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R의 역사 6편
1980년대 네슬레 불매운동
1996년 나이키, 1977년 네슬레.
1996년 3월 28일 미국 주간지 라이프(Life)에 실렸던 '시간당 6센트(Six Cents an Hour)' 는 CSR 역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기사입니다. 나이키의 축구공을 납품하던 파키스탄의 작은 생산 협력업체가 시간당 6센트를 주고 12살 아동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는 이 기사는 즉각 글로벌 다국적 기업의 인권과 노동권 문제를 국제적으로 이슈화했고, 수 많은 시민단체들의 불매 운동을 이끌어 냈으며, 미국을 비롯한 경제 선진국의 CSR 정책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후 나이키를 비롯한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이 제3세계 공급 사슬망의 인권, 노동권 문제를 민감하게 살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이키의 아동노동 이슈가 시민단체들의 불매 운동을 이끌어내고 국제 기구와 선진국 정부의 CSR 정책변화를 일으킨 것은 어쩌면 1977년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된 네슬레 불매운동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제, CSR 연구의 대가라고 불리는 캐롤(Carroll) 교수를 비롯해 많은 학자들이 1996년 나이키 이슈의 바탕에는 1980년대 네슬레 보이콧 운동이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1990년대 CSR 역사를 살펴보기 전에 1970년대에 시작되어 1980년대 마무리 된 네슬레 분유 사건과 불매운동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1970년대_공격적(aggressive) 글로벌 마케팅 시대의 개막
마케팅의 역사에 관련한 책들을 살펴보면 1970년대는 '공격적 글로벌 마케팅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내용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이 1970년대에 이르러 자국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새로운 시장을 찾기위해 적극적으로 글로벌 진출을 합니다. 1970년대는 현재 거대 시장이 된 유럽의 소련연방(현재, 러시아와 동구권 국가들)과 아시아의 중국이 개방되기전이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은 주로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시장을 주요 타겟으로 삼았습니다.
전 세계 분유시장의 독보적 1위 기업 네슬레도 1970년대 미국과 유럽의 출산율이 정체되어 분유 판매가 줄어들자 출산율이 높은 중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 시장에 눈독을 드리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시작합니다.
네슬레는 지리적으로 유럽과 가까운 북부 아프리카 국가들을 중심으로 분유 샘플을 공짜로 나눠주고, "유럽의 토실토실하고 건강한 아이들은 모두 분유를 먹고 자란다"는 광고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의사와 간호사 복장'을 한 수천명의 판촉 직원들이 '분유를 먹이면 아이들이 영양 부족 없이 잘 자랄 수 있다'고 대대적인 가두 광고 캠페인을 벌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계속되는 기근과 영양 부족 문제에 시달리던 아프리카 엄마들은 네슬레 직원들이 공짜로 주는 분유 샘플을 받아 아이들에게 먹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공짜 분유 샘플을 받아가지고 온 엄마들이 분유를 물에 타 먹이고 며칠이 지난 후 아기들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배탈이 나고 설사가 계속되고 급기야 고열에 시달리다 죽는 아이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일들이 발생한 후 한참 이후에야 원인이 밝혀졌습니다. 이유는 물과 주방시설이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식수는 유럽보다 깨끗하지 않으며, 끓는 물로 소독한 젖병에 끓인 물로 분유를 타서 따뜻하게 아기에게 먹어야 하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아프리카의 식수, 물을 끓일 수 있는 주방시설, 젖병을 소독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세균에 오염된 젖병에 소독되지 않은 물로 탄 분유를 먹은 아기들이 설사를 하고 열병이 나고 죽기 시작했습니다. 수천명의 아기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네슬레는 분유 판촉활동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아프리카에는 영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분유로 인해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상황 인식을 그리 빠르게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 문제는 깨끗한 상태로 분유를 먹였다고 하더라도 아프리카 가정의 경제상황이 분유를 충분히 먹일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키워 본 분들은 잘 알겠지만 분유 값이 장난 아닙니다. 지금도 마트에 가면 유독 분유통에 도난 방지 장치가 아주 잘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유 값이 비싸고 도난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게 되면 엄마는 젖이 마릅니다. 분유 값이 없어 모유를 먹이고 싶어도 먹일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아프리카 엄마들은 처음에는 공짜 샘플을 아기에게 먹였지만 이후 점점 비싸지는 그리고 아기가 성장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이 먹게 되는 분유 값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제 용량보다 더 많은 물을 넣게 되었고 아기들은 부족한 분유 때문에 영양 실조에 걸리게 되고 그로 인해 영아 사망률이 다시 높아지는 악순환이 일어났습니다.
누가 아기를 죽이는가?
1974년 3월, 영국의 빈민 구제 단체인 워온원트(war on want)가 <누가 아기를 죽이는가?> 라는 소책자를 발간합니다. 이 책자는 영국의 마이클 뮬러라는 신문기자가 워온원트의 지원을 받아 아프리카 분유 판매 현장을 돌아보고 쓴 보고서입니다. 이 보고서에는 네슬레와 영국의 분유회사 유니게이트가 아프리카에서 벌이고 있는 분유 마케팅에 대해 비판하고 분유 마케팅과 영아 사망이 어느 정도 연관 관계가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후 독일의 시민단체 제3세계행동그룹(TWAG)은 이 보고서의 내용 중에 네슬레가 연관된 것만 뽑아 '네슬레가 아기들을 죽이고 있다' 라는 제목의 문서를 배포했습니다. 네슬레는 이 문서의 내용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위생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분유를 타먹인 것은 네슬레의 책임이 아니라 엄마들의 책임이며, 네슬레가 아프리카 가정의 비위생적인 환경까지 개선해 줄 책임이 없으며, 당연히 분유를 사먹일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의 엄마들에게 분유를 강매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네슬레는 TWAG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고 2년간의 재판 끝에 네슬레가 이겼습니다. TWAG는 '400달러'라는 상징적인 벌금을 물었습니다. 법원은 네슬레의 손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분유로 인한 영아 사망의 간접적인 이유로 네슬레의 과도한 마케팅이 있다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소비자 단체들은 네슬레를 비롯한 분유, 이유식 회사들에게 공격적인 분유, 이유식 판매 광고를 줄이라는 압력을 계속하게 됩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네슬레를 포함한 9개 이유식 회사들은 1975년 국제이유식기업협회를 결성하고 분유와 이유식이 모유보다 좋다는 광고를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미국의 엄마들이 거리로 나서다.
하지만,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 미국의 엄마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1977년 미국의 미네아 폴리스 주에서 '분유행동연합(IBFAN)'이 만들어졌습니다. IBFAN(www.babymilkaction.org)은 다국적 대기업에 맞선 최초의 가정 주부 중심 소비자 시민운동단체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IBFAN은 현재도 다국적 기업들의 식품 판매의 문제점과 제3세계 식품 공급문제, 아동 영양문제, 모유 수유 장려활동 등 다양한 시민, 소비자 운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IBFAN 은 '네슬레는 미온적인 개선이 아니라 아프리카 영아 사망에 대한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고 주장하며 네슬레 불매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네슬레 불매운동은 호주, 뉴질랜드, 유럽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시민단체들이 모여 '국제네슬레보이콧위원회'가 만들어 졌습니다. 국제네슬레보이콧위원회는 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국제 불매운동 연합체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네슬레 불매 운동의 파장..
글로벌 1위 거대 기업을 상대로 미국 엄마들이 시작한 불매운동은 1979년 국제보건기구(WHO)와 유니세프가 분유와 유아식 마케팅에 관한 국제기준을 만들기 위한 학술대회를 열게 만들었고, 미국 전역의 450여개 이상의 종교단체, 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연합 시민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런 소비자 시민 행동의 결과 1981년 5월 세계보건기구총회에서 '모유 대체 식품 판매에 대한 국제 규약'이 채택되었습니다. 이 규약에는 모유 수유를 촉진하고 대체 식품의 소비를 줄이기 위해 분유 광고를 중단하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네슬레는 이런 국제적인 움직임에 대해 위기를 감지하고 이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개선을 펼치겠다고 발표합니다. 그리고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한 NIFAC(Nestle Infant Formula Audit Commission)를 구성하고 네슬레가 세계보건기구의 규약을 잘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공정한 모니터링을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후 네슬레는 유니세프, 세계보건기구, 분유행동연합 등과 오랜 협상을 통해 더이상 공격적인 분유 마케팅을 하지 않기로 약속합니다. 1984년 네슬레와 국제네슬레보이콧위원회는 공동성명을 통해 더 이상 제3세계에 대한 공격적인 분유 마케팅과 국제적인 네슬레 보이콧 운동을 펼치지 않기로 발표합니다.
기업의 변화를 이끈 소비자 운동
대부분의 CSR 담당자들은 네슬레가 CSV(공유가치창출)를 리딩하는 CSR을 아주 잘하는 기업으로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네슬레의 역사를 잘 살펴보면 CSR이나 CSV와는 전혀 상반되는 결정과 경영도 많이 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건과 사고 덕분(?)에 네슬레는 긴 시간 동안 큰 교훈을 얻었고 이런 사건과 위험을 더 이상 겪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결과 현재의 위치에 서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CSR영역에서 극소수 몇몇 기업을 제외하고 스스로 잘못을 인지, 인정하고 능동적으로 고쳐나가는 기업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국제규약, 법, 규정이 CSR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또는 납품 받는 기업에서 더 높은 CSR 기준을 요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네슬레나 나이키의 경우처럼 소비자들이 힘을 모아 불매운동을 하고 경영 방식을 개선하라고 요구할 때 기업은 변합니다. CSR 실행에서 소비자의 행동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CSR의 역사를 쭈욱 살펴보면 국제규약, 법, 규정 이런 것들의 시작은 소비자들의 행동에서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업의 변화를 바란다면 기업 탓이나 법과 규정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 즉 우리 스스로가 말과 행동으로 나타내 보여야 한다는 그런 당연한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블로그의 대부분은 <고장난 거대기업 / 좋은기업센터 / 2013년>에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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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갑자기 네슬레 얘기를 꺼낸 이유는 2년 전 스위스 브붸에 있는 네슬레 본사와 네슬레 CSR 전시관을 갔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는 10월3일 세번째 CSR 유럽투어를 떠납니다. 다음 주 블로그는 "런던"에서 올리겠습니다. 블로그 찾아주셔서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Balanced CSR 유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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