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회공헌 성과평가
올해 농사는 잘 지으셨나요?
한 것은 많으나.. 잘 한것이 있었던가?
회사빌딩 18층에서 내려다 본 금요일 저녁 9시30분의 양재역사거리는 무척이나 반짝거립니다. 부지런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자동차들의 미등 불빛이 오늘따라 반짝거리며 산뜻하게 보이는 이유는... 방금 전 2015년 사업계획서를 마무리지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재무팀의 검토와 협조승인절차가 남아있고, 그 뒤엔 결재절차도 남아 있지만, 그래도 초고를 탈고한 홀가분한 마음은 감출 수 없습니다.
해마다 이맘때 쯤 내년 사업계획서를 작성 할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정말 시간이 빨리간다" 는 것과 "한 건 많은데.. 잘 한것이 있었던가?" 하는 것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벌써 12월이네.. 하는 생각이 스침과 동시에... 올해 무지하게 바쁘긴 했는데... 잘 한게 뭐 있었나? 하는 도돌이표 같은 물음이 머릿속에 맴돕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업사회공헌성과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제대로 하려면 주구장창 해야하는데.. 안 그래도 블로그 글이 길다고 말씀들이 많으셔서.. ^^;;)만 해보겠습니다.
사회적가치와 기업적가치... 기업적가치와 사회적가치..
기업사회공헌의 성과를 이야기 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성과의 개념과 범위를 잡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과의 개념은 특히나 기업사회공헌의 경우.. 기업적가치와 사회적가치 두가지 측면에서 개념접근을 해야 하는데... 먼저 기업적가치는 '이 사회공헌사업이 우리회사에 어떤 가치를 남겼는가?' 하는 것입니다. 기업사회공헌담당자들이 실제로 이 부분을 성과로 나타내보이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단순하고 무식하게.. '기업사회공헌활동이 우리회사 올해 매출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가?' 이런 걸 나타내보이라고 사회공헌담당자들에게 요구하곤 했었는데... 최근의 많은 연구에서 기업사회공헌활동(더 정확히 말해 기업의 자선활동)과 단기매출 사이에 구체적인 연관성을 찾을 만한 실증적인 데이터나 사례가 없다는 것이 속속 밝혀지는 바람에... 요즘은 어지간히 무식하고 단순하지 않고서야.. 기업사회공헌팀에 매출연관 성과를 나타내보이라고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혹시 그런걸 요구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사회공헌담당자이시라면..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최근들어 더더욱 강조되고 있는 기업사회공헌의 기업적가치는 '기업의 착한(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쁜짓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번 돈으로 좋은 일도 한다) 이미지를 나타내 보일 지속적인 컨텐츠'를 생산해 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 사람들이 종이신문이나 9시 TV뉴스를 많이 보던 시절에는 기업들이 주요일간지나 방송사의 기자 몇명, PD몇명만 잘 접대하고 잘 관리하고 다니면... 해당 기업에 좋지 않은 뉴스를 어지간히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인터넷과 SNS가 종이신문이나 TV뉴스보다 훨씬 더 파급력이 크고... 인터넷과 SNS에 기업에 대한 좋지 않는 내용이 한번이라도 퍼지게 되면... 절대 막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좋지 않은 소식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좋은 이미지를 가진 컨텐츠를 끊임없이 생산하여.. 그것을 인터넷과 SNS에 퍼트려... 사람들이 그 기업에 대한 좋지 않은 소식을 읽음과 동시에 좋은 이미지의 컨텐츠도 볼 수 있도록 만드는 일명 '덮어버리기' 나 '물타기' 전략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물타기 전략에 선봉에 서서 열심히 좋은 컨텐츠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저를 비롯한 기업사회공헌담당자들입니다. 따라서 기업적가치에서 보면, 지난 일년동안 기업사회공헌팀이 우리회사 이미지에 좋은 영향을 미칠 컨텐츠를 얼마나 생산해냈는가 하는 것이 성과평가에 핵심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홍보되었는가 하는 것은 홍보팀의 성과가 되겠죠^^;;)
그리고 그 다음은 기업을 둘러싼 주요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좋은 영향력을 미쳤나? 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은 얘기할께 되게 많은데... 딱 두가지 핵심적인 사항만 말씀드리자면... 기업사회공헌활동으로 인해 우리회사의 내부고객.. 즉 오너를 비롯한 임직원들이 얼마나 '회사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부분과 '우리회사의 충성 고객들이 우리회사의 사회공헌활동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가 ' 하는 인지율과 지지율에 대한 부분입니다.
실제로 기업사회공헌활동과 관련된 여러가지 연구와 보고서를 보면, 기업사회공헌활동이 가장 긍정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상은 그 기업의 임직원과 충성고객들이라고 합니다..... 근데... 이게 뭐.. 제 생각에는.... 대단한 연구결과라기 보다는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솔직히 내가 일하는 회사가 아니면.. 남의 회사 사회공헌활동에는 관심이 없는게 당연한 일이고..... 마찬가지로... 내가 자주 애용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회사에 관심이 더 가고... 그 회사의 소식이 인터넷이 뜨면... 한번이라도 더 클릭해보게 되는 것이 상식적인 일입니다.. 이걸 거꾸로 이야기하면... 기업사회공헌활동을 기획하고 추진하고 홍보 할 때 가장 염두해 두어야 할 대상은 불특정다수 일반 대중이라기 보다는 우리회사 임직원과 충성고객들이라는 겁니다.
계속해서.... 사회적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기업사회공헌의 사회적가치는 뭘까요? 김장김치를 몇만포기를 한꺼번에 나누어 준 것... 어려운 이웃을 위해 연탄 몇만장을 나누어 준 것.... 장애인을 위해 일자리 몇백개를 만든 것....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자선단체에 수백억, 수십억을 기부한 것... 이것은 아직 사회적가치라고 볼 수 없습니다. 단순히 '자원의 이동'... 즉 '전달'일 뿐입니다.
김장김치 6만포기를 한꺼번에 떼로 모여 만들어 어려운 가정에 가져다 주었는데... 만드는 과정이 엉망이어서 3일만에 그중에 절반이상이 못먹게 되었다거나... 여러 기업에서 한꺼번에 김장김치를 가져다 주는 바람에 보관할 곳이 없어 다 시어 버렸다고 하면.. 김장김치 6만포기의 사회적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 1,000개를 만들었는데... 3개월 후에 봤더니 그 중에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장애인이 절반도 안되고, 그나마 남아 있는 절반의 장애인도 어쩔 수 없이 출근하는 것이지... 일자리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낮다고 한다면... 장애인 일자리 창출 1,000개의 사회적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자선단체에 수백억, 수십억을 기부했는데... 그 기부금이 어려운 이웃이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곳으로 가지않고,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쓸데없는 기념관을 짓는데 사용되거나... 사회복지시설이나 자선단체의 나쁜 경영자들이나 임직원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여졌다면.. 그 수백억 기부금의 사회적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그동안 기업사회공헌의 사회적가치는 단순히 '자원이동' 이 얼마나 되었는가? 하는 데만 신경을 쓴 것이 사실입니다. 기업사회공헌담당자의 한사람으로써 많이 송구하고 죄송스럽고 참... 부끄럽습니다. 그저.. 초딩들처럼.. 우리가 제일 많이 했네.. 우리가 최초로 했네... 하는 도토리 키재기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동안 기업사회공헌을 통해 그렇게 많은 자원을 사용하고도... 우리사회에 뭔가 의미있는 변화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기업사회공헌을 통한 사회적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전달' 한 것에만 신경쓰지 말고, 전달 후에 어떻게 사용되어지고, 어떻게 원하는 결과가 얻어지는가에 대해 '집요하게' '파악'하고 '관리'하고 '평가'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그것이 잘 되지 않으면.. 앞으로 여전히 기업사회공헌은 우리사회에 별 영향력없는 현수막 기념사진 찍기 놀이가 될 것입니다.
숫자로 표현하되,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기를...
경영학의 대가 피터드러커는 그의 저서 여러 곳에서 '경영에 있어 숫자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 없다. 즉.. 숫자로 표현되지 못하면 경영이라고 부를 수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기업사회공헌도 기업경영의 일부라고 본다면.. 당연히 숫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투입된 자원과 산출된 결과가 숫자로 표시되고, 그 과정 중에 손실된 숫자와 늘어난 숫자가 일목요연하게 성과보고서에 제시되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어느정도 훈련이 필요한데... 아무래도 성과평가에 대한 공부를 좀 해야 합니다. 숫자로 성과평가를 하는 부분은 나중에 시간을 내어 한번 더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숫자로 표시되는 성과이외에 기업사회공헌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바로 사람들의 목소리입니다. 기업사회공헌이 단순히 자원을 '전달'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떤 '변화'와 '해결'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그 사업과 관련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야 합니다. 소아암환아 지원사업을 하는 기업사회공헌담당자가 소아암환아나 그 가족과 한번도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다거나.... 다문화가족지원사업을 하는 기업사회공헌담당자가 안산의 다문화거리에 가서 결혼이주여성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실생활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고서 어떻게 그 사업을 잘할 수 있을까요?
기업사회공헌에 있어 성과를 이야기할 때.. 그 사업이 실제로 이루어진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업사회공헌담당자가 직접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할 수 있다면 인터뷰내용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자료로 활용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사업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야... 더 잘할 수도... 못하는 것을 고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동' 이다 라는 말을 올 한해 스스로에게 몇번이나 하셨습니까?
공식적이고 업무적인 성과평가 외에도 실제로 중요한 것은 기업사회공헌담당자 스스로의 평가입니다. 공식적인 평가는 긍정적으로 보고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회사생활이니까... 어쩔 수 없이 소설을 쓰더라도 긍정적 평가를 보고하겠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가만히 감고.. 지난 한해를 돌이켜 보면... 이 사업이 올해 잘 되었던가 하는 것을 담당자 스스로 잘 알 수 있습니다. ...... 일단... 잘 모르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면.. 그 사업은 잘된 사업이 아닙니다. 잘된 사업은 고민하지 않아도 번뜩하고 떠 오릅니다. 올한해 사업을 진행하면서 '이거 참.. 감동이네..' 라고 속으로 몇번이나 스스로에게 말했는지 기억나십니까? ... 저는 안타깝게도 올해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오늘 낮에 평택에 있는 한 아동보육시설을 찾아.. 그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영업사원들과 함께 보육원 아이들을 위한 케익교실과 생일파티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세시간 정도 행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참석했던 직원 한명이 저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차장님... 솔직히 오늘 봉사활동 오기 전에는 바쁜 연말에 봉사활동 시킨다고 짜증이 좀 났거든요... 그런데.. 오늘 여기에 와서 아이들과 놀고 케익만들기 하다보니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행사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우리회사 직원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저는... 오늘.... 속으로.. '그래.. 이게 바로 감동이지' 라는 말을 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들도 2014년 추수 잘 하시기 바랍니다.
별거 아닌 블로그를 아끼고 찾아주시는 분들께.... 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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