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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anced CSR & ESG

CSR의 역사 5편_1980년대 CSR은 시대의 반영일 뿐...

by Mr Yoo 2019. 8. 25.




CSR의 역사 5편_ 1980년대

CSR은 시대의 반영일 뿐..


CSR의 역할과 가치 변화


CSR에 관련된 여러 책과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CSR의 역할과 가치는 위의 그림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인류사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과 진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물론 '유발 하라리'와 같은 신진 역사학자들은 인류사를 발전과 진보 관점으로 보는 것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이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이 원하는 '사회적 가치(환경적 가치 포함)의 기준선'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상승하게 됩니다. 그렇죠? 1960년대에 비해 2010년대에는 정치, 경제, 인권, 환경, 노동 등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인식수준과 기대치가 높아졌으니까요.   


사회 구성 조직 중에 하나이자 사회 구성원들의 소비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기업은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구성원들의 원하는 가치를 충족(+)시키기도 하지만 그 과정인 비즈니스 가치사슬 중에서 사회 문제를 일으켜 사회 구성원들의 불만을 사기도 하고 사회 가치를 떨어(-) 뜨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CSR을 잘하는 기업이라고 함은 간단히 말해 기업이 발생시키고 있는 부정적 (-) 사회 가치를 가능한 긍정적 (+) 가치로 전환시키기 위한 열심히 노력하는 기업이고 실제 그것을 실현해 내는 기업입니다. 때문에 한 기업의 CSR 수준은 그 시대가 원하는 사회적 가치의 변화를 얼마나 빨리 인식하고 그것을 창출하기 위해 얼마 만큼의 노력과 자원을 투입하고 성과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어쨋든 CSR의 역할과 가치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1980년대 CSR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냉전과 핵 전쟁의 공포


세계사 관점에서 보면 198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30여년을 끌어오던 동서 냉전의 시대가 정점에 달했다가 서서히 끝나가는 시기였습니다. 미국에선 사회적 가치와 환경 보호의 중요성은 알았지만 정치와 경제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지미 카터 대통령(1977년~1981년 재임)이 영화 배우이자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로널드 윌슨 레이건에게 패배하면서 4년만에 다시 공화당의 시대가 돌아왔습니다. 


레이건 대통령(1981년~1989년 재임)은 취임 당시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르며 소련에 대응하기 위해 우주 핵 전쟁 '스타 워즈'도 불사하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레이건 대통령은 지미 카터 대통령의 불분명한 대 소련 외교 정책에 대한 미국내 불만을 등에 업고 당선되었으니까요.  


당시 동서 냉전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습니다. 1979년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은 베트남 전쟁에서 쓰디쓴 패배를 경험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를 다시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고 이어진 1980년 소련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엔 미국, 캐나다, 서독, 한국, 일본을 포함한 서방 진영 50여개국이 불참했고, 1984년 미국 LA 올림픽엔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에 대한 항의로 소련, 동독, 알바니아 등 동구권 15개국이 불참했습니다. 




1983년 9월 1일에는 소련 공군기가 사할린 섬 인근 상공을 지나던 대한항공 민간기를 격추하면서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에서 소련의 공격에 대한 불안이 커졌습니다. 곧이어 1983년 11월 미국에선 핵 전쟁과 그 이후의 인류의 삶을 다룬 '그날 이후'가 ABC방송을 통해 방영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는 레이건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정치가들과 국민들에게 아주 아주 큰 반향을 일으켰고 레이건은 참모들과 이 영화를 관람한 후 즉시 핵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 회의와 핵 무기 축소를 위한 대책 기구를 조직했습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이 보유한 핵 미사일은 6만개를 넘어선 상태였고 이 양은 인류를 수백번 멸망시키고도 남을 양이었습니다.  




고르바 초프의 개방 정책과 체르노빌 핵 발전소 폭발사고


한편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된 고르바 초프는 아프카니스탄 침공, 미국과의 군비 경쟁, 소련내 생산성 악화, 경제 침체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서유럽과의 교역을 늘리는 개방(글라스 노스트, glasnost), 개혁(페레스트로이카, perestoika)정책을 시작합니다. 이 와중에 소련의 비옥한 곡창지역이였던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체르노빌 핵 발전소가 1986년 4월 26일에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올해 미드 중 최고의 역작이라고 불리는 HBO의 '체르노빌'을 보시면 이 엄청난 사고가 얼마나 터무니 없는 이유 때문에 발생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체르노빌 핵 발전소 사고와 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천문학적 피해와 비용이 발생하고 방사능 피폭으로 우크라이나 곡창지역 52,000㎢(남한 면적 절반 가량)가 완전히 쓸모 없는 땅이 되었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소련 경제가 더욱 악화되고 지도층에 대한 불신이 최악에 이른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고르바 초프는 훗날 소련이 개방되고 냉전이 종식된 가장 큰 이유로 체르노빌 핵 발전소 사고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체르노빌 핵 발전소 폭발사고는 이후 독일을 비롯한 서,북유럽의 신재생 에너지 전환정책에 불을 당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고 당시 발생한 방사능 먼지가 독일의 산업,경제의 중심지인 프랑크 푸르트까지 날라가면서 학교가 임시휴교를 하고 외출을 금지하는 일이 발생 했습니다. 이 때문에 독일을 비롯한 서, 북유럽 국민들에게 핵발전소에 대한 강한 경각심을 갖게했고 이 때부터 핵발전이 아닌 태양, 풍력, 조력, 바이오 가스 등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기술 개발과 확산이 더욱 속도를 내게 되었습니다.  



일본 기업의 약진과 MBA(경영전략) 중흥시대 개막.. 


1980년대 정치적 이슈가 핵 전쟁의 공포와 냉전이었다면 경제적 이슈는 일본 기업의 글로벌 약진이었습니다. 1970년대 일본의 소니, JVC, 파나소닉의 소형가전, 캐논과 니콘의 카메라, 도요타의 자동차, 혼다의 오토바이와 자동차 등이 높은 기술력과 낮은 가격으로 미국과 유럽시장에 발을 디딘 후 1980년대 급속히 시장 점유율을 높이면서 일본 기업의 글로벌 진출과 성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자동차 산업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1970년대 오일쇼크로 기름 값이 급등하면서 연비가 좋은 일본차들에게 속수무책 자리를 내 주었습니다. 


유럽의 기업들은 역사가 길어 세계 대전 등 커다란 위기를 여러번 겪고 극복한 경험이 있었으며, 국가와 지역의 기반 산업 성격이 강해 고정 거래와 충성 고객을 많이 확보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급격한 성장보다는 꾸준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기업의 약진에 그리 큰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반면, 미국 기업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경기 상승에 힘입어 급격히 성장했고, 미국의 소비자들은 미국 기업들에 대한 충성도가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의 약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허둥거렸습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해 보겠다고 부랴부랴 일본 기업들을 경영 방식과 경영 전략을 분석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아이러니 하게도 미국내 경영전문대학(MBA)이 급속히 성장하는 결과를 나았습니다. 


1980년대 미국내 MBA의 중흥으로 경영전략의 기초인 '핵심역량 분석(혼다, 캐논의 사례분석)' , '카이젠 전략(토요타의 개선방식 분석)', '5Force(일본 기업의 경쟁력)분석' , 'SWOT 분석', '차별화 전략' 등의 MBA 방법론들이 등장했고 미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사내 경영전략부서들이 빠르게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한국은 미국을 따라갔습니다.





인류 최악의 산업 참사 - 인도 보팔 참사


1970년대 잠깐 관심을 받았던 CSR은 동서냉전의 격화와 미국과 유럽에서 일본 기업들의 약진, 미국의 레이건, 영국의 대처 수상의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라 관심밖으로 밀려났습니다. 이 와중에 1984년 12월 3일 한밤 중 미국 화학기업 유니언 카바이드의 인도 보팔공장에서 농약의 원료인 메틸 이소시안염(MIC)이 유출되었습니다.  MIC는 화학물질계의 핵폭탄이라고 불리는 맹독성 물질입니다. 이 유출사고로  잠을 자던 인근주민 3,500명 가량이 즉사했고 후유증으로 3만 3천명 이상이 사망, 약5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결핵, 실명, 피부 질환의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니언 카바이드의 인도 책임자는 사고 즉시 미국으로 달아났고 인도 법원에서는 그를 재판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조사와 재판도 엉망진창으로 진행되어 26년이 지난 2010년에 책임자 2명에 대해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징역 2년을 선고하였습니다. 유니언 카바이드는 이 참사의 책임을 지지 않고 공장문만 닫은채 인도를 떠났습니다. 1986년 인도 정부는 유니언 카바이드와의 협상에서 보상금으로 4억 7,000만 달러를 받고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피해자의 의사를 묻지 않은 인도 정부의 일방적인 합의와 결정에 따라 부상자에게 1인당 약60만원, 사망자에게는 1인당 240만원씩의 보상금이 지불되었습니다. 


이 사고로 결국 유니언 카바이드는 다른 회사에게 인수되었지만, 경영진 중 아무도 이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이 참사는 이후 글로벌 기업들의 제3세계 진출과 현지 경영 방식에 대한 아주 나쁜 선례를 남겼습니다. 이때 만일 인도 정부와 미국 정부, 그리고 국제기구들이 유니언 카바이드의 책임을 제대로 묻고 제대로 된 처벌과 보상을 했었더라면 그 이후 발생한 글로벌 기업들의 제3세계 공장과 협력업체에서 발생한 어처구니 없는 많은 사고와 사건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CSR 연구의 발전 _ 이해관계자 이론과 프로세스 관점


1979년 캐롤 교수의 CSR의 4가지(경제적 책임, 법적 책임, 윤리적 책임, 임의적 책임) 특성에 대한 개념 연구 발표 후 1980년대에는 CSR에 대한 특별히 주목할 만한 학문적 연구들이 이루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경영학계에서 MBA가 대흥행을 하고 경영학자들은 너나 없이 경영전략에 몰두했던 시기였으니까 말입니다.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 학문, 특히 경영학은 유행을 많이 타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SR의 개념 확장에 필요한 몇가지 용어와 이론이 등장했습니다. 대표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반응', '기업의 사회적 성과', '기업과 공공 정책의 관계', '비즈니스 윤리', '윤리 경영', 그리고 토마스 M. 존스(Thomas M. Jones) 교수의 '이해 관계자 이론과 프로세스 관점' 입니다.




이 중 존스 교수의 이해관계자 이론과 프로세스 관점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 1990년대 이후 CSR과 지속가능경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존스 교수는 1980년대 초 미국 윤리경영학회 발표에서 자본주의 체제안에서 기업의 모든 의사 결정은 주주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한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을 반박하고 기업을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해선 주주 이외에 임직원, 노동조합, 지역 공동체,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과 상황을 고려하여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그는 CSR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일련의 결과나 성과라기 보다는 과정(Process)이라고 강조하며 CSR을 프로세스로 인식해야지만 'CSR을 실행하는 과정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할 수 있고 이렇게 해야지만 CSR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존스 교수의 이해관계자 이론과  CSR을 프로세스 관점으로 이해야 한다는 것은 1990년 이후 CSR과 지속가능경영의 이론적 발전 뿐만 아니라 실천 방법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요약

1980년대 CSR은 동서 냉전이 정점에 달하면서 핵 전쟁의 불안이 최고조에 이르고 일본 기업의 약진으로 인해 미국과 유럽 기업의 불안이 가중되면서 CSR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따라서 인도 보팔 참사와 같은 엄청난 일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뒷처리를 못하는 바람에 이후 글로벌 기업들의 제3세계 진출에 아주 나쁜 선례를 남겼다. 학문적으로는 경영학에서 MBA와 경영전략이 득세하면서 CSR에 관심 갖는 연구자들이 별로 없었지만 존스 교수라는 사람이 이해관계자 이론과 CSR을 프로세스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이후 1990년대 CSR과 지속가능경영 연구에 튼튼한 기초를 제공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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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이후 1990년대 부터는 본격적으로 CSR과 지속가능경영이 기업경영의 주요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데요. 이건 다음 6편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엔 CSR에 관한 책을 소개합니다. 블로그 찾아 주셔서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