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lanced CSR & ESG

CSR 담당자가 꼭 봐야할 영화 "Dark Waters"

by Mr Yoo 2020. 8. 1.

 

CSR 담당자가 꼭 봐야할 영화

다크 워터스 

 

우리 동네 이야기...

 

다크 워터스... 인터넷에 뜬 영화제목과 줄거리를 보며 고향동네 이야기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물론 내 고향은 이 영화의 실제 배경인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는 아니다. 나의 고향은 강원도 정선이고 나는 읍사무소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탄광촌인 고한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고한의 냇물은 말 그대로 '다크 워터스'였다. 탄광에서 흘러나온 물 때문에 냇물은 온통 까맸고 어떤 생물도 살지 못했다. 탄광촌 산동네에는 수도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빨래대야를 머리에 이고 그나마 조금이라도 깨끗한 물이 흐르는 냇물을 찾아 산중턱까지 30분을 넘게 걸어올라가 빨래를 하셨다. 집에서 혼자 낮잠을 자다 깨어나 빨래하러간 엄마를 찾아 울며 불며 시커먼 냇물을 따라 산길을 올라갔던 기억이 언뜻 언뜻 남아있다. 

 

물만 까맣게 오염된 건 아니었다. 숨쉬는 공기도 석탄가루가 절반이었다. 하루에도 수백번 광산과 기차역을 오가는 석탄트럭 때문에 하루종일 석탄가루가 날렸다. 산중턱 냇물에서 해온 빨래는 방안에서만 말려야 했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고한역 석탄 적재장에 쌓여 있는 석탄들이 날려 어두운 하늘을 더 어둡게 만들었다. 그렇게 고한의 하늘과 땅과 물을 까맣게 만든 석탄들은 기차에 실려 도시로 갔다. 

 

어렸을때 마신 석탄가루가 폐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군입대 때문이었다. 군입대 신체검사를 하면서 폐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에 아주 작은 점들이 보인다고 했다.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담당한 의사가 어렸을때 탄광촌에 살았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석탄가루가 폐에 남아 있다고 했다. 일상적인 생활에는 지장이 없으나 수영이나 마라톤, 고산등산과 같은 산소가 많이 필요한 운동을 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일반 성인에 비해 폐의 기능이 10% 정도 나쁠 수 있다고도 했다. 가능한 폐렴에 걸리지 말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정선에는 광산에서 일하다 폐에 석탄가루가 들어가 심각한 손상을 입은 진폐증환자를 위한 병원이 지금도 운영 중이다. 그때 온 세상을 까맣게 만들었던 동원탄좌는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에 따라 문을 닫았고 탄광에서 일하던 막장 노동자들은 얼마안되는 퇴직금을 받아들고 서둘러 탄광촌을 떠났다. 한때 국내에서 가장 많은 석탄 생산량을 자랑하던 동원탄좌에는 지금 석탄문화관이 그리고 그 위 산등성이에는 강원랜드와 카지노가 들어서 있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 : Rob Bilott 변호사와 듀폰 로고

 

듀폰의 실제 이야기..

 

다크 워터스는 미국을 대표하는 화학기업 '듀폰'과 관련된 실제 이야기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탄소결합물질 '테프론(C-8)'이 인체와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막대한 이익 때문에 30년이상 이 사실을 감추려했던 사건을 다룬 영화이다. 

 

자세한 내용은 영화를 직접 보면 좋겠다는 말로 대신하고 (극장이 아니더라도 IPTV나 유투브에서 볼 수 있다), 대신 CSR을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인상 깊었던 세 장면을 소개하고 싶다.

 

다크워터스 중 _ 출처 : 유튜브 공식 트레일러

   

화학으로 더 나은 삶....

 

영화초반 주인공이 일하는 법률회사 사내 세미나에서 듀폰의 법률팀 대표 변호사가 연설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의 법률회사는 듀폰을 새로운 고객으로 삼고 싶어 이 변호사를 특별히 초청했다. 그에게 글로벌 거대기업에서 대표 변호사로 일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이며 그 일을 오래도록 지속하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는 연설도중 듀폰에 대한 소개를 한다. 

 

"듀폰은 '화학으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회사입니다. '화학으로 더 나은 삶을'이란 말은 단순히 듀폰의 슬로건이 아니라 우리(듀폰)의 DNA입니다" 

 

연설을 듣던 법률회사 변호사들의 얼굴엔 부러움과 감동의 표정이 스친다. 모두가 큰 박수를 치는 가운데 주인공 변호사는 시큰둥한 표정이다. 

 

1897년 문을 연 화학회사 듀폰은 미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기업 리스트에 늘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듀폰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많은 공헌을 한 회사이다. 듀폰이 1차, 2차 세계대전 중에 개발한 다양한 화학물질들이 전쟁무기에 사용되어 미군과 연합군이 승리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영화의 소재인 데프론 또한 무기의 방수를 위해 개발된 화학 코팅제이다. 

 

듀폰의 법률팀장도 듀폰을 자랑스러워하는 인물이다. 지방 공장에서 일어난 사소한(?) 환경오염 문제는 듀폰이 인류에게 미치는 막대한 긍정적인 영향에 비하면 무시해도 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웨스트 버지니아 공장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자체조사결과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채 주인공 변호사에게 엄청나게 많은 전체 자료를 그대로 넘길만큼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대신 로펌의 일개 변호사가 '감히' 듀폰을 고발했다는 사실에만 집중한다. 사실관계는 상관없었다. 어차피 법률 소송에서 듀폰을 이길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직업 특성상 주요 기업의 CSR 담당자들을 자주 만난다. 담당자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 부류는 듀폰의 법률팀장처럼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넘치는 사람이다.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가 얼마나 괜찮은 회사인지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눈치가 보인다. 어쩌다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언론 기사나 이슈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면 그것은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신이 아닌 이상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세상에 이 정도 실수도 없는 회사가 어디 있겠냐고 얼버무린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자부심이 넘치는 직원이 있으니 정말 좋겠다 싶다.  

 

또 한 부류의 사람은 회사의 부정적 이슈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외부에 밝혀진 것 보다 문제가 심각하며 빨리 제대로 손을 쓰지 않으면 더 큰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들은 지속가능경영과 CSR관련 이슈에 대해 기업내 모든 현업팀들이 관심을 가지고 중요한 해결과제로 생각하기를 바란다. 

 

나는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더 좋아하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원한다. 지속가능경영, CSR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사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심도 있어야겠지만 문제와 이슈를 보는 객관적인 시각과 민감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크워터스 중 _ 출처 : 유튜브 공식 트레일러

  

사회공헌보다 CSR이 1억배 중요한 이유...

 

영화의 주인공이 웨스트 버지니아의 듀폰 공장이 있는 마을을 찾았을때 배경음악으로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ds'가 흐른다. 노래 가사 중간 중간에 웨스트 버지니아가 등장한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마을 풍경 곳곳에 듀폰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시민회관, 고등학교, 놀이터, 공원, 그리고 길가에 쓰레기통까지 듀폰의 로고와 'Better things for better living' 문구가 보인다. 

 

듀폰의 공장이 들어서고 30년 동안 이 마을의 주민들은 듀폰 덕분(?)에 생활을 유지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듀폰에서 일했고 듀폰 사원증만 있으면 은행에서도 손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듀폰은 마을 사람들에게 시시때때로 선물을 주었고 시민회관, 학교, 공원, 놀이터를 지어 주었다. 시민회관에서 실업자들을 위한 직업 교육 프로그램도 꾸준히 진행했다.

 

그러나, 듀폰에서 내보낸 화학가스와 폐수로 인해 지역 주민들은 차츰차츰 병들어 갔다.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들은 기형아를 출산했고 거의 모든 가정에서 암이 발병했다. 아이들의 이빨은 검게 썩어갔다. 3,500여명이 넘는 지역주민이 데프론 오염 때문에 병을 얻게 되었다.

 

영화는 아주 잠깐이지만 기업사회공헌의 민낯을 서늘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마을 곳곳에 새겨진 듀폰의 마크와 사회공헌 캐치 플레이즈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얼마나 뻔뻔스러운 거짓말인지를 잠깐의 장면으로 설명한다. 

 

기업의 사회공헌(social contribution)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이 1억배 중요한 이유를 이 영화는 말로 설명하지 않고 죽어가는 마을에 새겨진 듀폰의 로고로 보여주고 있다. 

 

 

다크워터스 중 _ 출처 : 유튜브 공식 트레일러

 

미국 기업이란 게 이것보단 나아야 하잖아...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여럿 있지만 CSR 담당자로서 딱 세개만 꼽으라고 한다면 마지막 세번째 장면으로 주인공 변호사의 로펌이 회사차원에서 듀폰에게 소송을 걸 것인가 말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하던 중 회사차원에서 소송을 걸면 회사에 득될 것이 하나도 없고 과연 듀폰을 이길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다수가 내자 로펌 대표가 화를 내는 장면이다.

 

오랜만에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인 팀 로빈스를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던 장면이기도 하다. 로펌의 대표는 소속 변호사들 모두가 주인공의 소송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상황에서도 주인공을 신뢰하고 지지한다. 그러면서도 주인공이 듀폰 때문에 다른 소송을 맡지 못하고 회사 비용을 많이 쓰자 주인공의 급여를 여러차례 깍는 경영자로서의 면모(?)도 보여준다.

 

CSR 실무자가 아무리 진정성을 가지고 업무를 하려고 해도 담당 임원이나 CEO, 또는 오너가 CSR에 대한 이해나 실천의지가 없으면 참 어렵다. 바위로 계란치기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 CSR에 대해 냉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윗사람들의 의사결정을 움직이는 것이다. 나 또한 그 벽을 깨거나 넘지 못하고 포기하고 돌아선 순간이 엄청나게 많다. 

 

"다들 이 친구(주인공)가 수집한 증거는 읽었나? 미필적 고의와 부패에 관한 증거 말이야...... (모두가 침묵, 시선 회피)... 읽어! 읽어 보라고.. 읽고나서 소송을 하지 말자는 얘기를 하라고..... 이래서 미국인들이 변호사를 싫어하는 거야....  미국 기업이란게 이것보단 나아야 하잖아.... 그렇지 않은 기업은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야 하고..... 안그래? "

 

이 장면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속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동안 저런 상사, 저런 회사 대표를 만났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영화는 끝났지만 현실은 계속 진행 중이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지금도 소송중에 있다. 웨스트 버지니아의 듀폰 케이스는 수천개의 유사한 사건들 중에 단 하나에 불과하다. 

 

지속가능경영과 CSR에 대한 글로벌 가이드 라인이 생겨나고 관련 국제법과 국내법들이 촘촘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글로벌 가이드 라인을 만들고 국가의 법을 만드는 배경에는 거대 기업들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익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 이익이 막대하다면 거짓, 회유, 협박,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영화 다크 워터스가 그 현실을 담담한 시선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

 

오늘의 블로그는 영화 감상평으로 대신합니다. 주말에 다크 워터스 꼭 보시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우리나라 CSR 역사 마지막 편을 올리겠습니다. 블로그 찾아 주셔서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Balanced CSR 유승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