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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anced CSR & ESG

기업사회공헌담당자를 긴장하게 만드는 영화 "베테랑"

by Mr Yoo 2015. 10. 4.

 

 

기업사회공헌담당자를 긴장하게 만드는 영화

"베테랑"

 

 

 

5천원짜리.. 조조영화가 있어서 참 좋은 동네..

 

결혼 13년 동안 변함없이 공식적으로 받는 한달 용돈(교통비, 통신비, 회사 점심식권 값, 경조금 빼고..)이 10만원인 저에게는 만원이 훌쩍넘는 3D아이맥스 영화관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일입니다. 그나마 동네에 조조영화 5천원하는 영화관이 있어, 두어달에 한번 쯤은  주말 아침에 혼자 영화를 보는 여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기업사회공헌담당자인 저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영화 '베테랑'에 대한 감상평입니다(영화내용이 조금 담겨 있으니, 영화를 보실 분들은 나중에 글을 읽어셔도 좋을 듯..^^)

 

 

삼성을 생각한다... 가 생각나는 영화..

 

삼성그룹 법무팀에서 일했고 2007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비리' 고발의 주인공.. 김용철변호사가 쓴 책.. '삼성을 생각한다' 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일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같다. 그리고 그 세상을 만들어 주는 돈과 사람들에 둘러쌓여 진짜 세상을 모른다' ...... 영화 베테랑을 보는 내내... 책의 내용이 계속 오버랩 되었습니다. 

 

'재벌' 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특히 '세습'된 부에 둘러쌓여 사는 사람들은 김용철변호사의 말대로.. 일반 서민들의 세상과 삶을 알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재벌까지 안 가더라도..... 서울 강남 부촌에서 태어난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흔히 말하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돈' 에 대한 개념이  저 같이 '흙 숟가락' 물고 태어난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기업사회공헌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사회공헌이나 CSR에 대해 관심이 있는 젊은 친구들 중엔 간혹 금수저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친구들이 있는데... 이 친구들에게 기업사회공헌이나 CSR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를 물으면.... 우리사회나 공동체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나  변화에 대한 열정보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나  본인이 기업을 경영하게 되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라는 대답을 합니다.

 

 

저 회사에도 사회공헌팀이 있겠지....

 

영화를 보면서, 기업사회공헌담당자인 저는 계속해서... "저 회사에도 사회공헌팀이 있겠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의 모티브를 제공한 '트럭기사 폭행사건과 매 값' 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사회공헌을 제일 잘한다고 자평하고 있는 'S그룹'의 실제 사건이었고... 감옥에 가는 대신 호텔 VIP룸처럼 꾸며진 병원에서 아픈 척 하고 있는 회장의 모습은... TV 뉴스에 단골로 등장하는 대기업 회장들의 모습입니다. 

 

기업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형제, 남매간의 전쟁을 방불케하는 갈등은.. 얼마 전에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L그룹'의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영화내내 등장하는 재벌 아들의 싸가지 없는 슈퍼 갑질은 당연히 땅콩 회항사건과 오버랩이 됩니다. 늘 가까이 경호원을 두고, 사소한 문제도 힘과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H그룹'의 지난 사건을 기억나게 합니다.

 

우리나라 사기업 중에 열손가락에 드는 '그룹' 들을 살펴보니... 지난 10년 동안 오너나 경영자, 고위 임원들이 윤리, 도덕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기업은 안타깝게도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난 10년 동안 이 기업들의 사회공헌 지출순위도 우리나라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L그룹은 사회공헌은 별로 였습니다만..... 그래서 얼마 전에 부랴부랴 문화재단 설립했습니다). 

 

 

뭐든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영화 베테랑에서 재벌 2세인 조태오(유아인 역)의 생각과 행동방식은 단 하나... "돈이면 뭐든지 해결할 수 있다" 입니다. 모든 문제의 발단과 결론, 해결방식은  "돈" 입니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지금의 현실에서 조태오의 생각과 행동방식은 90% 정도는 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안타깝게도 말이죠...... 

 

그런데.. 10% 정도 돈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도철(황정민 역)형사 같은 사람들입니다. 돈 보다는 '정의' 나 '정직' 과 같은 옳은 가치와 생각이 중요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 10%의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그래도 이정도는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업사회공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기업이 커지면 그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그 사람들 중에는 윤리,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분명히 섞이게 마련입니다. 기업 오너와 가족들도 사람인지라.... 성인군자에게 기대하는 수준의 윤리, 도덕 규범을 완벽하게 지켜나갈 수 없습니다. 게다가 태어날 때 부터 돈으로 둘러쌓인 완벽히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재벌 2세, 3세들에게 일반 서민들의 소박하고 상식적인 수준의 인식과 정서와 교감을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기업사회공헌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고위임원과 기업의 경영자, 오너, 오너일가들 중엔 아마도 개인적으로 윤리,도덕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돈이면 뭐든지 가능하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기업사회공헌의 주된 대상인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밑에서 손발의 역할을 하며 일하는 기업사회공헌담당자들은 ..... 어떻게 일하면 좋을까요?

 

조태오 곁에서 늘 '돈'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최상무(유해진 역)를 보며...  '저렇게 일하지는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사회공헌' 이란 '돈'으로 해결했던 우리나라 기업사회공헌의 흑역사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 봅니다. 우리나라 기업만 그런 건 아니라고.. 다른 나라 기업들도 다 그런다고.... 스스로 위로 할 수준과 한계는 이미 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럼... 사표를 써야 하나....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점점 더.... 기업과 재벌을 싫어하겠군..... 기업에서 아무리 좋은 사회공헌사업을 해도... 좋게 바라봐 줄 수 없겠는데...' 라는 무거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기업사회공헌담당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만일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면.... 저 또한 기업사회공헌은 '새빨간 거짓말' 로 인식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죽을 뚱 살 뚱 하면서 열심을 내어 하는 일이 '새빨간 거짓말'이고... 기업이 저지른 잘못을 덮기 위한 위장막에 불과하다면... 내가 이 일을 계속할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그럼... 사표를 써야 하나.... 하는 생각.......극장에서 나와 집으로 걸어가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고민은 계속됩니다.  기업사회공헌 만으로 기업을 바꿀 수 없고, 기업도 바꾸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회는 더더욱 바꿀 수 없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 기업사회공헌의 현실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 까요?

 

그동안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책임경영)을 가장 잘하고 있다고 평가되어 온  '폭스바겐'의 사태를 보면서, 또 한번 깊은 절망과 회의에 빠집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 까요?

 

................ 고민해도 답이 없다는 것이 더 속 쓰리게 합니다. 

 

저는 10월8일부터 10월17일까지 런던과 에딘버러에 다녀옵니다. 영국기업과 NGO들의 CSR에 대한 현황을 살펴보기위해 휴가를 내고 자비를 들여, 함께 준비해 온 멤버들과 떠납니다. 잘 보고  잘 배우고 오겠습니다. 상황이 되면, 영국에서 블로그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상황이 안되면... 영국에서 돌아온 18일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블로그 찾아 주시는 모든 분들... 늘 감사드립니다.   

 

** 이미지는 베테랑 공식 사이트에서.... 감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