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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anced CSR & ESG

이랜드는 불매운동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by Mr Yoo 2016. 12. 24.




이랜드는 불매운동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내 얼굴에 침을 뱉는 심정으로....


2016년 크리스마스 이브..  이시간... SNS는 국회 최순실청문회와 특검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참.. 답답하고 화가 납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모멸감과 허탈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이랜드의 아르바이트 근로자 임금 떼먹기와 그에 따른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10년 전 제발로 그만두고 나온 회사지만.... 참 부끄럽고... 이젠 어디가서 이랜드에서 일 했다고 말하기도 창피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은 여러 고민 끝에 제 얼굴에 스스로 침을 뱉는 심정으로 블로그 글을 씁니다.   


이랜드만 그런게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은 이랜드를 더 초라하고 형편없는 회사로 만드는 것입니다.


프랜차이즈 외식업계, 아르바이트 근로자들의 상황을 좀 알고 이랜드를 편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아르바이트 근로자들의 임금꺽기를 이랜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알바 노동법을 제대로 지키는 곳이 몇군데나 되느냐... 뒤져보면 더한 곳도 많다" 고  두둔할 수 도 있겠지만... 이랜드가 그동안 내세운 기업경영철학이나 원칙을 살펴본다면... 그런 변명은 이랜드를 더 초라하고 형편없는 회사로 만드는 일일 뿐입니다.  


이랜드 홈페이지에 가면 이랜드의 경영철학과 원칙이 아주 잘 나와있습니다. "나눔, 바름, 자람, 섬김... 벌기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번다. 기업은 반드시 이익을 내야하고 그 이익을 내는 과정에서 정직해야 한다. 기업은 학교이며 인격을 갖춘 지도자를 배출해야 한다. 고객의 유익을 최선으로 여기며 섬기겠다" 는... 네가지 경영철학은 제가 일하던 10년 전에도 시시때때로 읽고 외우던 것이었습니다.


즉... 이랜드는 스스로.. 세상의 다른 기업과는 차별되는 올바른 경영철학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선언한 회사입니다. 그리고.. 그 경영철학의 바탕엔 창업자인 박성수회장의 기독교신앙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랜드가 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따라 남들도 그렇게 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임금꺽기를 했다고 하는 것은.. 이랜드 입장에서 보면.. 차마 입에 올리기도 어렵고... 굉장히 쪽 팔리는 일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랜드는 표면적으로 다른 회사들과 다른 바른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정신을 잘 모르는 세상의 회사들과는 다른 바른 길, 옳은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는 회사가 세상의 나쁜 길을 가는 다른 회사들의 잘못을 따라서 간다는 것은 정말 쪽팔리고 창피한 일인겁니다...  



이랜드 그룹 경영이념 www.eland.co.kr



헌신을 미덕으로 아는 조직문화가 혹사를 강요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쪽 팔린 이야기를 하기전에 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랜드는 조직문화가 일반기업과 좀 많이 다릅니다. 직원들의 기업에 대한 충성심, 로열티, 자부심이 굉장히 강합니다. 그런데... 전체 직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이랜드 기업문화를 좋아하고 그것이 편한 사람들만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랜드의 조직문화를 좋아하고 편하게 생각하는가 하면.. 대학시절에 기독교 선교단체나 교회 청년부 활동을 열심히 하던 사람들입니다. 즉.. 이랜드의 조직문화는 일반기업의 조직문화가 아니라... 기독교 선교단체나 보수적인 교회의 청년부와 유사합니다.


기독교 선교단체와 교회의 청년부는 공동체에 대한 구성원들의 헌신을 요구합니다. 헌신의 정도가 강할 수록 신앙심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공동체내에서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헌신의 강도를 측정하는 것은 크게 두가지.. 하나는 공동체 활동에 투여하는 시간의 양.. 그리고 또 하나는 공동체 리더의 가르침이나 지시에 순종하는 정도.. 입니다. 


아침 7시에 출근해서 팀원들과 함께 QT(Quiet Time..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를 합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전직원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채용한  사목(社牧)이 예배를 인도합니다. 회사내에 기도실이 있고, 기도실에서는 정기적으로 기도회가 열립니다. 사목은 회사내의 예배진행과 함께 임직원 상담사의 역할을 합니다. 크리스마스때엔 전 임직원이 모여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고 성탄축제로 본부별 장기자랑도 합니다. 팀장이나 임원은 상사인 동시에 신앙의 선배로서 리더의 역할을 맞습니다. 회사란 것만 빼면.. 거의 교회나 선교단체와 같이 운영되는 곳이 이랜드란 회사입니다. 


대학때 선교단체나 교회 청년부에서 열심히 헌신하며 생활했던 친구들에겐 이 보다 더 좋은 회사 환경이 있을 수 없습니다. 회식자리에서 억지로 술을 권하지도 않고... 회사내에서도 언제나 성경을 읽고 기도 할 수 있으며.. 고민이 있으면 사목을 찾아가 상담 받을 수 도 있고.. 부장님은 교회 선배처럼.. 신앙과 일, 인생에 대한 조언을 언제나 시시콜콜 해 주시니.... 신앙생활과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이 보다 더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헌신.. 즉.. 공동체(조직)에 대한 아낌없는 시간투자, 리더에 대한 순종이... 업무로 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시간외 근무에 대한 수당을 요구하는 것은 공동체(조직)에 대한 헌신이 부족한 것이고... 부장, 점장이 잘못된 업무지시나 부당한 요구를 하는데.. 그것에 순종하지 않으면 역시 공동체(조직)에 대한 헌신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쉽게 말씀드리면... 이렇게 신앙생활과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회사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임직원들이 본인이 정당하게 받아야 할 시간외 수당 쯤은 당연히 희생해야 하고...  윗 사람이 조금 이상하거나 아닌 것 같은 지시를 하더라도.. 조직 전체를 위해 그냥 알아서 순종해야 하는 것이... 이랜드의 조직문화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랜드에서 일할 때 부장님들의 전설같은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몇달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고 회사 책상위에 침낭을 깔고 잠을 자며 일했더니(일명 침낭경영) 매출이 엄청나게 오르더라... 어떤 부장님은 새로운 브랜드 런칭을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출근해 회사 기도실에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일명 새벽기도 경영)을 몇년째 하고 있는데... 그 부장님이 맡아서 런칭하는 브랜드는 늘 성공하고 있다더라... 매출이 오르지 않아 온 점의 구성원들이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함께 기도회를 했더니... 기적같이 매출이 상승하더라... 등등의 이야기들...


회사내에서 미담(美談)화 되는 그 이야기들 이면에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임직원들의 개인시간과 사생활을 스스로 알아서 포기해야 한다는 논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과 가족, 그 무엇보다 회사를 최우선으로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일에 보내고.. 회사의 지시에 일말의 의심이나 불평없이 따르는 사람들에게만... 리더의 역할이 주어집니다. 책임자로서 승진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전문성이나 능력보다는.. 최고 경영자에 대한 충성심, 조직에 대한 순종과 순응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 이랜드의 기업문화입니다.        





사회공헌을 많이 한다고 해서... 법을 어겨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상식입니다.


저는 2004년 부터 2006년까지 3년 정도.. 이랜드그룹의 사회공헌을 담당하는 이랜드복지재단에서 일했습니다. 주로.. 후원이 부족한 미자립 소규모 복지시설을 찾아 지원하고, 국내외 재난현장 곳곳을 찾아 긴급구호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북한에 젖소농장을 만들기도 했고, 여러 곳에 의류를 지원하는 일도 했습니다.


이랜드는 회사 이익의 10%(기독교의 십일조와 같은 개념)를 사회공헌에 사용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습니다. 실제 현금 기부만으로 10%가 되지 않지만 의류를 포함한 물품기부까지 합하면.. 10%를 유지하고 있긴 합니다. 또한.. 기업의 창업주이자 오너인 박성수회장은 대기업의 오너 답지 않게 스스로 굉장히 검소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며..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보다는 기업을 운영하고... 다양한 복지사업과 기독교 선교사업을 위한 지원활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랜드와 박성수회장을 알고 있는 많은 기독교 교회들과 목회자, 기독교와 관련된 선교단체들은 이랜드와 박성수회장의 성공을 "신앙과 나눔의 '승리'이다" 라고 자주 표현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과연 이랜드가 성공한 회사일까요? ... 과연 이랜드가 기독교 정신을 바르게 비즈니스에 적용하고 있는 회사일까요? ... 외형적으로 보면.. 이화여대 앞 작은 보세 옷가게에서 시작한 의류회사가 수조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수만명의 임직원들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으니... 성공한 회사처럼 보이지만... 


CSR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 회사로 보기에는 아직 갈길이 먼 것 같습니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본인들이 세워 놓은 경영철학과 원칙도 지키고 있지 못하는 상황을 보면.... 아직 이랜드의 성공을 말하기엔 이른 것 같습니다. 


기독교 교회에서는 "승리" 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주일 청년부 예배가 끝나고 헤어지면서... "형제, 자매님.. 이번 주에도 승리하는 삶을 사세요" 라고 인사합니다...  "승리" .... 세상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 그래서 세상에서 볼 때는 실패한 것 처럼 보이고... 패배한 것 처럼 보이지만... 성경적인 기준에서 보면 오히려 그 패배와 실패가 "승리" 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랜드는 아마도 기독교의 "승리"의 개념을 비즈니스에 적용하고 그것이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랜드 경영철학에 기독교적 승리의 가치들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이랜드의 외형적인 성공을 기독교적 의미의 "승리"로 절대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생각합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 매출의 증대, 충성스런 핵심 임직원들이 누리고 있는 그들만의 조직문화를 지키기 위해.. 현장 끝자락, 영업의 최전선의 아르바이트 근로자들의 임금을 조직적, 지속적, 불법적으로 깍아낸다는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승리"와는 정반대의 개념입니다. 만일 세상의 모든 기업이 아르바이트 근로자의 임금깍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랜드는 그러지 말고.. 오히려... 근로자들이 좋은 대우와 환경속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것이.. 이랜드의 경영철학에 적합하며... 기독교적인 "승리"에도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랜드는 기업의 이익 10%를 사회공헌에 쓰는 것이 아니라.. 먼저 CSR..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법과 기준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기업내부에서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기업이다"라고 월요일 아침마다 외치고 예배드려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다. 세상의 법과 기준, 상식을 지키면서.. 그 위에 기독교 정신을 더하는 것이 이랜드가 살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공부하는 대학원 석사과정생 중에 중국 이랜드에서 5년 동안 일하다가 유학온 중국친구가 있습니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이번 사건에 대해 사견을 물으니... "중국 매장에서도 워낙 흔히 있는 일이라서.... 중국 근로자들이 일하다가 금방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랜드는 일 많이 시키고.. 월급 조금 주는 것으로  중국에서 유명한 회사예요...."  .... 그 친구에게... 차마.. 제가 이랜드에 다녔다고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이랜드가 이번사건과 관련하여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사과와 보상이 아닌... 경영철학과 리더십, 조직문화의 혁신적인 개혁이 필요해 보입니다. 10년전 홈에버 비정규직 고용승계 문제때에도 이랜드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올바른 경영'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했습니다. 그 '올바른 경영'의 결과물이 아르바이트 근로자의 임금꺽기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홈에버 사태이후 10년 동안 이랜드는 변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기업과 최고 경영자에게 무조건적인 충성과 헌신을 다하는 "종" 들에게는 승진과 보상을... 그렇지 않고  금방 그만두고 우리 조직원이 될 것 같지 않은 시간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불법적, 일방적으로 깍아버린 급여와 부당해고를 일삼는 이랜드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고... 누가 기독교 정신을 잘 지키는 올바르고 좋은 회사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기독교 정신에 먹칠하는 회사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이랜드 그룹 홈페이지에 게시된 사과문



기업사회공헌이 아닌.. 사회책임경영... 자선사업이 아닌 CSR로 가야하는 이유가 이번 이랜드 사태를 통해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기업의 이익 얼마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 자체가 올바라야 한다는 이랜드의 경영철학을 지키는 그런 회사.. 그런 이랜드가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크리스마스에 복되고 행복한 소식이 아니라... 짜증나고 힘든 소식들만 있어서.. 마음이 참 어렵습니다.  자기가 일했던 회사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비판하면 되겠느냐고 타박하는 분이 계실 수 도 있겠지만...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썩은 고름은 짜내야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지  않겠습니까.....ㅠㅠ;; 


블로그 늘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 12월31일 송년특집 인터뷰 2..... 올해 마지막 블로그로 찾아뵙겠습니다.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