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R 메가 트렌드(5)_ CSR 방식의 확장과 결합
비즈니스 가치사슬의 사회, 환경문제 해결
좋은 기업이란?
기업사회공헌, 기업의 사회적 책임, 지속가능경영을 공부하다 보면 결국 도달하는 마지막 질문은 ‘좋은 기업(Good Company)이란 어떤 기업인가?’이다. 기업이 수익 중 일부를 공익활동에 사용하고, 기업의 운영과 비즈니스 가치사슬에서 경제적, 법적, 윤리적,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다하고, 기업의 존속을 위해 경영의 기반이 되는 공동체, 시장, 지구환경의 지속가능성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모든 일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좋은 기업이 되고 싶다면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새로운 기업을 창업해서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며 기업을 성장시키는 대부분의 창업자와 경영가들은 자신이 세우고 키운 기업이 나쁜 기업이 아닌 좋은 기업이 되기를 원한다. 기업가도 사람이라면 욕먹는 것 보다는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좋은 기업은 어떤 기업일까? 수익을 많이 내는 기업일까?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기업일까? 탈세를 하지않고 정직하게 세금을 잘 내는 기업일까? 좋은 상품을 싼 값에 고객들에게 공급하는 기업일까? ... 과연 어떤 기업이 좋은 기업일까?
'좋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적절한 가격에 판매해서 꾸준히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 19세기에 정의된 굿 컴퍼니의 출발점은 변하지 않았지만 21세기의 좋은 기업은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좋은 기업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점점 그 의미와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좋음(Good)”에 대한 사회의 가치 기준선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CSR의 영역이 점차 확장되고 기업사회공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자꾸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이때문이다. CSR 또한 사회변화를 따르는 유동적, 확장적 개념이다.
좋은 기업에 대해 학문적으로 가장 오랜기간 탐구해온 학자들은 기업의 경영 윤리(倫理, ethics)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1953년 ‘비즈니스의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 of the Business)’라는 책을 통해 성공한 기업가 개인의 자선적 책임에서 기업 조직의 경영적 책임으로의 책임 확장을 주장한 보웬(Bowen) 또한 경제학자이자 평생 윤리경영을 연구한 사람이다.
윤리경영(ethical management)은 초기에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가의 윤리성을 강조하는 것에서 출발했지만 1960년대 미국에서 환경운동이 시작되고 1970년대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와 함께 전쟁에 무기와 전쟁물자를 공급해서 돈을 버는 대기업들에 대한 거부시위가 격해지면서 경영가 차원이 아닌 기업 자체의 윤리성과 책임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글로벌 리딩 기업들 안에선 1970년대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는 기업사회공헌으로 이어지고, 1990년대에는 공익연계마케팅이 등장했다. 윤리경영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다른 몸이 아니라 같은 몸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1990년대 CSR에 집중한 학자들이 지속가능경영 개념을 들고 나왔을 때 윤리경영 학자들은 ‘기업시민의식(Corporate Citizenship)’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대표적 학자이자 미국 윤리경영학회의 회원인 A.B Carroll 교수는 1998년 논문 ‘기업시민의식의 네 가지 얼굴(The four faces of corporate citizenship)’에서 “기업시민의 개념은 기업을 한 명의 시민과 같은 인격체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기업시민에게는 경제적, 법적, 윤리적, 자선적 책임과 역할이 있다고 했다.
기업을 또 하나의 시민(인격체)로 인식한다면 좋은 기업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훨씬 더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 된다. “좋은 기업 = 좋은 사람, 기업의 사회적 책임 = 시민의 책임”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2002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m)에 참여한 16개국 40여명의 글로벌 대기업 CEO들은 ‘글로벌 기업시민(Global Corporate Citizenship)’을 정의하고 기업 운영 지침에 이를 적극반영하겠다고 합의하면서 국제사회에서 ‘기업시민’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WEF에서 정의한 기업시민은 다음과 같다.
“기업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여는 법을 준수하고, 안전하면서 비용 효율성이 높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며, 일자리와 부를 창출하는 동시에 교육과 기술 협력을 제공하면서 기업 활동을 펼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환경, 윤리, 노동, 인권과 같은 영역에 가치를 두고 국제 기준을 기업 운영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기업 활동에서 긍정적인 파급을 강화시키는 반면 사람들과 환경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감소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기업은 곳곳에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책임 있는 기업 시민이 되기 위해 오늘 기업이 채택하는 프레임워크는 자선(Philanthropy)을 뛰어넘어야 하며 비즈니스 핵심 전략과 운영에 통합되어야 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즉, 기업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시민”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는 단지 기업이 이익 중 일부를 기부하거나 직원들을 봉사활동에 참여시키거나 광고를 통해 공익 캠페인을 하거나 또는 기부, 봉사, 캠페인을 기업의 유익(Benefit)에 맞게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는 의미를 넘어 ‘기업운영과 비즈니스 가치사슬 전체에 윤리성과 책임성을 실천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2000년에 접어들면서 CSR은 기업시민이라는 개념과 비즈니스 가치사슬이라는 영역으로 확장하게 된다.
비즈니스 가치사슬
비즈니스 가치사슬(Value Chain)은 경영전략에서 나온 개념이다. 마이클 포터는 1985년과 2001년에 각각 비즈니스 가치사슬에 대한 책과 논문을 발표했는데 기업에서 경영전략을 어떻게 수립하고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으로 각 기업의 비즈니스 가치사슬을 분석하고 각각의 단계별로 효과성과 효율성을 최대화하는 동시에 경쟁기업에 대한 차별적 우위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여 경영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했다.
마이클 포터는 비즈니스 가치사슬을 크게 ‘본원적 활동’과 ‘지원활동’ 두 가지로 구분했다. 본원적 활동은 다시 ‘원재료, 투입(공급)물류, 제조생산, 산출(배송)물류, 마케팅과 판매, 서비스’ 등 6개로 나눌 수 있으며, 지원활동은 ‘기업 인프라, 인적자원관리, 기술개발, 운영조달, 수익활용’ 등 5개로 구분할 수 있다.
CSR 스펙트럼 7단계 중, 1단계 자선 기부, 2단계 임직원 봉사활동, 3단계 공익 마케팅, 4단계 전략적 사회공헌은 비즈니스 가치사슬에서 수익 활용에 해당한다. 임직원 봉사활동의 경우 인적자원관리, 공익 마케팅의 경우 마케팅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지만 봉사활동이나 공익 마케팅이 그 기업의 인적자원관리과 마케팅의 핵심 또는 주요 경영활동으로 고정 된다면 그럴 수 있지만 사회공헌차원에서 하는 것이라면 수익활용에 해당한다.
환경과 인권
CSR이 사회공헌영역(CSR 스펙트럼 1~4단계)에서 경영(5~7단계)으로 확장한다는 의미는 기업의 본원적 활동과 지원활동 모두에 윤리성과 책임성을 결합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CSR이 사회공헌에서 기업경영으로 확장된 계기는 무엇일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사회공헌 영역에서 비즈니스 영역으로 확장된 가장 큰 이유는 인권과 환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기준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시민단체의 성장과 언론, 미디어의 발달이 큰 몫을 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시작된 환경보호운동은 1970년대 유럽, 1980년대 아시아 선진국으로 확산되고 1990년대 UN, OECD를 비롯한 각종 국제회의의 주요의제가 되었다. 환경보호운동은 시민운동으로만 끝나지 않고 국제규약과 각국에서 입법운동으로 이어지면서 환경보호법이 생겨나고 강화되었다. 기업은 윤리경영이전에 준법경영을 해야하기 때문에 높아진 환경보호기준과 법은 기업들의 환경경영을 강제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환경과 관련된 국제협약을 이끌어내고 각국의 환경보호법을 제정하는데에는 환경운동단체들과 언론의 힘이 컸다. 환경단체들과 언론들은 기업의 이윤 중심 경영으로 인해 망가지고 황폐한 자연환경의 모습, 고갈 중인 천연자원, 그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동물과 식물의 처참한 상황, 그리고 망가진 환경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들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인류생존을 위해 유일한 자원이자 유한한 자원인 지구가 망가지는 모습을 대중매체로 접한 사람들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고 그것이 환경 관련 국제규약과 각국의 환경보호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인권문제도 환경문제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기업경영에서 인권은 노동자, 소비자 등 기업의 비즈니스 가치사슬에 연결된 사람들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가치 존중을 의미한다. 인권문제는 환경문제보다 훨씬 오랫동안 기업경영의 주요 이슈였지만 실제 인권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 것은 1990년대 이후 아주 최근의 일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노동자 인권문제는 노예제도와 그 역사를 같이한다. 아동노동문제는 산업혁명때부터 줄곧 문제가 되어 왔으며,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대우와 기업 내 성폭력 문제 또한 19세기 이후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문제이다. 유색인종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대우 문제 또한 그 역사가 오래 되었다.
기업의 인권문제가 환경문제보다 더 오래된 고질적인 병폐임에도 불구하고 해결 과정이 더딘 이유는 환경문제의 경우 국제적으로 객관성을 가진 기준을 정하고 그것에 따라 동일한 방법을 적용 수 있지만 인권문제는 노동자들이 속해 있는 국가의 종교, 문화, 역사, 전통에 따라 인권에 대한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 매우 어렵다. 그나마 기업 인권 영역에서 국제적인 합의를 끌어내고 있는 문제는 아동노동, 노예노동, 노동환경, 근로자 처우 정도이다.
CSR 가이드 라인의 변화
CSR 스펙트럼의 5단계는 비즈니스 가치사슬 상의 사회, 환경적 이슈를 개선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기업이 위치한 국가의 관련 법이고 좀 더 상향된 기준은 CSR과 관련된 국제 가이드 라인들이다.
CSR 보다는 이윤을 앞세운 기업들은 가능하면 사회, 환경, 인권, 노동권 관련 법이 허술한 국가의 생산협력업체들을 선택하거나 아예 그 국가로 생산공장을 옮겨 버린다. 1970년대와 80년대 미국, 유럽, 일본의 글로벌 기업들이 중남미와 아시아에 생산공장을 옮긴 이유가 그랬고, 1990년대 한국이 중국과 동남아로 생산공장을 옮긴 이유도 낮은 생산원가(임금)와 법과 규제가 본국보다 허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0년에 제정된 기업을 포함한 모든 조직의 사회적 책임 가이드 라인 ISO26000과 그 이후에 연이어 만들어지고 있는 각종 산업별 사회, 환경 기준들은 글로벌 기업들의 본사가 위치한 국가 뿐만 아니라 제3세계에 있는 생산공장과 생산협력업체들의 사회, 환경, 인권, 노동권 문제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기준을 높여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투자나 거래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도 있다고 공표하고 있다.
자동차, 가전, 컴퓨터, 모바일 기기 등 국제 거래가 많은 상품들의 경우 미국과 유럽의 거대 유통사들이 생산공장이 있는 제3세계 국가의 국내법보다 높은 기준으로 사회, 환경기준을 지킬 것은 생산기업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또한, 유럽연합(EU)은 EU차원에서 지속가능경영과 CSR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그것을 충족하지 않으면 외부에서 EU시장내 진출을 제한하는 법과 규제들을 매해 새롭게 만들어 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책임투자(SRI)라는 명분을 내세운 JP모건, 블랙락 등을 비롯한 글로벌 거대 투자사들과 CITY, HSBC, UBS와 같은 미국과 유럽의 투자은행들은 기업의 재무실적 뿐만아니라 ESG(환경,사회, 지배구조) 실행 실적도 투자에 반영하겠다고 한다. ESG 실행 평가의 대부분은 기업의 비즈니스 가치사슬에서 해당 국내 법을 넘어 국제 가이드 라인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비즈니스 가치사슬의 CSR 국제 기준선이 높아짐에 따라 CSR이 사회공헌영역에서 경영영역으로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한국 국내 시장에서 머무르는 기업들은 이런 변화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 시장 수출이 중요한 기업들은 이 이슈가 기업 생존에 매우 중요한 현안이다.
기업사회공헌 + 비즈니스 가치사슬
기업사회공헌 또한 비즈니스 가치사슬의 사회,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결합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네슬레로 1990년대 나이키와 함께 아동노동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던 네슬레는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커피, 코코아 농장의 아동노동을 근절하기 위해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농장주들에게 아동노동이 발각되면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사회공헌사업으로 농장 인근에 학교를 세우고 아동노동에 시달리던 아이들을 학교로 보냈다. 이 사례는 마이클 포터의 2011년 HBR 공유가치창출(CSV)의 핵심사례로 등장한다. 즉 CSV는 비즈니스 가치사슬상의 사회,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사회공헌을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CSR 스펙트럼의 5단계는 1단계~4단계까지의 사회공헌 방법과 5단계 비즈니스 가치사슬의 사회, 환경 문제를 개선 또는 해결하는 방향으로 결합, 확장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진짜 좋은 사람은 안과 밖에서 한결같이 좋은 사람을 의미한다. 집밖에서는 성인군자와 같지만 가정에서는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봉사활동과 기부는 잘하는 사람이 불법을 저지르고 탈세하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 기업이 사람과 같은 인격을 가진 ‘기업시민’ 이라고 한다면 기업 또한 마찬가지다.
시민의 책임은 기부를 많이하고 봉사활동을 열심히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시민은 자신이 속한 사회가 정한 법과 제도를 잘 지키고 그 사회의 윤리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좋은 시민'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제 해결에 적극 참여해야 하며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협력하고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공동체를 위해 내어 놓아야 한다.
기업이 비즈니스 가치사슬에서 발생하는 사회, 환경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서, 기부나 봉사활동, 공익 캠페인을 통해 그 문제들을 덮거나 무마하려 한다면 좋은 기업이라고 평가받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무엇보다 기업 스스로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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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가 올해 마지막 블로그가 되었네요^^ 2019년 한해동안 Balanced CSR을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2020년에는 좀더 깊이 있게, 그러나 쉽게 CSR과 기업사회혁신을 이야기하는 블로그가 되겠습니다. CSR 스펙트럼 단계(6)으로 새해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Balanced CSR 유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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