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회공헌담당자의 행복은 어디에서 올까요?
직업과 행복
지난 몇 주 동안 제가 만났던 기업사회공헌담당자들은 다들 '힘들다'는 말을 했습니다. 기업사회공헌이 아닌 다른 분야로 이직하고 싶어하는 친구들도 몇 명 있을 정도입니다. 근래들어 일이 술술 잘 풀리고 만사가 행복한 기업사회공헌담당자를 만나 본 기억이 별로 없네요. 왜.. 그럴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은 그 이유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거꾸로 '기업사회공헌 담당자의 행복은 어디에서 올까?'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주변 기업사회공헌담당자들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구글신을 통해 세상사람들의 생각과 관련 연구들을 좀 찾아봤더니, 직업(Occupation : 월급받는 직장과는 구별되는 특정한 직종, 예를 들어 선생님은 직업, OO 중학교는 직장)으로부터 오는 행복은 세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첫째, 직업적 가치창출(Value Creation)입니다. 사회적으로 그 직업에게 기대하는 역할과 책임을 온전히 달성했을 때 행복하다고 합니다. 의사가 환자의 병을 잘 고치고, 선생님이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버스 운전기사가 안전하게 버스는 운행하는 일.. 그래서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스스로에게 '오늘도 참 보람있는 하루였어..'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직업적 인정(Recognition)입니다. 그 직업 자체의 가치를 창출할 뿐 만 아니라 그 직업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요즘 유행어로 리스펙트(Respect) 정도가 될 것 같네요. 의사로서 슈바이처 박사를 존경하고, 교사로서 설리반 선생님을 존경하고, 간호사로서 나이팅게일을 존경하는 것 처럼 그 직업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높게 평가할 때,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합니다. 특히 미국에선 소방관들이 거의 영웅과 같은 존재로 존경받는다고 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그럴 거라고 봅니다.
셋째, 동료애(Companionship)입니다.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 간에 그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그 직업의 사회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직업적 협동심을 잘 발휘할 때 그 직업에 대한 행복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여럿이 모였을 때 뭔가 동질감, 소속감, 안정감, 자부심 등이 느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업사회공헌담당자라는 직업의 행복은 뭘까요?
기업사회공헌담당자의 가치창출
며칠 전 만난 기업사회공헌담당자는 요즘 '내가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나?' 라는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냥 돈 버는 일 말고, 조금이라도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정말 들어오기 힘든 기업사회공헌의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회사에서 하는 일은 '임원 아들 자원봉서처 알아봐주는 일, 사장님 사모님 친구의 딸의 연주회 티켓을 사회공헌예산으로 구입해서 억지로 복지시설 분들을 초청해야 하는 일, 명분도 사업도 예산도 완전 사기인 줄 알면서도 회장님 친구가 운영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명분, 사업, 예산을 만들어 지원하는 일' ... 아무리 생각해도 쓰레기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힘들고 불행하다고 합니다.
저도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친구와 같은 생각입니다. 지난 일들을 쭈욱 돌아보니 직업으로써 행복했던 기억은 대부분 '내가 뭔가 이 사회를 더 나아지게 만들어가고 있구나, 누군가가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좀 더 행복해지고 있구나' 라는 것을 느낄 때 였습니다. 기업사회공헌이라는 것 자체가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필요가 없는 일인데, 당연히 그 일을 하는 담당자 또한 본인의 업무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의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업사회공헌 담당자의 직업적 인정과 관심..
겨우 페친사이일 뿐인 기업사회공헌담당자의 페북에서 얼마전 이런 포스팅을 봤습니다. "3년 전 임직원봉사활동을 시작할 때 아무도 신청하지 않아서 입사동기 한명을 겨우 꼬셔서 둘이 봉사활동을 갔었다. 그런데 요즘은 한달에 오십명이 넘게 봉사활동을 간다. 사내 인트라넷에 봉사활동 신청을 올리면 그날 다 마감된다. 그동안의 나의 노력이 빛을 보는 것인가? 사회공헌팀이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던 직원들이 대부분 이었는데, 이젠 다들 나를 보면 사회공헌팀에서 일해서 좋겠다고 한다. 사회공헌팀에서 일하고 싶다고 한다. 아! 눈물이 난다".
퇴근 길 전철안에서 그 페북 포스팅을 보며 저도 눈물이 살짝 찔끔했습니다. 잘 모르는 사이이긴 하지만 그 실무자가 지난 3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 얼마나 심한 무관심 속에서 일을 했을까를 생각하니.. 그 친구에게 커피 쿠폰이라도 보내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어지간한 기업에서 기업사회공헌은 늘 찬밥입니다. 예산은 물론이고 의사결정 우선순위에서 가장 뒤로 밀리는 것은 늘 있는 일인 데다가, 사장님께 보고하러 갔다가 다른 힘있는 부서가 새치기 하는 바람에 보고도 못하고 뒤돌아 서는 일도 자주 있습니다. 게다가 사회공헌담당 임원이나 팀장은 회사에서 일도 못하고 성과도 안좋은 사람을 그냥 짜를 수 없으니 집에 보내기 전에 마지막 예우로 앉혀 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회공헌팀은 좋겠어요.. 거기는 매출압박도 없고, 영업실적을 쪼지도 않으니까!!" 라며 까칠한 웃음과 멘트를 날리고 가는 직원들도 있습니다.이런 저런 설움과 차별이 많은 부서가 사회공헌팀입니다.
"성과급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요.. 그저 우리 팀에 대한 관심만 좀 주면" 이라고 울먹이던 한 사회공헌담당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기업사회공헌에 대한 인정까지는 아니더라고 단지 관심만 주면..... 기업사회공헌 실무자가 느끼는 행복의 원천입니다.
기업사회공헌담당자의 동료애..
기업사회공헌실무자 아카데미 12주 교육과정을 끝낸 후 마지막 졸업식에서 이런 소감이 꼭 나옵니다. "회사에서 사회공헌일을 하는 사람이 저 밖에 없어서 정말 외로웠거든요. 그런데 시회공헌아카데미에서 힘들고 어려운 부분에 대해 정말 진심으로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는 여러분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그렇습니다. 기업사회공헌담당자들은 외롭습니다. 거의 모든 회사에서 기업사회공헌담당자들은 정말 소수의 인원이 일합니다. 그리고 본사가 아닌 계열사들이나 중견기업들에서는 사회공헌 전담자는 한명도 없고 다른 업무를 하면서 사회공헌을 겸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도, 기업사회공헌이나 CSR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회장, 사장, 임원, 부장들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알다시피 없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 상사 밑에서 혼자 아둥바둥 다른 부서와 팀원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차별 받으면서 일해야 하는 사회공헌담당자들은 서럽고 외롭습니다. 이럴 때 같은 회사는 아니지만 이 일을 이해해주고 다독거려줄 수 있는 다른 회사의 사회공헌담당자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참말로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됩니다.
기업사회공헌담당자들이 회사내 다른 직원들과도 친하게 잘 지내야 겠지만, 다른 회사의 사회공헌담당자들을 알고 친하게 지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며느리 처지는 며느리만 알고, 이등병 처지는 이등병만 아는 법입니다. 속마음을 툭 터놓고 회사 욕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다른 회사의 기업사회공헌담당자 친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기업사회공헌담당자
지금은 기업사회공헌일을 그만두신 선배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기업사회공헌이라는 것을 우리회사에서 처음 해봤어요. 나도 몰랐고 아무도 몰랐어요. 배워가면서 했지요. 잘하는 건지, 잘못하는 건지 정말 몰랐어요. 맨 바닥에 헤딩하면서 깨지고 터지고 혼나고 실수하면서 일을 배우고 사업을 했어요. 그렇게 십년이 넘는 세월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 내 뒤에 후배들이 내가 걸어온 그 길을 더 넓히고 더 좋게 만들고 있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행복했어요. 내가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글을 읽고 있을 기업사회공헌실무자 중에는 아마도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 기업사회공헌이나 CSR을 처음으로 시작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분들은 정말 복 받으신 겁니다. 더불어 정말 힘드실 거라 생각합니다. 어떤 분야든 처음 시작하고 개척하는 일은 진짜 어렵습니다. 영리를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일반적인 기업들에서 영리가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일인 사회공헌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댐이 가로막힌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헤엄처럼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열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관심도 없는 임직원들에게 사회공헌이라는 말이 익숙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애쓰는 일들이 시간이 흐르고 뒤를 돌아 봤을 때 작은 흔적이 남아있고 그 흔적을 따라 후배와 동료들이 더 넓고 좋은 길을 내고 있을 때.. 그리고 그 길이 내가 일하는 회사와 우리 사회를 조금 더 가치있는 방향으로 향하게 한다는 것을 느낄 때..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도 오늘 블로그를 쓰면서 '과연 나는 기업사회공헌담당자로써 행복한가?' 에 대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51%정도 행복한 것 같습니다. 100%는 힘들겠지만.. 행복지수를 올려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가을을 시작하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블로그 찾아 주셔서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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