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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anced CSR & ESG

우리나라 CSR의 역사(8)_2020년대 CSR의 선택

by Mr Yoo 2020. 8. 16.

 

파타고니아 피츠로이 / 구글 이미지

 

우리나라 CSR의 역사(8)

2020년대 CSR의 선택

 

 

우리나라에서 기업사회공헌, CSR, 지속가능경영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 어림짐작해도 그리 많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면에서 나는 운이 꽤 좋은 편이다. 이 바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좋은 일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좋은 운, 좋은 일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가야할 방향을 잘 알고 잘 선택해야한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방향을 잘못잡으면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나에겐 그럴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방향, 어떤 길로 가는 것이 기업사회공헌, CSR, 지속가능경영을 직업으로 삼은 나에게 좋은 선택이 될 것인가... ?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앞으로 나의 길은 암벽등반 / 구글 이미지

 

지난 일곱번의 블로그를 통해 우리나라 CSR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변화의 속도가 기대보다 느리지만 변화의 방향은 분명히 느껴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CSR 변화의 방향은 글로벌 CSR의 방향을 천천히 따라가고 있으며 기업이 주도하는 능동적인 변화라기 보다는 외부 변화에 기업이 적당히 적응해 가는 수동적인 방향이다. 아쉽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은 그렇다. 

 

실상 CSR의 의미는 능동형이 아닌 수동형이다.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란 말을 풀어보면 '기업이 사회에 반응하는 능력이다'. 알다시피 Responsibility는 Response(반응, 응답)와 ability(능력)의 합성어이다. 

 

그런데, 시각을 조금만 넓혀 나라 밖의 상황을 보면 CSR의 방향이 수동형에서 능동형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사회공헌(corporate philanthropy, 엄밀히 말하면 기업자선활동)이 CSR로 확장되고, CSR은 지속가능경영과 결합한 후 다시 순환경제와 재생(Regeneration)비지니스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그 진화의 선두에 위치한 기업들은 기업 스스로가 동력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지만 그 기업들이 속한 사회, 시장, 고객, 소비자가 기업의 진화를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2020년 이후 우리나라 기업들이 지금처럼 수동형 CSR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능동형 CSR로 진화할 것이냐는 개별 기업의 선택도 중요하지만 정부, 사회, 시장, 고객, 소비자가 CSR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질 것이냐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착한기업콤플렉스 / 이보인

 

아시아경제 2018년 8월 16일

 

1. 능동형 CSR의 첫번째 방향 : "착한기업"의 허상을 버리자.

 

1998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설립 이후 우리나라에는 "착한기업"이라는 이상한 단어가 등장했다. 모금회를 비롯한 모금단체들, 사회복지단체들을 중심으로 기부나 자원봉사를 많이하면 "착한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줬다. 언론들은 이것을 받아 기사화했고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기부금을 많이내거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그럴싸하게 하는 기업들을 착한기업이라고 부추기며 사회공헌상을 남발했다. 그 상(賞)들은 말이 상이지 실제는 몇천만원씩 홍보비를 내고 사는 상품에 불과했다. 

 

나를 비롯해 이 바닥에서 일하는 주변사람들은 "착한기업"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업은 법으로 인격을 부여받은 법인(法人)이다. 기업을 사람이라고 치면 지금 우리사회에서 쓰이고 있는 착한기업이라는 말은 "기부를 많이 한 사람 = 착한 사람, 봉사를 많이 한 사람 = 착한 사람" 이라는 의미이다. 짧은 생각엔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기부를 많이 했다고 그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또는 봉사를 많이 했다고 착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를 곰곰히 잘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부를 많이 한 사람, 봉사를 많이 한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다른 모습도 착해야 한다. 거꾸로 말하면 다른 사람을 솎여 돈을 많이 번 사기꾼이 기부를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고, 가정에서 식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가 밖에서 아무리 봉사활동을 잘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다.

 

2020년 이후에는 '착한 기업'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의미를 살리고 싶다면 '좋은 기업 / Good Company'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Good Company is Good Corporate Citizen' 이란 말이 많이 사용한다. 즉, 좋은 기업이란 좋은 기업시민을 뜻한다.

 

좋은 기업시민이란 '기업이 국가와 지역사회 공동체의 일원임을 스스로 깨닫고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한다'는 뜻이다. 시민의 책임은 법적, 윤리적, 사회적, 환경적, 자선적 책임을 말한다. 이 중 자선적 책임만 잘한다고 해서 좋은 시민으로 불리진 않는다. 다른 역할과 책임들도 상향 평준화되어야 그 기업을 좋은 기업시민, 좋은 기업이라고 부른다. 

 

이제는 우리도 그래야 할 때이다. 다른 건 엉망진창인데 기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또는 임직원을 동원하는 봉사활동을 많이 한다고 해서 "착한기업" 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기부나 봉사활동 정도로 좁게 해석하는 일은 1970년대 개발독재시대, 민주화되지 않은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의 기업관이다. 지금은 2020년임을 잊지말자. 

 

 

냄비와 개구리 / 구글 이미지

 

2. 능동형 CSR의 두번째 방향 : 우물안 개구리에서 냄비속 개구리가 되면 안된다.

 

CSR, 지속가능경영 관점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 시장 공급사슬에 속한 기업들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렇지 않은 기업들이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은 그곳에서 원하는 CSR, 지속가능경영(ESG) 기준에 맞추기 위해 신속히 반응하고 있는 반면 다른 부류의 기업들은 CSR, 지속가능경영에 무관심한 상황이다.   

 

알다시피 미국은 클린턴과 오바마 대통령시절에 기업의 환경과 사회기준을 많이 올려놨다. 트럼프 당선 이후 휘청거리고 있지만 다가올 12월 대선결과가 정상으로 돌아올 경우 미국 시장에 진출하거나 미국 기업에게 납품해야하는 기업들은 꽤 까다로운 사회, 환경적 기준을 맞추어야 한다. 유럽(EU)은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CSR에 대한 기준이 세계 어느 지역보다 높은 상황이다.

 

선진국 시장 진출을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외국 투자사들의 투자 또한 지속가능이 핵심 이슈이다. 최근에 글로벌 거대 투자사들을 중심으로 ESG 투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이미 10년전부터 충분히 예고된 바였다.  우리나라 투자사들이 뒤늦은 관심을 보이고 있을 뿐이고 언론사들은 여기에 맞춰 뒷북을 치고 있는 것 뿐이다. 

 

2017년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UBS 본사를 방문했을때 UBS의 지속가능경영 담당자는 "ESG 중심의 지속가능경영 투자는 글로벌 투자사들이 이미 2010년부터 장기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고 있다. 투자사 입장에서는 단기 이익이 중요한 투자도 있지만, 5년, 10년 이상을 예측해야하는 장기 투자도 있다. 특히 연기금 투자가 그런 투자이다. 그런 투자를 잘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중장기 리스크가 적은 기업을 찾아야 하는데 중장기 리스크는 대부분이 사회, 환경 리스크이기 때문에 이런 리스크를 잘 관리하고 있는 기업이 바로 ESG투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ESG투자는 2030년까지 50%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고 말했다. 

 

한편,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시장 또는 국내 시장만 바라보는 기업들은 유럽과 미국에서 떠들석한 지속가능경영, CSR이 당연히 다른나라 얘기로 들릴 수 밖에 없다. 이런 부류의 기업들은 'CSR=사회공헌' 이라고 이해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나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에서는 CSR이 사회공헌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어떤 사회복지단체가 기부와 자원봉사를 잘하면 착한기업으로 인증해주는 캠페인을 한다길래 강하게 반대하는 의견을 냈었다. 그 단체의 벤치마킹 사례는 중국이었다. 중국상공회의소는 기부를 많이하면 CSR을 잘하는 기업이라고 상을 준다. 내가 일했던 기업도 중국지사에서 사회복지시설에 기부를 조금했더니 CSR 상 받으러 오라고 해서 받아온 경험이 있다. 기업의 다른 것은 살피지 않고 오로지 기부금 내역만 보고 상을 준다. 

 

그렇지 않은 기업도 아주 일부 있지만 CSR 영역에서 중국기업들은 대부분 아직 바닥에 바닥 수준이다. 기업지배구조, 인권, 노동권, 소비자보호, 공정거래, 윤리경영(부패) 등 CSR의 핵심영역에서 우리나라 기업보다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중국의 CSR을 벤치마킹하다니 거꾸로 가도 한참 거꾸로 가는 일이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 공급사슬에 속한 기업들은 생존과 성장을 위해 꾸준히 그 수준을 따라가겠지만 국내와 중국, 인도, 동남아 시장을 바라보는 기업들은 당분간 우물안 개구리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시원한 우물이 갑자기 뜨거운 냄비로 돌변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예측한다.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기업들이 우리보다 CSR을 더 잘하는 시기가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나라 기업들이 유럽과 미국 시장에 생각보다 매우 빠르게 진출하고 있고 무엇보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대학에서 지속가능경영과 CSR을 공부하는 거의 대부분의 해외 유학생들이 중국과 인도 친구들이다. 이들이 공부를 마치고 자국으로 돌아가 기업들의 핵심인재가 되면 상황은 빠르게 변할 수 있다.     

 

그때 잘할 걸 후회하지 말고 빨리 우물 밖 세상을 봐야 한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우물 밖으로 나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생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기업이 앞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지구는 하나고 시장도 매우 빠르게 하나가 되가고 있다. 하나된 글로벌 시장에서 선택받는 기업이 되기위해서는 빨리 기업의 수준을 높여놔야 한다. 기왕에 벤치마킹을 하려고 한다면 쉽고 낮은 수준이 아닌 높고 어려운 수준을 해야한다. 그게 벤치마킹의 상식아닌가?

 

 

 

3. 능동형 CSR의 세번째 방향 : 지속가능경영을 넘어 REGENERATION

 

변화의 방향을 제대로 알기위해선 변화를 주도하는 선두, 즉, 화살촉이 되는 존재들을 살펴보면 된다. 지속가능경영을 비롯해 업계의 선두가 되고 있는 유니레버, 파타고니아, 인터페이스, M&S, 네슬레, 러쉬 등을 보면 지속가능경영이 최종 목표가 아니라 벌써 다른 수준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그림에서 수동형 CSR은 "CSR 1"에 해당한다. 비즈니스 가치사슬 자체와 비즈니스 가치사슬과 관련된 이해관계에서 발생하는 마이너스 사회, 환경적 가치를 줄이거나 없애는 일이다. 현재 CSR, 지속가능경영 글로벌 스탠다드의 요구사항은 여기에 집중되어 있다. 이 일만 해도 끝이 없는 일이고 우리나라 기업들에게는 하늘나라와 같은 이야기이다.

 

그런데, 화살촉이 되고 있는 기업들은 CSR 1도 당연히 해야하지만 CSR 2도 동시에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동안 기업들이 싸질러 놓은 마이너스가 너무 많기 때문에 지금 발생하는 마이너스만 줄여서는 결코 지속가능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19년 10월 유니레버 본사를 방문했을때 유니레버의 지속가능경영 담당 임원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년 우리가 판매하는 플라스틱 용기보다 훨씬 더 많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생하여 사용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재생하지 못했던 플라스틱 폐기물이 누적되어 있으니까요." 이것이 재생(regeneration)비즈니스 모델의 핵심 중 하나이다.

 

지속가능경영, CSR의 북극성인 아웃도어 의류회사 파타고니아는 2015년 뜬금없이 식품회사를 차리고 닥터 브로너스와 함께 재생유기농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의류산업에서 아무리 환경경영을 잘한다고 해도 계속 마이너스 사회, 환경가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모든 의류업체가 재생에너지와 재생원료를 사용하고 폐의류를 재활용한다고 하더라도 환경문제는 계속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파타고니아는 2025년까지 모든 의류의 원재료를 100% 재생가능한, 재생한, 천연 재료로 사용하겠다고 목표를 세우고 마이너스 가치를 줄여가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스스로 자각하고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재생유기농이다.

 

환경문제, 특히 지구온난화와 관련하여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일이고 또 하나는 식물을 이용해 온실가스를 많이 흡수하는 것이다. 파타고니아는 신재생에너지 100% 사용, 천연원료/재생원료 100% 사용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온실가스를 일반작물보다 20~30배 많이 흡수하는 재생유기농 작물재배와 이를 상품화하는 식품사업을 통해 플러스(+) CSR 가치도 만들어내겠다는 계획이다. 

 

기존의 마이너스 CSR 모델을 플러스 CSR 모델로 바꾸는 일은 오래 걸리고 많은 노력과 자원이 필요한 일이다. 이 일에만 매달려 있으면 지치고 포기할 수 있다. 그래서 CSR 1과 CSR 2를 동시에 병행하는 일이 앞선 기업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도 해야할 일이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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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1. 사회공헌을 잘하는 기업이 착한기업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는 일, 2. 지금 당장 우리회사와 관련은 없지만 미래를 위해 CSR 글로벌 스탠다드를 받아 들이는 일, 3. 마이너스 사회, 환경적 가치를 줄이는 CSR 뿐만 아니라 플러스 사회, 환경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CSR을 동시에 병행하는 일... 이것이 2020년대 우리기업들이 가야할 CSR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집중해야할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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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블로그 찾아 주셔서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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