩니다. 안그래도 이것 때문에 회장님 심기가 좋지 않으신데, 한번 더 기사나가면 우리 짐싸서 집에 가야합니다. 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냥 광고비 올려주면 될까요? 회장님이 안그래도 신문 광고비가 너무 많이 나간다고 한 마디 하셨는데....  "

 

"회장님도 그러셨지만 요구대로 광고비만 올려주면 너무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 같습니다. 안그래도 우리회사를 호구로 보는데 뭐라도 하나 건져야하지 않을까요?"

 

상무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눈을 피했다.

 

"유팀장... 좋은 아이디어 없어?"

 

상무가 아이디어를 내 놓으란다. 난 회사의 잘못을 덮을 아이디어 같은 건 애초에 없는 사람이다.

 

"유팀장님, 지지난 주에 시작한 전국투어 프로젝트 있잖아요. 그거 특집기사 한 번 내보내죠. 그림 좋을 것 같은데...."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성격 급한 홍보팀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시골 분교나 섬 같은데 가서 행사 크게 한 번하고, 기자 불러서 촬영하게 하고.. 그리고 특집기사비로 광고비 올려달라고 하는 만큼 주면 되겠네, 한면짜리로 크게 나가자고..."

 

아무래도 상무와 홍보팀장이 회의전에 입을 맞춘 것 같다.

 

"이번 주 금요일에 강원도 OO 초등학교에서 행사가 하나 있습니다."

 

나는 그냥 행사일정을 말했다. 

 

"그래, 우리회사 사회공헌도 홍보하고 신문사 주머니도 채워주고... 일석이조!! 그렇죠? 어쨌거나 회장님께 보고할 명분도 생기고... 회장님만 모르시면 되는 거니까.... 유팀장, 예산 아끼지 말고 행사규모 키워서 기안 다시 올리고, 김상무는 C부편집장에게 전화해서 잘 얘기해봐요. 이럴때 학교 선배 노릇하는 거지, 박(홍보)팀장은 행사할때  같이가서 기자 잘 챙기시고 무슨 말인지 알지요?.... 자!! 움직입시다."

 

전무는 일사천리로 의사결정을 했다.

 

그렇게해서, 사회공헌을 홍보하는 특집기사가 신문 한쪽 전면을 차지했고, 몇천만원의 취재비가 신문사에 입금되었고, 아르바이트생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취재한 젊은 기자의 고발기사는 나가지 않았다.

 

<기사 원문 보기 ☞ 클릭>

 

 

UN이 인정하지 않은 UN인증

 

지난 수요일 새벽, 기사가 하나 떴다. 제목은 " 페트병 재활용으로 'UN 인증'? ESG는 이렇게 부풀려졌다."

 

출근 길 전철에서 이 기사를 세 번 읽었다. 기분이 나빴다. 뭐라고 할까....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해야하나....

 

기사에 등장한 기업들의 ESG 담당자 얼굴이 하나 둘 떠올랐다. 그들은 이 아침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을까? 

 

기사에 등장하는 <UN SDGs 협회>와 이 협회의 대표는 알만한 사람은 다아는 이슈가 많은 사람이다. 이 블로그에서도 여러차례 조심하라고 경고 한 바 있다. 이 협회의 대표는 기업의 홍보 생리를 너무 잘 안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그 나쁜 생리를 아주 잘 이용한다. UN을 팔고 ESG를 팔고 인증을 판다. 그리고 여의도와 국회를 이용해서 기자들과 친분을 쌓고 기자들과 기업을 이어주며 또 관계를 판다. 

 

기업들은 알면서도 모른채하며 UN이라는 스티커, ESG라는 스티커를 붙이기 위해 말도 안되는 엉터리 인증에 기꺼이 돈을 낸다. 

 

운(?)좋게 이번 기사에 등장하진 않았지만 <UN SDGs 협회>의 인증을 받은 모 기업의 ESG 담당자를 잘 알기에 기사 링크를 담아서 카톡을 보냈다. 

 

"이 기사 봤죠. 거긴 괜찮아요?"

 

잠시 후 답톡이 왔다.

 

"괜찮기는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우리는 이런 단체인지 전혀 몰랐다. UN인증이라고 해서 우리는 믿은 것이다. UN SDGs 협회에서 이런 내용은 전혀 알려준바 없다고 딱 잡아떼야죠. 우리회사도 피해자다... 뭐 이렇게....  안그래도, 우리팀이 이 사람 사기꾼이라고 그렇게 말을 했었는데, 홍보팀이랑 담당 임원이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른다고 밀어 붙였거든요. 에고.... 홍보팀은 모른척하고 있어요.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가요. 자기 일이 아니라 이거죠. 참... 어이가 없어요."

 

 

스티커 붙인다고 똥차가 스포츠카가 되는 것이 아니다.

 

피할 건 피하고 막을 건 막고 알릴 건 알려야, 월급을 받고 승진을 하는 홍보팀 입장에서는 UN이라는 스티커가 탐날 것이다. ESG 광풍이 부니... 이럴때 뭐라도 엮어서 홍보를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라고 불호령이 떨어질테니, 싼 값에 괜찮은 홍보꺼리가 날아들면 잽싸게 잡아채는 것이 본능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지난 2년 동안 수만개의 ESG 홍보기사가 언론을 탔고, 언론사는 ESG 광고기사로 호황을 맞았으며, 정도만 다를 뿐 UN SDGs협회와 같이 허접한 ESG 인증을 주는 곳이 수십개가 생겨났다.

 

뿐만 아니라, 이직 희망자와 취준생에게 빨대를 꽂는 ESG 자격증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거듭 거듭 말하지만 'ESG 자격증'이라고 하는 것이 취업과 이직을 절대 보장해주지 않는다. 취준생, 이직 희망자의 다급한 심리를 이용하는 자격증 장사, 꼭 해야되나 싶다. 

 

스티커 붙인다고 똥차가 스포츠카 되는 것이 아니다. ESG 인증 스티커 사서 붙인다고, 몇십만원짜리 ESG 자격증 딴다고 진짜 지속가능경영을 잘하고, 진짜 ESG 전문가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 그렇게 쉽지 않다. 잘 알지 않나?

 

이런 글을 아무리 써봤자, 스티커는 계속 팔릴 것이고, 자격증 장사도 잘 될 것이고....

 

누워서 침 뱉는 것 같고... 아..... 슬프다.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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