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여러분..
기업사회공헌팀과 함께 일 할 준비가 되셨는지요?
공연비를 좀 더 주실 순 없으신가요?
몇년 전...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로 옮기기 전에 일입니다. 몸 담고 있던 회사의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자선공연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실내악을 하는 스무명 규모의 오케스트라를 초청하여 저녁 1회 공연을 하는 행사였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장님과 공연에 관한 사전협의를 이것저것하고 헤어지려고 하는 찰나.... 오케스트라 단장님이 조심스레 말을 꺼내십니다. '유팀장님... 혹시 공연사례비를 조금 올려주실 순 없는지요?' ......
그때 우리 회사가 제시한 공연사례비는 천만원(9백만원으로 깍으라는 윗분의 지시도 있었습니다만...)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장님이 하신 말씀 " 천만원 받으면... 스무명이 공평하게 나눠도 50만원 정도입니다. 두시간 연주하고 50만원 받으면,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지요.. 그런데.. 실제로 단원들이 가져갈 수 있는 금액이 한사람 당 20만원도 채 안됩니다. 이 공연을 위해 최소한 5~6회 모여서 반나절 이상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 공연에 우리회사가 특별히 초청한 성악가가 있었는데.. 그 성악가의 곡을 별도로 연습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연습실 대여비, 연습할 때 먹는 식사와 간식비, 연습하는 시간에 대한 인건비, 연습하고 공연할 때 마다 커다란 악기를 옮기기 위한 교통비, 공연복 준비와 세탁비, 기타 오케스트라 운영비를 빼고 나면... 실제 공연을 하고 단원들이 본인 손에 들고 가는 현금은 십만원 정도밖에 안됩니다. 개인레슨이나 다른 잡이 없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한달에 평균 서너번(통상적으로는 한두번) 공연한다고 해도.... 손에 쥐는 돈이 몇십만원이 고작 입니다"
지금도... 몇년전 오케스트라 단장님과 삼성동 대로변에 서서 나누었던 그 이야기가 생생히 기억에 남습니다.
오늘은 아티스트 여러분께 기업사회공헌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드리겠습니다.
열흘쯤 전에 문화예술단체를 지원하는 기관에서 일하는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사회적기업형태의 문화예술단체들과 기업사회공헌이 협업할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 해서.. 찾아왔다고 하시는데.... 뭐.... 제가 문화예술 쪽은 거의 아는 것이 없어서, 별로 도움이 되는 말씀을 못드렸습니다. 그리고 며칠동안 곰곰히 생각하다가 오늘 블로그에 글을 씁니다. 기업사회공헌과 협업을 생각하기 전에 아티스트 분들이 알아두시면 좋을 것들 몇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첫째,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기업에서 사회공헌일을 한다고 하면, 대개 착하고 온순해서.. 부탁한 것을 거절하지 못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기업사회공헌담당자들이 평상시에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부탁이나 후원요청에 대한 '거절'입니다. 하루에도 서너번씩 거절하고... 찾아오시는 분들... 커피믹스 한잔 종이컵에 타드리고...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입니다. 그러니... 어떤 기업과 협업을 생각하고 계신다면... 적어도 몇번(또는 몇십번)은 거절 당하겠구나.. 하는 생각과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운좋게, 문화예술 쪽에 관심있는 회사나 사회공헌담당자를 만나더라고, 한번에 일이 술술 잘 풀리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공연비나 사업비가 아티스트 여러분이 기대하신 수준보다 훨씬 낮은 금액을 제시할 겁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돈을 잘 버는 큰 회사라 할지라도..... 사회공헌예산은 굉장히 아끼려고 하고, 사회공헌 실무자들에게 큰 돈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것 저것 요구하는 것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기업행사에 1회성으로 출연해서 공연을 하고, 공연 사례비를 받는 정도는 별로 복잡하지도 않고 큰 일도 아닙니다. 뭐.. 공연사례비가 조금 적을 순 있겠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뭔가.. 기업사회공헌팀과 엮어서 지속적인 프로그램이나 사업을 기획하고 계신다면 일이 복잡해지고, 사회공헌팀에서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집니다.
행사 기획단계부터 그 기업 입맛에 맞는 것을 여러차례 변경(!!)해 가면서 요구할 것이고, 행사나 프로그램을 진행 할 때마다 기업의 로고를 노출시켜달라고 할 것이고, 꼭 후원이나 협력기업으로 소개해달라고 할 것이고, 사진과 동영상을 요구할 것이고, 사업 중간중간에 와서... 이것 저것 물어볼 것이고 (기업사회공헌담당자들은 이런 걸 현장 모니터링이라고 합니다), 맘에 안드는 것이 있으면 잔소리 할 것이고... 지원 된 사업비에 대해 증빙과 보고서를 요구할 것이고, 사업이 종료 될 쯤 되면 사업의 성과와 평가결과를 내 놓으라고 할 것입니다. 생각보다 할 게 되게 많죠...^^;;
셋째,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컨텐츠를 제시해주면 좋겠습니다.
문화예술단체들이 기업사회공헌과 협업을 한다고 하면, 대개 '문화소외계층을 위한 찾아가는 전시나 공연' 아니면...'재능있는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사업' .. 이 두 가지가 대부분입니다. 이 두 사업도 매우 의미있고, 가치있고, 지속적으로 필요한 사업입니다만....
그런데.. 쉬운 사업들은 결코 아니죠... 기업이 지원해 주는 돈은 굉장히 적은데... 원하는 성과는 되게 크고.... 결국은 1년 정도 하다가... 손해(?)보거나 지쳐서 그만 두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일년동안 딸랑.. 2천만원 지원해 주고, 지역아동센터 10곳 아이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합창교육해서, 연말에 다 모아놓고 성대한 공연까지 하라고 합니다. 이게 가능한 일이 아니죠....인건비, 교통비, 공연장 대관료도 안나오는 일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은 기업사회공헌팀과 협력한다고 해서, 위와 같이.. 뭔가 의미있는 사업만 찾으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기업입장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컨텐츠(상품)들을 개발하고 제안해 주셨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요즘 기업에선 직원들을 위한 교육이나 복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일하기 좋은 회사라고 '티'내고 싶은 겁니다. 이런 기업의 욕구를 활용하면, 기업임직원들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프로그램 (기타, 바이올린, 플룻, 오카리나, 합창, 연극, 댄스, 락밴드, 미술, 사진 등등등)을 만들어 제안할 수 도 있습니다. 요즘 기업에선 어학 뿐만 아니라... 교양 관련 수업도 많이하고, 우리회사 같은 경우는 '요가'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또... 점심시간 임직원을 위한 음악회나 공연을 제안하는 것도 좋습니다. 요즘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외부 유명강사를 모셔다가 직원들을 위한 교양강좌를 여는 곳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회사 로비나, 컨퍼런스 룸에서 소규모로 30분 내외로 할 수 있는 공연프로그램을 월별 또는 분기별로 기획하여 제안해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뭔가... 의미있는 문화예술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면, 회사의 문화예술 동아리들과 협력하여, 앞에서 말했던... 찾아가는 공연이나 문화예술 교육프로그램을 해 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회사 임직원으로 구성된 문화예술 동아리를 대상으로 전문적인 교육을 제공(회사로 부터 교육비를 받고)하고, 그 교육의 성과를 임직원 봉사활동으로 활용하는, '임직원 문화예술 교육 + 임직원 자원봉사 프로그램' 을 기획하여 제안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후원을 받기보다, 상품을 팔 생각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업사회공헌은 예전부터 사회복지나 장학사업에 많이 편중되어 있었습니다. 여전히 지금도 거의 70~80%는 그쪽입니다. 그런데, 최근.. 재단을 설립하고 운영하기 쉽다(관련 공공기관의 간섭이 적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기업들이 문화재단을 만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쨋거나... 문화예술분야에도 기업사회공헌이 확대되는 현상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기업사회공헌을 통한 문화예술사업 만큼은 기존에 사회복지나 장학사업에서 일어났던 기업사회공헌의 '구습'과 '악습'을 탈피했으면 합니다. 소위 기업사회공헌의 '갑질' 이라고 불리는 일들이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문화예술단체의 분들이 기업사회공헌으로 부터 '후원' 이나 '지원'을 받는 존재로 본인들을 생각하지 말고, 당당히.. 문화컨텐츠를 제값에 판매하려고 하는 자세와 자부심, 정체성을 가지면 참 좋겠습니다. '자본'의 논리에 흔들리지 않는 '아티스트'의 당당한 자존심을 보여주길 기대해 보겠습니다.
아티스트 분들이 이 블로그에 들어와 보시지는 않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자 적어보았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짧은 가을... 충분히 만끽 하시길 바라며, 블로그 찾아주셔서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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