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anced CSR _ 칭찬과 거절의 균형
기업사회공헌담당자의 지혜로운 거절
거절을 잘 못하는 Mr Yoo
수년전 회사로 중년여성이 한 분 찾아왔습니다. 저를 찾아온 것은 아니고... 사회공헌팀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안내 데스크의 연락을 받고, 아래로 내려가 보니... 남루한 차림의 며칠 굶은 듯한 쾡한 얼굴을 한 중년여성 한분이 서 계셨습니다. 점심은 드셨냐고 여쭈어 보니.. 먹지 못했다고 하셔서... 근처 카페에 자리잡고 요기거리를 좀 사드렸습니다. 말없이 샌드위치와 차를 다 드시고 나서... 도움이 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서울 변두리 동네에서 작은 기도원을 운영하고 있는 전도사님이셨는데... 갈곳 없는 어르신들이 한분 두분 찾아오셔서 현재는 열분 정도 모시고 있는 상황이라고... 그런데.. 운영비가 없어.. 어르신들 식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그래서 회사가 도움을 좀 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회사에서는 사업계획이 있고, 예산도 정해져 있고, 회장님이나 사장님의 지시사항이 아니면 응급하게 지원할 수 있는 방법도 없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상황을 말씀드리고, 지원해 드릴 수 없다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일주일에 서너번씩 계속 찾아오시는 겁니다. 2주째 찾아오시길래.... 그럼... 기도원에 한번 가보자고 했습니다. 그분이 잠깐 망설이더니... 그러면 다음 주에 어느 지하철역으로 오면 자신이 안내하겠다고 했습니다. 약속한 날 그분을 만나 지하철을 타고 마을버스를 타고 기도원에 가보았습니다. 말 그대로 상가 지하에 있는 어두컴컴한 기도원에 어르신 열댓분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회사로 돌아와 고민고민하다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회사 돈으로는 도울 방법이 없길래... 개인 통장에 들어있던 돈을 찾아서 그분께 전해드렸습니다. 한달가량 어르신들 굶지 않으실 정도의 적지도 많지도 않은 돈이었습니다. 돈을 전해드리고 나서... 2~3주 후에 어떻게 지내시나 싶어.. 기도원에 찾아갔더니... 여전히 어르신 몇분이 웅크리고 앉아 계시길래.... 한 어르신께 '전도사님 어디계시냐고 여쭈었더니... '우리 기도원에는 전도사가 없다고... 목사님이 계시는데.. 낮에는 다른 일 하시고, 저녁과 밤에만 계신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지난 번에 함께 왔던 중년여성분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그 여자는 전도사가 아니고... 한달전에 와서 오갈때가 없다고 며칠만 묶게 해달라고 해서 한 열흘 있다가 얼마전에 말도 없이 나가버렸다'고 하는 겁니다'
참.. 바보같죠.... 한번만 그런 것도 아니고.... 몇번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돈 꿔주고 못 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거절을 하지 못해 생긴 참.. 바보 같은 일입니다.
오늘은 거절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기업사회공헌담당자로 일하다 보면... 외부에서 요청이 참 많이 들어옵니다. 그 요청들 중에 1%도 지원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메일이나 우편으로 제안서가 오면 그나마 거절하기가 쉬운데... 직접 찾아와서 불쌍한 표정지으며 간곡히 요청하면... 참 거절하기가 힘듭니다. 여러번 찾아오면 더 힘들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해야 될 때가 대부분입니다. 저처럼 귀가 얇고 마음이 여린(?) 담당자들은 늘 더 돕지 못해 안타까워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기업사회공헌담당자의 지혜로운 거절방법...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요청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실무자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요청서, 제안서 받아서 뭐하나요... 찾아오시는 분 만나서 뭐하나요... 아예 안받고, 안 만나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했던... 전 직장의 인턴사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렇죠... 돕지도 못할 거면서 제안서는 왜 받고... 사람은 왜 만나나요....
당장은 돕지 못하고, 당장은 함께 협력 할 상황이 되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도울 수 있는 방법, 함께 일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제안서 보내면 받았는지 안받았는지.. 묵묵부답이고, 회사까지 찾아갔는데 안내 데스크에서 문전박대하고... 겨우 만났는데.. 명함도 안주고... 커피는 커녕... 물한잔 안주고... 저희는 이런 사업에 관심 없으니 딴데가서 알아보라고 하는 *가지 없는 사회공헌담당자들이 꼭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공헌일을 하다보면...언제 무슨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그동안 받아두었던 제안서와 명함들을 잘 정리해 두었다면 큰 힘이 됩니다. 받은 제안서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꼭 그 단체가 아니더라도... 유사한 사업이나 단체를 소개받을 수 있는 정보와 네트워크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거 거든요.... 그러니... 보내주는 제안서, 찾아오겠다고 하시는 분들을 귀히 여기시면 좋겠습니다.
제안서와 면담은 현장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현장경험이 없는 공채출신 사회공헌담당자들이나, 다른 부서에서 일하다가 사회공헌팀으로 온 경우... 현장경험이 없다고.. 자신없어 하지만 말고... 들어오는 제안서... 찾아오는 분들을 통해 현장을 배우면 됩니다. 대부분의 제안서에는 현장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고, 어떤 도움이 얼마나 필요하며... 도움을 주면 어떻게 사업을 하겠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 내용들을 보고... 이런 현장에서는 이렇게 사업이 이루어지는구나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겁니다. 찾아오는 분들도 잘 맞이하고, 친절하게 응대하다보면... 그분들께 도움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현장에 대해 한 수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됩니다.
그러니... 제안서 오면 꼼꼼히 잘 읽어보고, 첨부자료가 있으면 그것도 잘 살펴보고... 면담을 하게 되면 정중히 맞이하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경청하는 것이 다 나중에 피가되고 살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제안서와 면담을 통해 우리 사업을 돌아보자
가끔씩 참 좋은 사업과 좋은 분들을 만날때가 있습니다. 우리회사의 사업과 연관되지는 않지만... 이런 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파트너십을 하면 참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을 때가 있고, 우리회사의 사업이 제안받는 사업보다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제일 잘 하는 것 같지만.. 세상엔 우리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제안서와 면담을 통해 우리회사의 사업을 반성하고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사업을 새로 시작할 때 그 제안서와 면담했던 분들을 찾게 되는 겁니다. 반성은 스스로 하기가 참 힘듭니다. 우물 밖 바깥세상에 좋은 것들을 경험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던지... 아니면 좋은 기회들이 찾아올 때 놓치지 않는 방법... 그 두가지 밖에는 없는 것이죠...
함께 고민하면 좋은 방법이 생길 수 있다.
얼마전에 지방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어느 지역에 있는 장애인제과제빵작업장이었는데... 작업장 원장님이 유력한 정치인의 인맥을 동원해 우리회사 고위임원에게 지원을 요청한 경우였습니다. 물론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오죽 도움이 필요했으면... 그런 방법이라도 썼을까 싶어.. 제안서를 읽어보고,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고위임원의 지시사항인데... 현장도 안가보고 거절하면 회사내에서 애매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다녀왔습니다.
현장에 가서 직접 둘러보고, 원장님, 사무국장님도 만나서...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안서에 요청한 것 보다 더 시급한 것이 있었습니다. 제안서에는 제과제빵설비, 기술지원, 교육 등등등... 생각할 수 있는 여러가지 모든 것들을 다 해주면 좋겠다고 몽땅 써 놓으셨는데... 현장에 가보니... 그런 일반적인 것 보다... 급한 것이.... 작업장의 중장기 사업방향이 서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제과제빵사업을 시작한지 2~3년 정도 밖에 안되었고, 현재는 원장님의 인맥으로 여기저기 판매처를 확보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앞으로 이 작업장을 어떻게 꾸려갈지... 제품의 특성은 무엇으로 할지... 누구를 주 고객으로 할지... 마케팅과 영업은 어떻게 할지에 대한 충분한 계획없이... 외부에서 시설이나 장비, 재원을 어떻게해서든 끌어드리면 해결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작업장의 향후 운영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런 계획을 수립할 필요성에 대해 서로 공감하고.. 저는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장비와 재원에 대한 지원을 거절 한 것이었지만... 더 먼 미래를 보면...그 작업장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향후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작업장의 중장기 운영계획을 수립하는데 도움을 드리기로 했고, 서울에 있는 작업장들과도 네트워킹의 기회를 열어드리기로 했습니다.
특히, 설립된지 얼마되지 않은 복지시설이나, 운영경험이 부족한 리더가 있는 시설이나 단체의 경우는... 뭐든지 무조건 후원을 받으면 좋다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모든 것을 다 요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사회공헌담당자는 무조건 거절하지 말고, 그 시설과 단체입장에서 같이 고민을 한번 해 보면 좋겠습니다.
함께하는 고민을 통해 그곳에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돈이나 물건을 지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지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서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아름다운 마무리...
지혜로운 거절의 마무리는 '양해와 감사의 인사' 입니다. 제안서를 받고 정신없이 지내다가 깜빡 잊고 답을 안하는 경우가 저도 종종있습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에게 제안서 보내시고 답장 못받으신 많은 분들께 거듭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제안서를 보낼 때... 보내는 분의 마음과 기대는 참 클것입니다. 그 기대의 마음에 부응하는 응답을 못해드리는 것이 죄송해서.... 답을 안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 보다는... 분명한 거절의 메세지와 양해의 인사를 드리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다고 봅니다.
제가 보통 사용하는 이메일 거절 메세지의 한 형태를 예로 보여드립니다.
김OO원장님.. 안녕하십니까?
SPC행복한 재단의 유승권 사무국장입니다.
원장님께서 지난 주에 이메일로 보내주신 제안서는 아주 잘 받아보았습니다.
중증장애인들과 현장에서 여러가지 의미있는 활동을 하시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작업장의 홈페이지도 들어가 보았습니다.
원장님과 선생님들이 장애인 작업자들과 환하게 웃으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참 좋아보였습니다.
원장님께서 요청해주신 후원금의 필요성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먼저, 이번 후원요청에 대해 지원해 드리기 어렵다는 말씀드립니다.
현재 SPC의 경우 원장님이 제안하신 사업과 거의 동일한 사업을 이미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사한 사업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경우, 비슷한 다른 사업에 지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원장님이 요청하신 후원금의 액수가 현재 사업의 전체 예산보다 훨씬 큽니다.
큰 예산의 사업은 연단위로 계획하고 추진하기 때문에 이번 경우와 같이 연중에 지원요청이 오면
들어드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점 깊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보내주신 제안서를 잘 보관하고 있다가, 협력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이 되면 꼭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열심과 열정을 다해 좋은 제안서를 보내주셨는데, 기대에 부응해드리지 못하고
실망의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 가득입니다.
현장에서 중증장애인들의 자립과 자활을 위해 애쓰시는 원장님과 선생님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SPC행복한 재단 유승권 올림.."
물론... 이런 메일을 받으시면..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으실 것입니다만... 그래도... 안 보내는 것 보다는 낮지 않을까요? 전화나 미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기분과 입장을 생각한 거절... 쉽진 않지만... 기업의 사회공헌담당자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실무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도 잘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봄이 오니 좋습니다.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여러분도 참 좋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 이미지는 역시 구글... 제가 찍은 사진도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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