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회공헌의 유니버설디자인
진짜 어려운 사람을 찾아오라고 하십니다.
여름휴가시즌이 한창이었던 지난 주에 멀리 경상남도에서 기업사회공헌담당자 한분이 여의도로 찾아오셨습니다. 휴가 중에 서울에 올 일이 있었는데 한번 만나고 싶다고 해서, 잠깐 만나 팥빙수 한 그릇 했습니다. 이분의 고민은 올해 초에 사장님이 새로 오셨는데,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시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후원을 많이 하시는 분이라, 사회공헌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그것이 왜? 고민이냐고.. 다른 회사의 사장님들은 사회공헌에 너무 관심이 없어서 걱정인데.. 라고 제가 되물었더니...
"새로오신 사장님이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내서 도우라고 하시거든요.. 어렵지 않은 사람들을 돕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들의 버릇만 나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래서.. 제가 지난 몇 달 동안 시청, 구청, 동사무소, 복지관.. 이런 데를 이잡듯이 다니면서 우리회사가 장기적으로 도울 가정 50가정을 추천 받아 리스트를 만들어서 사장님께 보고드렸거든요.. 그랬더니.. 사장님이 리스트에 있는 가정들이 정말 어려운 상황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증빙자료를 가져오라고 하시네요. 이미 동사무소나 복지관에서 정말 어렵다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추천을 받은 가정들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사장님께서 화를 내시면서 그 사람들 말을 어떻게 믿냐고..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하고, 실제 형편이 어떤지에 대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나 증거가 될 만한 자료를 가지고 오라고 하시네요... ㅠㅠ"
소외계층 집중발굴 실시
제가 예전에 인터넷에서 위에 있는 포스팅을 보고,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하며 스크랩 한 자료입니다. 2014년 12월 부터 인천시 동구 신고(?)센터에서 '소외계층 집중발굴을 실시'한 내용입니다. 포스터 하단에 보면 '특별신고기간, 신고하실 곳' 이라고 나와있습니다. 소외계층을 '신고'해야 할 대상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보건복지부와 구청에서 말입니다.
경상남도에 있는 OO기업의 사장님의 지시가 드문 일도 아니고 틀린 일도 아닙니다. 대부분 기업들의 회장님, 사장님들은 직원들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 번 돈을 가지고, 도움이 필요없는 사람들에게 사회공헌을 한다고 하면 당연히 화를 내고 싫어하실 겁니다. 우리회사 회장님도 그러시니까요... 기왕에 사회공헌으로 쓸 돈이면 정말 필요한 일에 가치있게 써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며 당연한 지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생각은 소외계층에 '집중'하는, 소외계층만 '고집'하는, 소외계층만 자꾸 따로 '분리'하려고 하는 기업사회공헌은 한계가 분명히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깔끔하게 잘 해 놓으면 후원이 들어오지 않아요.
인천에 있는 ** 아동양육시설의 원장수녀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양육원의 환경이나 아이들 입고 있는 옷이 너무 깔끔하거나 좋으면 후원이 잘 안들어와요.. 후원하러 왔다가 아이들이 좋은 옷을 입고 있거나, 좋은 음식을 먹고 있으면.. '여기는 (후원 안해도) 아이들이 잘 입고 잘 먹네요' 라고 말하고.. 후원하지 않고 그냥 돌아섭니다. 그래서 고민이예요. 아이들 사는 환경을 지저분하게 하고 일부러 허름한 옷을 입힐 수 도 없고.."
오래전이지만, 제가 그룹홈 생활교사로 일할 때 일이 기억이 납니다. 어떤 기업의 사회공헌담당자가 그룹홈에 찾아와 여기저기를 살펴 보더니 뭔가를 메모합니다. 슬쩍 봤더니.. 방3개, TV29인치, 냉장고, 김치냉장고, 전자레인지, 소파, 식탁, 컴퓨터.. 이런 걸 적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확인하며 사진도 찍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후원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개인 후원이나 기업사회공헌의 시작은 돕고자 하는 대상의 형편이 얼마나 어려운가, 정확히 말해 '얼마나 어려워 보이는가'를 확실히 확인한 이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후원을 받아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이나 단체, NGO, NPO 들은 어쩔 수 없이 후원대상의 어려운 점, 힘든 점들의 극단적인 사례를 발굴하듯이 들추어내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더 어렵게 보일까, 더 자극적이게 보일까를 고민하고 그 점을 찾아 광고와 홍보물을 만들고 후원자들의 후원을 요청합니다.
저는 그런 극단적인 사연과 광고물을 접할 때 마다 이 홍보물에 등장하는 아이, 어르신, 장애인 당사자들이 자신이 등장하는 후원 홍보물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속 상하지는 않을까.. 그래도 도움을 주니까 고맙다고 생각할까.. 하는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또 하나는 그렇게 극단적으로 만들어진 후원요청 홍보물과 광고 때문에 사회공헌담당자들은 점점 더 극단적으로 어려운 대상을 찾으려고 합니다. 회장님이나 사장님들이 극단적인 사례가 나오는 신문기사나 광고를 보신 후 우리 회사가 후원하는 사람들의 사정이 어떤지 제대로 조사하고 있냐고 다그치시고, 신문기사나 광고에 나오는 이런 사람들을 찾아 도우라고 지시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찾아 도우면 더 어려운 사람은 없느냐고 확인하고 더 어려운 사람을 찾으라고 지시받고 그럼 더 어려운 사람을 찾기 위해 애쓰는 이런 악순환.... 어느 지점에서는 이것을 멈추고 끊어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별적 우대가 아니라 다름을 느끼지 못하는 단계..
대학 때 교통사고를 당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아주 잘생긴 후배가 있습니다. 그 친구가 요즘 아주 살맛이 난다고 합니다. 얼마 전 드디어 꿈에 그리던 마이카(척수장애인이 운전할 수 있도록 개조된 자동차)를 장만해서 아주 편하게 출퇴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친구를 가끔 만나면 이런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지하철을 탈 때 계단 리프트를 타고 있으면,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이 정말 불편하거든요.. 그냥 모른척 해주는 것이 제일 좋은데, 어떤 어르신들은 혀를 끌끌차기도 하고 어떤 아주머니들은 '에고 얼마나 힘들까' 라고 한마디씩 하고 지나가요... 지하철에서 꼬마들이 휠체어를 신기해하며 다가오면, 부모들이 얼른 손을 잡고 멀리 데리고 가버리는 경우도 종종있고, 지하철에 사람이 많으면 아예 탈 생각을 못해요. 사람이 별로 없는 지하철이 올 때까지 1시간을 넘게 기다린 적도 많아요."
배리어 프리(barrier-fre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장애인 영역에서는 아주 오래전 부터 사용하는 말인데, 쉽게 말하면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이 사회활동을 하는데 물리적, 심리적, 사회적 장벽과 불편을 없애자는 것입니다.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인도의 턱을 없애고 시각 장애인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점자 보도블럭을 설치하거나 건널목에 음성 신호기를 설치하는 일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확장된 개념이 유니버설 디자인입니다. 배리어 프리가 뭔가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장벽과 불편한 것을 없애는 일이라고 한다면, 유니버설 디자인은 장애, 연령, 성별, 인종, 문화, 국적, 경제상황 등 어떤 배경의 사람들도 편리하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차별하지 않는 기업사회공헌이 가능할까?
'더 불쌍하고 어려운 소외계층을 찾아 도우라' 는 사장님의 지시에 어떻게 반응하고 그 다음 단계를 이어나가야 할 지 저도 딱히 간편한 해결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더 어렵고 더 불쌍하고 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는 일이 어디까지 반복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찾아서 잘 돕는 일이 당연히 기업사회공헌담당자의 업무이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만 도와야 한다거나, 어떤 객관적인 기준이 없이 계속 점점더.. more and more 로 향한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 모두가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업사회공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외계층을 점점 더 고립시키고 특정 대상을 자꾸 차별하는 방식의 사회공헌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기업사회공헌에도 배리어 프리와 유니버설 디자인의 사고방식, 문제해결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블로그 찾아 주셔서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 이미지는 구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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