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SG 의무공시를 GRI로 하지 않고 ISSB로 하는 이유는?
- 교육생과 나눈 질의응답을 요약했어요 -
교(육생) : 센터장님, 현재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이 GRI Standards를 기준으로 발간하고 있는데, 왜 ESG 의무공시는 IFRS ISSB를 가지고 한다는 거죠?
유(센터장) : 이야!! 짝!! 짝!! 짝!! 짝!! 이 질문이야말로 우리나라 ESG 의무공시 로드맵을 만드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충분히 고민했어야 하는 질문입니다. 안타깝게도 그 고민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ESG 의무공시 로드맵이 지속가능경영의 본질과 점점더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질문이고 지속가능경영, ESG의 핵심에 도달하는 질문입니다.
먼저, 간단하게 답하면 현재 우리의 ESG 의무공시 로드맵이 "투자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투자자 입장에서 기업이 기후변화 관련 위험과 기회를 잘 파악해서 향후 재무적 손실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준비를 잘하고 있는가를 서로 비교하기 위한 것이 ESG 의무공시 로드맵의 목적이고 그것에 적합하도록 만든 보고 프레임이 IFRS ISSB S2입니다.
교 : 그렇다면, 애초부터 GRI가 아닌 ISSB로 보고서를 만들면 좋을텐데, 지금 기업들이 GRI로 보고서를 만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유 : 시기적으로 IFRS ISSB가 확정된 것이 2023년이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GRI(2000년 최초 공개, 현재는 GRI 2021 버전)가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쓸 수 있는 대표적인 툴이었습니다. 다른 프레임으로 UN SDGs(지속가능발전목표)를 활용해서 보고서를 쓴 기업들도 있었고, 특히 일본 기업들이 UN SDGs를 많이 이용했습니다. 또, 비콥(B Corp)에 가입해서 그 툴로 임팩트 보고서를 낸 기업들도 있었습니다. 파타고니아의 사례가 그렇죠.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GRI를 이용했습니다.
교 : 우리나라의 ESG 공시로드맵이 '투자자'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GRI는 투자자를 위한 것은 아닌가요?
유 :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여기부터가 GRI와 ISSB의 차이점이죠. GRI도 투자자를 위한 보고입니다. 그런데 GRI는 투자자만을 위한 정보공개가 아니라 투자자도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위한 보고체계이고, 반면 ISSB는 투자자에게만 초점을 맞춘 보고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GRI는 투자자, 고객, 임직원, 협력사, 지역사회, 정부 및 공공기관 등 기업의 가치사슬과 직·간접적으로 연관 관계가 있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기업이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관련 이슈를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하고 "책임"있게 행동하고 있는가에 대해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ISSB는 투자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재무적 "위험" 과 "기회" 관련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 차이입니다.

교 : 그렇다면 GRI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닌가요? 왜 ISSB로 하는 것이죠?
유 : 점점 더 중심을 향해가는 질문입니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나라 ESG 정보공개 의무화의 목적이 기업이 책임있는 지속가능경영을 더 잘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투자자'들이 장기적인 투자를 함에 있어 기업의 지속가능성 이슈 대응 사항(현 시점에서는 기후변화)을 파악하기 위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EU 국가의 연기금들은 EU의 지속가능성 투자 원칙에 따라 ESG를 고려한 투자를 해야만 하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이 ESG를 공시하지 않으면 투자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외국의 투자 큰 손들을 불러 모으는데 ESG 의무공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현재 ESG 의무공시 로드맵을 작동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 의무공시의 용이성과 책임성 때문입니다. GRI는 100여개가 넘는 지속가능성 이슈에 세부 지표까지 하면 400여를 훌쩍 넘는 보고지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말했지만 가치사슬 전반에 모든 이해관계에서 발생하는 사회 · 환경 이슈를 다루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고 내용이 많습니다. 지속가능경영에 대해 큰 관심이 없거나 역량이 부족한 기업 입장에서 보면 제대로된 보고서를 만들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들이 대부분 컨설팅사에 대행을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무공시가 되면 대행을 맡기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책임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죠, 상장사 의무공시가 되면 투자자들로부터 잘못된 공시에 대한 민사소송이 발생할 수 있고, 법정공시가 되면 허위공시에 따른 법적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행사에 맡겨놨다가 잘못된 공시를 하면 그 책임을 대행사 탓으로 돌릴 수 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GRI의 많은 이슈들을 모두 의무 공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 내용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도 어려우니, 그 중에서 딱 하나 '기후' 만 골라서 공시해보자고 하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ESG 의무공시 로드맵의 방향입니다.
셋째, 비교 가능성 때문입니다. 투자자 입장에 어느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이익이 될 것인가를 선택하기 위해 아주 심플한 숫자 비교가 필요합니다. 이익을 쫓는 투자자들은 어떤 기업이 "책임있는 지속가능경영"을 잘하는가 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ESG란 용어가 글로벌 투자 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 2006년 결성된 UN PRI(책임투자원칙, 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 당시 UN 코피아난 사무총장이 지속가능발전에 기여하는 기업들에 우선 투자하는 것이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올바른 방향이라고 제시한 원칙) 때문이기는 하지만, IFRS ISSB를 아무리 뜯어봐도 '책임투자'나 '지속가능발전'이 중요하고 그것 때문에 정보공개를 해야한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단지 투자자들에게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야한다는 내용만 계속 반복될 뿐이죠.
즉, IFRS ISSB 관점에서 보면, ESG 의무공시는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책임 있는 노력을 열심히 다하는 기업보다는 그 위험으로 입을 재정적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자기 보호'를 잘하는 기업들을 골라내기 위한 방법이고, 그래서 기후 변화가 재무상태와 재무성과에 얼마나 위험과 기회가 되는지를 사업보고서에 서로 비교 가능한 "숫자"로 제시하는 방식을 내놓고 있는 것입니다.

교 : 그런데, EU에서는 ISSB를 사용하지 않고, 별도의 기준을 사용해서 보고서를 만들고 있지 않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유 : 맞습니다. 이것도 정말 중요한 질문입니다. EU는 ESRS(EU 지속가능성 보고기준, European Sustainability Reporting Standards)라는 자체 기준을 2023년에 완성했고, 현재 적용 중입니다. 연례 사업보고서에 통합해서 보고하고 있습니다.
EU가 ISSB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ISSB가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기업의 "지속가능성 책임"에 대한 보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GRI를 기반으로 EU 연례 사업보고서에 적합한 형태로 개편한 ESRS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EU는 투자자 입장의 ESG 정보공개보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기업의 책임있는 행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ISSB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죠.
교 : 그러면 EU ESRS는 ISSB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나요?
유 : 그렇지는 않습니다. EU가 기업의 책임성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해도, 애초에 연례사업보고서에 통합되는 방식으로 ESRS를 설계했고, UN PRI 원칙에 따라 성실히 책임투자를 실행하기 위해서라도 재무적 위험과 기회를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업의 책임성과 함께 재무적 위험과 기회도 공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이중중대성(Double Materiality) "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GRI는 책임성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기업이 가치사슬 전반에서 이해관계자에게 미치는 사회 · 환경적 영향(Impact)의 중요성이 기업에게 미치는 재무적 위험과 기회보다 우선시하는 "영향 중대성"이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보고 이슈를 정하는 최우선 기준이라고 한다면, ISSB는 '중대성'이라는 용어자체를 쓰지 않고 단지 투자자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재무적으로 중요한 정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정리하자면, EU ESRS는 지속가능성 이슈에 대한 기업의 책임성을 우선시하지만 투자자의 책임투자를 위한 재무적 위험과 기회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교 : 그러면, 우리나라도 EU ESRS를 벤치마킹하면 안되나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효과가 있잖아요?
유 :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그만큼 준비가 안되어있습니다. EU는 2001년 EU 지속가능발전전략을 공표한 이후에 2003년에 지속가능성관련 회계지침을 발표하는 등 2023년 ESRS를 확정하기까지 20년 가까운 시간을 준비해왔고, 관련된 지침과 제도들을 제정하고 보완했습니다. 즉, GRI가 처음 만들어질때부터 EU에 적합한 지속가능성 보고체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잘 알다시피 2021년에야 ESG 의무공시화 방안이 발표되었고, 그마저 지난 정부때 멈춰있다가 다시 이번 정부에서 논의를 시작했고, 이와 관련된 사회적 인식이나 법적, 제도적 준비가 안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EU의 ESRS를 벤치마킹해서 들여오기엔 무리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타깝지만, '지속가능성' 에 관한 기업, 정부, 정치권, 시민 사회의 인식 수준도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우리는 기업의 목적을 '이익을 창출하는 것' 이라고 온 사회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EU는 그렇지 않습니다. EU는 기업이 이익을 창출하는 이유는 사회와 사람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함이라고 강조합니다. ESRS의 기본 지침 역할을 하는 EU CSRD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 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 서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기업이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고, ESG 공시를 하는 목적이 "돈"에 있느냐, 아니면 기업의 사회·환경적 "책임"에 있느냐 하는 것을 ESG 의무공시제도를 만드는 초기 단계에서 충분히 검토가 이루어졌어야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기업 경영의 목적과 공시의 목적을 "돈"으로만 생각하는 사회적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봅니다.
교 : 그러면, 앞으로 기업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유 : EU 시장에 진출해 있는 주요 대기업들은 이미 ERSR 보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 기업이라고 못할 것은 없다는 것이죠. 다만 관련된 법과 제도, 정보공개 인프라가 EU 만큼 갖춰지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지금 당장 ESRS를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이제라도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기업계가 '돈'만 생각하지 말고 온전한 지속가능성, 지속가능경영을 이해하고 그 방향으로 법과 제도, 정보공개 인프라를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절대 기업이 스스로 알아서하라고 내버려두면 안되는 일입니다.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ESG 의무공시제도에 따른 공시 준비도 잘해야하고요. GRI를 기반으로 지속가능성보고서도 성실히 발간하면 언젠가 ESRS가 한국에도 적용된 KSRS가 나올때 잘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정보공개 차원이 아니라 기업이 진심으로 지속가능경영을 한다는 의지가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겁니다. 아셨죠?
교 :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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