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회공헌담당자로 살아간다는 것...
※ 오늘 글은 지난 4월8일 기업사회공헌실무자 아카데미(중급반 1기) 개강강연을 요약해서 올립니다. 개강강연은 다음세대재단 방대욱대표이사님께서 해주셨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합니다.
20년전에 S기업에서 사회공헌담당자로 일을 시작했을 때, 우리나라엔 기업사회공헌이라는 말이 없을 때였습니다. 기업들이 하는 사회공헌활동은 거의 모두.. 기업이 설립한 재단에서 하는 장학, 자선사업이 전부일 때였습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죠... 아마 이번 아카데미 수강생 여러분들도 그런 상황일 것입니다. 기업사회공헌담당자란 직함을 가진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기업내부에서 매우 극소수인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외롭죠..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하면 잘할지.... 기업내부나 외부에서 물어 볼 사람도 잘 없고... 물어봐도 명쾌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은 사회복지현장에서 일하면서.. 한때 저를 농담반 진담반... '변절자'로 부를 때가 있었습니다. 열악한 사회복지현장을 외면하고 월급 많이주는 기업에 가서 일하니... '좋겠다'며... 후원금이나 많이 내놓으라고 말이죠... 친구들도 저의 외롭고 어려운 사정을 잘 이해해주지 못했습니다. 당연한 거라고 봅니다.
작은 성취에서 행복과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그러하겠지만... 사회공헌담당자로 맨땅에 헤딩하고, 코피 쏟고.. 밤새 뭔가를 자꾸 시도하다보면.. 한두가지 작은 성과를 맛볼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기획안을 만들어서 올리면 신기하게... '돈'이 나오고..... 그것을 가지고 현장의 사람들과 모여서 좋은 사업을 만들기 위해 애쓰다보면.. 뭔가 내가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놓인 아이들이 우리회사가 내놓은 것을 가지고 잠시라도 웃고 행복해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 일을 시작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살짝 교만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가지 두가지 성과가 쌓이고,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사회공헌이라는 것이 잘하면 보기좋은 홍보거리가 된다는 것을 회사에서 알게되면서... 회사에서 지원도 늘려주고... 성과금도 팍팍주고.... 사회복지현장에 가면 제가 아무리 실무자 '대리'라도... 관장님, 원장님... 이런 분들을 막 만날 수 있게되고.... 그런분들이 귀한 손님 대접해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죠... 우쭐해지고... 목이 곧아집니다. 여기저기에서 기업사회공헌 전문가라고 막 불러주고.... 강연도 하라고 하고... 발표도 하라고 하고... 인터뷰도 하고... 대학생들도 막 찾아오고... 내 돈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 돈으로 하는 건데 말입니다. 사회공헌담당자로 몇년 일하면서 경력도 쌓이고 성과도 좀 내면... 살짝 교만해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구분해서 벽을 쌓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만났던 사회복지현장의 사람들을 잘 안만나게 됩니다. 왠지 불편해지고.. 뭔가 계속 요청을 받으면 들어줘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그래서.. 점점 현장의 사람들은 안만나고... '우리끼리'.. 기업사회공헌담당자들끼리만 만나게 됩니다.
'그림'이 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찾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회공헌담당자로 한 3~4년 일하다 보면... 이 사업은 '그림'이 좀 되겠네.. 하는 생각을 아주 자연스럽게... 의도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하게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업에서는 더군다나 사회공헌을 그저 홍보거리로 여기는 경영자들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업무적으로도 사회공헌담당자들에게 좋은 홍보거리를 요구하는데... 1~2년차 사회공헌담당자들은 그래도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진정성'이 중요하다며... '그림찾기'에 반항하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업무에 익숙해지고, 회사의 요구를 하나 둘.. 수용하며... 그림을 찾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좋은 그림, 좋은 홍보거리가 되는 사업들을 찾게 됩니다..... 그렇죠^^?
그런데... 사회는 변하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 어느정도 '기업사회공헌' 이라는 일에 익숙해졌다 싶어서... 고개를 들어 밖을 보면... 세상은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순간' 느끼게 됩니다. '좌절' 하게 되죠... 우리나라 기업들이 최근 연간 3조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기업사회공헌에 쏟아 붇습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좋아지기는 커녕... 점점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기업사회공헌의 개별사업들은 어찌어찌 되어가는 것 같은데... 전체를 보면... 사람들의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살기 어렵다는 말은 더 많이 들려옵니다. 사회문제들은 해결 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갈등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것 처럼 보입니다... 결국 기업사회공헌담당자인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회의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이쿠.... 임원이 바뀌셨네요...
성취감과 회의감을 오락가락 하며...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왕 할 거면 열심히 잘 해야지...' 라는 다짐을 하루에도 열번씩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스텝바이스텝.. 꾸역꾸역 나가고 있는데... 어이쿠.. 위에 임원이 바뀌셨네요.... 이제 좀 성과를 내고.. 이걸 몇년만 지속하게 되면... 좀... 뭔가... 변할 것 같은데... 새로운 임원이 오시자 마자.... '뭔가 새로운 거 없어... 회사에 사회공헌팀이 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 아니야.... 블루오션을 찾아봐..' 라고 다그칩니다. 사회공헌에 블루오션이 어디 있습니까? 다 레드레드오션이죠... 방식만 조금씩 바뀌고... 좀더 세련되어 질 뿐.... 우리가 하는 일은 결국 다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가는 건데... 블루오션을 찾으라니요.... 참.. 답답한 일입니다.
새로운 용어들은 자꾸 생겨나고... 공부를 안하면 불안해집니다.
말도 안되는 블루오션도 찾아야 하는데..... 기업사회공헌과 관련된 자꾸 새로운 용어가 생겨납니다. 공익연계마케팅이다... 전략적사회공헌이다... 근데...전략적사회공헌이라는 말이... 말이 됩니까? 전략이라는 것이 전쟁에서 나온 말이고... 적(適)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 적을 이기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내놓는 것이 '전략'인데... 기업사회공헌에 '적'이 어디있어요.... 다른회사의 사회공헌활동이 경쟁자입니까? 적입니까? .... 서로 힘을 합쳐서 해도 잘안될 판인데....
GRI, ISO26000.... 자선의 시대가 가고... 책임의 시대가 오면 뭘합니까? 책임의 시대가 왔다고... 이젠 기업이 개같이 돈 벌어서... 기업사회공헌에 '정승' 같이 쓰는 '시늉만' 하는 시대는 갔다고... 이젠 기업이 사회적책임을 다해야하는 시대라고.... 아무리 게거품을 물고 떠들어 봐야..... 회사에서는 계속 홍보용 그림만 요구합니다. 그거나 잘하라고...
CSV.... 이건 뭐.... 참.... 기업사회공헌을 하면서 돈까지 벌라고 하다니.... 미국교수가 한마디 한거 가지죠... 온 나라가 들썩거립니다. 말한 본인도 놀랄정도로... 완전히 '오버' 하는 거죠.... 정작 본국인 미국에서는 시큰둥한데... 바다건너 한국에서는 거의 새로운 복음이 나타난 정도입니다.... '마이클 포터' 상도 만들어가지고....이상한데 막주고.... 막... 참... 말이 안나와요.... 그런데... CSV한다고 하면서 기업사회공헌팀 이름바꾸고 난리를 치면서... 왜...? 하는 일은 '김장김치만들기'.....입니까..... 이건 진짜... 정말....... 말문이 막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사회도 변하고... 기업사회공헌팀 안팎에서 요구하는 것들도 많아지다 보니... '공부'라도 하지 않으면... 금방 도태될 것 같다는 위기감이 느껴집니다. 대학원도 다니고... 사회복지도 공부하고... 경영학 MBA도 하고... 관련된 책들도 막 다읽고.... 기업사회공헌담당자들이 진짜 공부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일주일에 한번씩 블로그도 막쓰고 그래요.... 와.... 진짜... 그런데...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막상... 실제 업무에 적용할 것이 별로 없어요..... 안타까운 현실이죠.... 공부란 것이 그런겁니다...^^
미래를 내다봐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기업사회공헌담당자들의 미래는 빤히 보입니다. 그냥 회사원, 직장인으로만 살면... 기업사회공헌담당자의 끝은 대부분 '부장' 정도이고 40대 중후반... 길어야 50대 초반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기업사회공헌실무자로 출발한 사람이 승진에 승진을 거듭해서 임원이 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잘해봐야.... 기업에서 설립한 재단의 '이사'정도 하면 성공한 케이스일겁니다. 그러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급하진 않지만... 중요한 일부터 해야 합니다.
회사업무에 있어서... 급하고 중요한 일은 내가 챙기지 않아도... 윗사람들이 알아서 잘 챙겨주기 때문에... 잘굴러갑니다. 그런데.. 본인이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급하진 않지만 중요한 일' 입니다. 기업사회공헌담당자로써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일해야 할까하는 그런 고민은 당장 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입니다. 다른 기업의 사회공헌담당자들과 만나서... 우리의 미래를 좀더 긍정적으로 밝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토론과 나눔... 협업도... 당장 하지않는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이렇게 퇴근하고 밤늦게... 기업사회공헌실무자 아카데미한다고.... 졸린 눈 비비고 앉아 있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니...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이런시도와 노력과 시간들이 결국 헛되지 않으리라 봅니다.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보면... 한사람의 힘으론 어렵겠지만... 두사람.. 세사람... 여러사람의 힘과 지혜가 모이고... 그것이 시간을 두고 쌓아지게 되면... 반드시 변화의 순간이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오늘 저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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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사회공헌실무자아카데미(중급반)은 3년차 이상의 기업사회공헌실무자를 대상으로 지난 4월8일에 시작되었으며, 격주 수요일 저녁시간에 진행됩니다. 모두 열한분의 멤버가 1기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8월에는 3년 이하의 초급자를 위한 초급반 2기가 개강됩니다. 수강생신청은 6월에 본 블로그를 통해서 공지됩니다. 아카데미의 강연은 본 블로그를 통해 계속해서 요약소개 하겠습니다. 오늘도 찾아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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