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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anced CSR & ESG

고장난 거대 기업(CSR) vs 넥스트 챔피언(CSV) _ CSR 실무자의 독서

by Mr Yoo 2019. 8. 31.



고장난 거대 기업 vs 넥스트 챔피언

- CSR 실무자의 독서 -


CSR을 향한 다양한 시각...


영리기업의 CSR(주로 기업사회공헌) 실무자를 십수년 해오다가 지난 7월1일부터 소셜벤처를 지원하는 중간지원기관인 '소셜벤처허브' 에서 일하게 되면서 새삼 느끼고 있는 것은 기업 외부의 이해관계자들이 CSR(특히 기업사회공헌)에 대해 생각보다 부정적인 시각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곳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제가 기업의 CSR 담당자였다는 것을 모르는)과 이야기 하면서 소셜벤처와 영리기업의 협업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열에 일곱, 여덟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듭니다. 고개를 흔드는 이들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영리기업들이 소셜벤처를 지원한다거나 협업한다고 하면서 자기들 이익만 챙기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봐왔다. 특히 기업사회공헌 실무자들은 처음에는 뭐든지 해줄 것 처럼 떠벌리다가 협의가 진행될 수록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고 하면서 위에서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약속을 어기거나 변명하는 경우가 많다' 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협업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 어느정도 성과가 나면 '이 소셜벤처는 우리 기업 때문에 컸다. 우리 기업이 키운 애들이다. 우리가 아니었으면 이 정도로 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지나치게 기업 홍보와 마케팅에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저 또한 절대 그러지 않았다고 부정할 수 없습니다. 기업사회공헌을 포함한 CSR을 실행할 때 윗 사람들에게 항상 듣는 말이 "우리는 자선단체가 아니잖아! 이걸하면 우리 회사에게 어떤 이익이 생기는데? 이걸 어떻게 우리 회사 홍보에 활용한 건데? " 였습니다. 그러면 저는 지원하거나 협업하는 대상에게는 직접적으로 말은 못했지만 은연 중에 우리 회사가 써 먹을 수 있는 것을 만들기 위해 뒷 작업을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이처럼 기업사회공헌이나 CSR을 보는 시각은 각자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많이 다릅니다. 이런 시각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서로 다름을 이해하면서 CSR을 실행하는 것과 단지 기업의 입장만을 내세우며 CSR을 추진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그런 의미에서 서로 상반된 관점에서 CSR을 서술한 두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CSR 실무자들이 셋트로 읽으면 서로 다른 관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장난 거대기업

- 이영민, 정란아, 신태중, 전채연 / 양철북 / 2013년 -   


'고장난 거대기업'은 좋은기업센터에서 기획 발간한 책입니다. '좋은기업센터'는 기업이 잘못된 행위를 하면 그 내용을 시민에게 알리고, 피해 받은 사람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며, 기업에게 그 행동을 고치라고 요구하는 일을 하는 비영리 시민 단체입니다. 인터넷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2017년 9월 이후 활동이 업데이트 되고 있지 않던데 지금도 활동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책은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그리고 CSR을 나름 잘 한다고 자랑하고 인정 받고 있는 기업들의 모습을 시민 단체의 시각에서 일반 시민들의 눈 높이에 맞게 서술한 책입니다. 그래서 술술 잘 읽히고 내용도 이해하기도 쉽고 주제와 주장에 공감하기도 쉽습니다. 


CSV의 선봉이라고 하는 '네슬레'의 아프리카 분유사건, 우리나라 대표 기업이라고 호칭하는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문제, 글로벌 유통회사인 '홈플러스'와 동네 골목 상인들과의 분쟁, 명실상부 세계 1위 기업 '월마트'의 남녀 차별 문제, 아동 노동의 흑역사를 지닌 '나이키', 독점 논쟁에서 언제나 자유롭지 못한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의 공정무역 커피, '셸'의 아프리카 원유개발, CSR 마케팅의 독보적 1위 '코카콜라'의 수자원 개발 문제, 블러드 다이아몬드 '드비어스', 유조선 사고에 대한 서로 다른 대처 '삼성중공업과 BP', 그리고 최고 경영자와 책임자들의 부패와 무능의 상징이 된 '엔론' 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뉴스에서 CSR과 관련된 좋지 않은 기사가 나오고 기업이 저지른 사고와 잘못을 접할 때 '아니, 저렇게 나쁜 기업이 있어!' 라고 화를 내거나, '사업을 하다보면 저런 일도 생길 수 있지뭐.. 일부러 그럴려고 그랬겠어' 라고 두둔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언론과 사람들은 연애인의 스캔들보다 CSR이슈에 대해 별로, 아니,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당장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저 멀리 아프리카나 바다 한가운데서 또는 외국이나 다른 지방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딱히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이다보니 그냥 넘겨 버립니다.  


언론과 시민의 관심을 얻지 못한 CSR 이슈와 사고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지만, 그 이슈와 사고가 야기한 문제는 오랜 시간 그 일에 관련된 사람들을 괴롭히고 환경을 지속적으로 망가뜨려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합니다. 수십, 수백명의 사람 목숨이 사라지고 수만톤의 폐기물이 무단으로 버려지고, 물과 공기와 땅이 못쓰게 되어도 우리는 그냥 숫자로 인식하고.. '아니, 이를 어째..' 하고 한마디 한 후 잊어버립니다.


이 책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CSR에 관심을 갖고 기업이 올바른 경영을 할 수 있도록 끊임 없이 살피고 기업에게 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네슬레, 나이키, 월마트, 스타벅스, 셸, 코카콜라, 드비어스 등의 기업이 문제 발생 후 스스로 그것을 반성하고 알아서 잘 고친 것이 아니라 언론과 시민의 끊임 없는 문제 제기와 요구, 그리고 싸움으로 인해 서서히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기업에게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법을 집행하는 정부가 되겠지만 윤리적,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따지고 묻는 것은 소비자, 즉 시민이고 기업이 가장 무섭게 여기는 이해 당사자가 바로 또 시민, 즉 소비자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문제해결에 참여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넥스트 챔피언

- 김태영, 도현명 / 흐름출판 / 2019년 -   


'넥스트 챔피언'은 성균관대학교 김태영 교수와 임팩트스퀘어 도현명대표가 쓴 CSV에 관한 책입니다. 이 책은 경영전략가와 컨설턴트 입장에서 CSV를 기업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경영전략으로 정의하고 CSV에 대한 이해와 실행을 돕기위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제일 관심있게 읽었던 부분은 마지막 장인 'CSV에 대한 비판과 오해' 입니다. 혹시, 서점에서 잠깐 서서 이 책을 읽을 요량이라면 맨 마지막 장을 읽어보길 권합니다.    


이 책이 지난 5월에 나오고 나서 주변에 CSR 관련 책을 좀 읽는다는 사람들이 저에게 이 책 봤냐고, 어떻냐고 종종 물어 오길래 '단지 CSR 실무자로서 의견을 말하자면' 이라는 전제하에 두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는 이 책은 CSR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책은 아니다라는 것과 또 하나는 이 책은 여전히 CSV가 우리나라에서 혼란스럽게 이해되고 엉뚱하게 실행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라고 답했습니다.


먼저, 'CSR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책은 아니다' 라는 점은 이 책이 CSV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CSR을 해석하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에 CSR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실무자들이 읽으면 CSR이나 CSR과 CSV의 관계에 대해 잘못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때문에 이 책이 CSV에 대해서는 일면 이해할 수 있는 책일 수 있지만 CSR의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해서는 그닥 적절한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부분이 이 책의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상당부분을 CSR과 CSV에 대한 비교에 할애하고 있으면서도 CSR에 대한 중심과 맥락을 잡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CSV에 대한 이해마저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CSV는 이 책에서 여러번 강조하다시피 "경영전략" 입니다. 경영전략은 기업의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도 있고 선택할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  CSR은 경영전략이 아니라 기업 경영의 원칙과 철학이고 행동 강령입니다. CSR에 해당하는 준법경영, 윤리경영, 인권경영, 환경경영을 전략이라고 부르지 않고 경영 원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기업이 하고 말고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책임"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게 당연히 부여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CSV를 설명하고 확장하기 유리한 관점에서 CSR을 해석하고 서술하다 보니 CSR도 기업의 선택 여부에 따라 실행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 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 부분은 CSV를 이슈화시킨 마이클 포터의 2011년 HBR 아티클에서도 문제로 지적되는 점이었습니다. 이 책 마지막 장인 'CSV에 대한 비판과 오해'에서 이 점은 잘못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책 곳곳에서 CSR에 대해 제대로된 관점과 맥락을 잡아가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발견됩니다. 그래서 CSR에 대해 충분한 공부와 주관 없이 이 책을 읽는다면 CSR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할 수 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여전히 CSV가 우리나라에서 혼란스럽게 이해되고 엉뚱하게 실행되고 있다' 는 점이 이 책을 통해 잘 들어납니다. 책에서 그 부분을 잘 지적하고 있기 때문에 일면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 자체도 앞서 언급한 것 처럼 CSR이나 CSV에 대해 중심과 맥락을 잡지 못하고 내용과 사례에 따라 CSR과 CSV를 해석하는 방식과 서술 관점이 달라지고 또 두 저자의 약간 다른 시각이 교차되면서 표면적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CSV를 해야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CSR과 CSV에 대해 여전히 스스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돈을 느끼고 있는 바로 이점이 우리나라 CSV의 현재 상황을 아주 잘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CSV의 대표 사례로 소개하고 있는 네슬레, GE, 인터페이스, 파타고니아는 CSV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터페이스나 파타고니아가 이 책에서 정의하는 CSV(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해 사회,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이런 전략이 기업의 이익과 연결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는 경영전략으로서의 CSV)관점을 가지고 경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터페이스나 파타고니아 사례를 소개한 많은 책과 논문에 이미 언급된 내용이며, 제가 만나본 미국과 유럽의 여러 CSR 전문가와 학자, 관계자들은 GE, 네슬레와 인터페이스, 파타고니아를 같은 비교 대상으로 놓지 않았습니다. 인터페이스나 파타고니아의 CSR 실무자들이 기업의 이익을 위해 사회, 환경문제를 이용하는 CSV전략의 대표 사례로 자신의 기업들이 소개된 것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자세히 소개한 인터페이스의 사례를 보면 분명 이 책에서도 인터페이스가 얼마나 많은 '이익을 포기하고 손해를 감수'하면서 까지도 환경경영을 실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잘 서술하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CSV의 프레임으로 인터페이스를 분석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고 봅니다.  이런 앞뒤 모순되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저자들은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CSV를 장기적 관점으로 실행해야 한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역시 이 책 중간 중간에 기업의 이익을 위해 CSV 전략을 선택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고 있어 읽는 이에게 'CSV를 하라는 말인가? 하지 말라는 말인가?' 에 대해 혼란을 느끼게 합니다.  


'기업의 타협할 수 없는 유일한 목적은 이윤 창출이다' 라는 밀턴 프리드먼의 자유방임주의적 신자본주의 원칙을 고수하면 CSR을 해석하고 실행하는 데 분명 한계가 존재합니다. 이점이 CSV의 태생적인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최고의 목적은 이윤창출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통해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라고 선언한 인터페이스와 파타고니아의 사례를 CSV 프레임에 맞추는 것이 어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업을 이익 창출의 도구로만 본다면 CSV는 사회, 환경적 가치를 점점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현 시대에 시기 적절한 경영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업을 이익 창출의 도구로만 배우고 이해하고 있는 한국의 경영자나 책임자들이 사회공헌팀을 CSV팀으로 이름을 바꾸고 임직원 봉사활동과 사회공헌을 하던 실무자들에게 이제 자선사업 그만하고 사회공헌을 하면서 돈을 벌어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게 지난 7~8년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CSV는 한국 기업들의 사회공헌과 CSR 양측면 모두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역시 문제와 혼란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이 나온다고 했을때, 그리고 이 책의 페이스 북 광고에 파타고니아 사례를 전면에 내세운 것을 봤을때, 이제 그런 혼란과 문제가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정리되겠구나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점에서 이 책의 제목 위에 "경쟁 없이 지속가능한 시장을 창조하는 CSV 전략" 이라는 문구를 봤을때, 그리고 책을 읽으며 CSV에 대해 점점 더 혼란이 더해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런 기대를 하기엔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가지 제안 드리면 '고장난 거대 기업'을 먼저 읽고 그 다음 '넥스트 챔피언'을 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CSV가 왜 CSR을 뛰어넘는 개념이 아닌지, 그리고 CSV처럼 사회, 환경 문제를 기업의 이익과 연결하는 전략이 얼마나 신중하고 조심스러움이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꼭.. 꼭.. 셋트로 읽어보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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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블로그 찾아 주셔서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다음 주는 '소셜벤처와 CSR' 에 대한 첫번째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날이 선선해지니 좋네요^^


Balanced CSR 유승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