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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anced CSR & ESG

2019년 4월_ CSR 이슈 _ 지속가능보고서의 계절

by Mr Yoo 2019. 5. 11.



2019년 4월 _ CSR 이슈

지속가능보고서의 계절


기업사회공헌이 아닌 CSR..


CSR이 기업사회공헌이 아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을 개념이 아닌 실제로 알게 된 때는 지금으로부터 10년전 2009년, 한미파슨스의 지속가능보고서를 만들 때였습니다. 2009년 초에 윗분으로부터 미국 파슨스(한미 파슨스는 미국의 대표적인 건설엔지니어링 기업인 파슨스와 한국의 합작회사로 이후 파슨스의 지분을 인수한 후 한미글로벌로 사명을 바꿈)의 지속가능보고서 PDF파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파슨스의 보고서를 참고해서 우리회사의 지속가능보고서를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미국 파슨스의 지속가능보고서는 말그대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문이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지속가능보고서(우리나라 기업들의 최초 지속가능보고서는 2004년에 발간된 포스코, 기아자동차, 삼성 SDI의 보고서)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지속가능보고서 그 자체가 처음보는 신문물은 아니었지만, 파슨스의 보고서는 뭔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말그대로 비즈니스와 사회적 책임, 환경경영, 기업문화가 통합되어 책에서만 보던 '기업시민(Corporate Citzenship)'의 역할에 굉장히 충실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서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파슨스의 보고서를 읽고 또 읽으며 한미파슨스의 지속가능보고서를 말그대로 한글자 한글자 파내고 찍어내 듯 만들었습니다. 허락된 예산은 단돈 천만원, 기획부터 원고작성, 편집, 디자인, 인쇄까지 그 예산으로 다해야 했으니.. 프리랜서 편집디자이너들이 모인다는 충무로 카페에 찾아가 맥북으로 작업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커피와 명함을 건네며 작업을 부탁하고, 싼 인쇄소를 찾아 충무로 뒷골목 반지하 인쇄소들을 더듬어 찾아다녔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그렇게 2009년 5월에 한미파슨스 최초 지속가능보고서가 발간되었고 그해 대한상공회의소로부터 '최초 지속가능보고서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그해 최초로 발간되었던 지속가능보고서가 다섯개 밖에 안되었던 건 안비밀^^;;).


2008 한미파슨스 지속가능경영보고서.pdf



4월과 5월은 지속가능보고서의 계절...             


그리고 어느새 1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저는 지금 다른 회사의 지속가능보고서를 만들고 있습니다. 작년에 JB금융그룹 최초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했고, 올해는 지속가능보고서와 IR보고서가 통합된 IIRC 통합보고서를 최초로 발간합니다. 4월과 5월은 각 회사의 CSR 담당자들이 한눈팔지 못하고 보고서에만 올인하는 계절입니다. 하루 종일 앉아서 보고서 초안을 썼다 고쳤다 하다보니 어깨와 목은 저리고 눈은 충혈되고 아랫배는 불룩 나오고 있습니다.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


지속가능보고서를 만들면서 마음속에 항상 되새기는 말이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를 만들지 말자!!" 입니다. 실제는 그렇지 않으면서 외부의 평가를 잘 받기위해 또는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거짓말하거나 과장하거나 사실을 숨기는 보고서가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입니다. 그런 보고서를 만들면 안된다는 것이 제 생각이고 기준입니다.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를 만들지 않기 위한 저만의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기획과 원고작성은 반드시 스스로...


요즘 지속가능보고서 제작비용이 보통 1억원 정도됩니다. 이게 좀 문제입니다. 대기업들이야 1억이 큰 돈이 아니지만, 중견, 중소기업들은 굉장히 큰 돈인데.. 지속가능보고서를 제작할 수 있는 대행사들이 얼마 안되다 보니 가격이 고가로 형성되어 거품이 있습니다. 지속가능보고서 발간이 좀 더 보편화되고 많은 기업들이 제작하게 되면 가격이 합리적으로 내려가리라 기대해 봅니다. 5천만원 정도로 지속가능보고서를 제작해주는 회사를 하나 차려볼까도 생각중입니다만...^^;;


아무튼, 제가 입수(?!)한 업계 정보에 따르면 모기업의 경우 작년에 2억5천만원까지 썼다고 합니다. 뭔 보고서 하나 만드는데 2억5천까지 썼냐고 하니까... 대행사에서 1부터 10까지 모든 것을 다해줬다고 합니다. 또 그 비용안엔 외부 평가대행, 지속가능경영관련 상(賞) 수상, 실무자 벤치마킹 해외연수까지 포함됐다고 합니다. 그 기업의 작년 지속가능보고서를 보니 진짜 화려합니다. 하지만 꼼꼼히 읽어보면 실무자들의 치열한 고민이나 현업부서가 노력하는 모습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지속가능보고서를 만드는 실무자 눈에는 보입니다. 그냥 윗사람들과 외부 평가자들이 보기 좋은 말만 잘 골라서 써놓았습니다. 디자인과 편집, 그래픽, 사진은 화려하지만 실속이 없는 그래서 배울 것이 없는 그런 보고서입니다. 이 회사의 CSR 실무자는 편하게 일하고 상 받아서 칭찬받고 해외연수 다녀와서 좋았겠지만 실무역량은 하나도 늘지 않았을 겁니다.


딴 얘기입니다만... 대기업에서 사회공헌이나 CSR 책임자(보통 팀장, 부장)로 있다가 은퇴해서 간혹 사회공헌이나 CSR 컨설팅회사를 차리는 경우를 봅니다. 그런데 잘 안됩니다. 왜냐하면 대기업에서 일하는 방식이 책임자가 직접 스스로 뭘 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 실무자들을 시키고, 실무자들은 또 돈으로 대행사에게 일을 시키기 때문에 책임자로 5년 이상 있다가 은퇴한 사람은 컨설팅 실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역량이 없는거죠. 그러니 컨설팅 회사가 잘 될 리가 없습니다.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리 대행사를 쓴다고 해도 기획과 원고작성은 스스로 해야 합니다. 이게 어렵고 귀찮다고 대행사에 돈 좀 더주고 맡기면 CSR실무자로서 역량은 하나도 늘지 않을 뿐더러 보고서의 퀄러티도 훅.. 떨어집니다.





2. 심사와 검증은 있는 그대로, 결과는 해결과제로!!


지속가능보고서는 보고서 작성도 중요하지만 외부 검증기관의 공정한 심사와 검증이 필수입니다. 이 심사와 검증을 거치지 않은 보고서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심사와 검증도 CSR 실무자들이 직접 받지 않고 대행사가 다 알아서 해주는 회사들도 있다고 합니다. 보고서 제작에 2억5천만원이나 쓴 그 회사도 당연히 그랬답니다. 작년 말에 그 회사 CSR 팀장을 만나서 커피 한잔했습니다. "지속가능보고서, 돈 들이니까 잘 만들어주더라구요. 재작년까지는 실무자들이 힘들여서 했는데 작년에 임원이 바뀌고 나서 '그걸 돈 들여서 하면 더 잘해주는데 왜 실무자들이 쓸데없이 시간들여서 하냐고' 하면서 예산이 확 늘었어요. 그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우리팀은 편해진거죠" .. 저는 심사와 검증을 대행사에 온전히 맡겨본 일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심사와 검증을 하는 검증원들이 회사의 CSR 실무자들도 만나지 않고 어떻게 심사와 검증을 하는지 도대체 잘 모르겠습니다. 


심사와 검증은 있는 그대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기업도 현재의 지속가능경영수준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부족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행사에 돈 줘서 높은 점수나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심사나 검증을 눈속임으로 한다면 그것 자체가 지속가능경영에 반대되는 일이고, 분명히 그것은 나중에 큰 문제로 돌아오게 됩니다.  지난 번에 이 블로그에도 썼지만 안타까운 인명사고가 난 서부발전의 작년 지속가능보고서를 보면 작업장 안전, 협력회사 상생, 비정규직 처우 등의 부분에서 매우 우수한 것으로 검증받고 보고서를 발간했지만... 실상은 엉망진창인데다가 그동안 발생했던 인명사고나 협력회사와의 갈등,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안 처우에서 발생한 문제들은 보고서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엉터리 보고서에 엉터리 검증입니다.


있는 그대로 검증받고 있는 그대로의 데이터를 보고서에 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해결과제를 도출할 수 있고 CSR팀의 일이 생기고 다음 보고서에 개선결과를 실을 수 있고, 그러면서 회사의 지속가능경영도 점점더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와 해결과제를 가능한 많이 써 주세요. 안된 건 안됐다고 검증 보고서에 써 주셔야 저희 팀이 할 일이 생기죠. 점수 낮은 거 그대로 보고서에 써 주시면 됩니다" 라고 검증하는 심사원에게 말했더니 의아한 눈길로 저를 쳐다봅니다. "그런 말씀 하시는 CSR팀장님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정말 있는 그대로 다 써도 되는 거죠? " ..... "그럼요. 있는 그대로!!" .






3. 현업부서와 직원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를 만들면 회사 외부인들은 속일 수 있어도, 내부 직원들은 속일 수 없습니다. 작년에 우리 회사의 첫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하고 보고서 발간에 참여했던 현업부서들과 평가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한 직원이 이런 발언을 했습니다. "올해 보고서는 우리회사 첫 보고서이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만든 보고서도 조금만 긴장을 늦추고 외부를 인식하게 되면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 가 됩니다. 그걸 우리회사 직원들이 귀신같이 잘 압니다.


그래서, 올해는 보고서에 현업부서와 직원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많이 넣고 있습니다. 원고도 작년에는 제가 많이 쓰고 다듬었는데 올해는 현업부서에서 올라온 자료를 가능하면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현업부서와 직원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잘 반영된 보고서가 저는 좋은 보고서라고 생각합니다.


2억5천만원을 들였다는 그 회사의 그 보고서에는 직원 인터뷰가 하나도 없습니다. 대신 외부 CSR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인터뷰만 있습니다. 저의 경험상 외부 CSR 전문가들은 CSR에 대해 잘 알지는 몰라도 그 회사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 회사를 가장 잘알고 그 회사의 지속가능경영이 잘 되고 있는지 잘 안되고 있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바로 그 회사의 직원들입니다. 직원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담긴 보고서는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가 되지 않습니다.




4. 광고가 아닌 PR의 도구..


잘만든 지속가능보고서는 굉장히 좋은 홍보와 IR의 도구가 됩니다. 10년전 한미파슨스에서 만들었던 보고서도 그 보고서를 가장 잘 활용하고 추가 제작을 요청했던 곳이 "영업부서" 였습니다. 하루는 영업부서 이사님이 오셔서 "이번에 만든 지속가능보고서가 그동안 우리회사가 만들었던 자료 중에 제일 잘 만든 것 같아요. 고객들에게 이 보고서 하나만 주면 우리회사에 대해 구구절절히 설명할 필요가 없더라고, 받는 고객들도 자료가 알차서 참 좋다고 하고... " , 작년에 만들었던 JB의 첫 지속가능보고서도 해외 계열사에서 추가 제작 요청이 있었습니다. 해외 고객들이 우리회사에 대해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고, 외국 직원들을 위한 교육자료로 쓰기에 아주 좋다면서 영문판을 몇 박스 더 주문했습니다.


홍보나 광고, 상을 받기 위한 목적이 아닌 진짜 알차게 잘만든 지속가능보고서는 우리 회사를 제대로 알리는 데 아주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겉모습보다는 실속 중심의 지속가능보고서를 만든다면 두고 두고 잘 써먹을 수 있습니다. 회사의 역사를 기록하는 자료도 되구요.


주말인 오늘도 하루종일 지속가능보고서 원고를 쓰고 고치다, 잠깐 짬을 내어 이 블로그를 씁니다. 4월의 CSR 이슈를 뭘로 쓸까 고민하다가 CSR 실무자들이 4월과 5월에 가장 집중하는 것이 지속가능보고서이기 때문에 주제를 이걸로 해봤습니다. 관련없는 분들에게는 양해를 구합니다.


Balanced CSR 유승권


※ 오늘 블로그에 등장하는 2억5천만원을 들여서 지속가능보고서를 만들었다는 회사의 CSR팀장님께는 이런 내용으로 블로그를 쓴다고 사전에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 팀장님 말씀 "회사명만 밝히지 않으면 됩니다. 저희 회사만 그런 건 아니니까요... 작년에 2억5천 넘게 쓴 회사랑 공기업들도 여럿 있더라구요. 걱정마세요"... 멋진 L팀장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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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5월도 어느새 중순입니다. 시간이 많이 부족하네요^^ 바쁘지만 정신줄은 놓지 않는 걸로~~ 다음 주엔 CSR 사례소개로 또 뵙겠습니다. 블로그 찾아주셔서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2008 한미파슨스 지속가능경영보고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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