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경영자와 CSR의 결합
스티브 잡스
한국 CSR의 암담한 미래..
지난 금요일 저녁 'CSR BOOK CLUB 시즌 1'에서 이런 주제로 잠깐 토론을 했습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3세, 4세 경영자들이 과연 CSR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참여자 중 모기업의 CSR담당자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경험상, 그 사람들의 시각과 사고방식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것 같아요. 자라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그 어려움의 원인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공헌이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일반 대중의 시각이나 관점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3세, 4세 경영자들을 개인적으로 공격할 의사는 추호도 없습니다만, 성장환경상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했고, 평범한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만나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우리사회의 불평등, 빈곤, 실업, 환경 문제들에 대해 공감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JS일보 열살 손녀의 운전기사에 대한 언행, TV 드라마 SKY캐슬에서 등장하는 모습은 우리나라 부자집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제왕적 경영방식과 가족 세습이 강력하게 구축된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에서 아무리 사외이사제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오너일가를 견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기업의 중요한 경영방향에 해당하는 CSR의 성패도 오너나 최고 경영자의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제가 지난해 논문을 쓰면서 우리나라 기업 중 CSR을 잘한다는 기업의 CSR 담당자들을 거의 다 만나봤습니다. 그 담당자들에게 "당신네 기업에서 CSR을 실행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을 했을 때 100%, 단 한명도 빠지지 않고 "최고 경영자의 CSR에 대한 관심과 의지"라고 답했습니다.
CSR(기업사회공헌 포함)과 리더십에 관한 연구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 논문들이 하나같이 "오너나 최고 경영자가 CSR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천의지가 있어야 CSR실행이 가능하다" 라고 결론을 맺습니다. 최고 경영자가 CSR에 대해 관심도 없고 추진의지도 없으면 아무리 외부 이해관계자가 이러쿵 저러쿵하고 글로벌 스탠다드가 중요하다고 실무자들이 떼를 써도 제대로 CSR을 실행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왕과 같은 기업의 오너나 최고 경영자, 그리고 그들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도록 눈치만 살피고 비위 맞추는 일에만 신경쓰는 가신(家臣)과 같은 임원들이 경영하는 한국의 기업들.. 그리고 세상물정도 모르고 사회문제도 모르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도 없는 3세, 4세들로 경영권이 이어지면서 한국 CSR의 앞날은 점점 암울해져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천재 혹은 악마.. 스티브 잡스
2015년 개봉하여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과 여우 조연상을 받은 <스티브 잡스>를 최근 다시 한번 봤습니다. 잡스를 신격화한 영화 2013년 <잡스>는 쫌 별로인 영화였지만, 마이클 패스벤더가 열연한 2015년 <잡스>는 추천할 만 합니다. 이 영화에서 잡스는 아이맥, 아이폰, 아이패드 등 디지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제품들을 만들어내면서 전 세계인의 삶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바뀌놓는 위대한 혁신가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는 가족과 사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와 소통은 힘들었던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을 강요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통제하려고만 했던 그의 리더십은 열렬한 추종자를 만들거나 아니면 끔찍하게 그를 경멸하는 비판자를 만들거나 하는 양극단적인 리더십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책이 수십권 나왔지만, 제가 알기로 그 많은 책들 중에 스티스 잡스의 사회적 가치와 관련된 내용을 소개한 책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 책들을 다 찾아본 것은 아니고 외국 논문 중에 스티브 잡스에 관한 책과 자료를 바탕으로 그의 리더십을 분석한 논문들이 몇개 있는데 그 논문들을 살펴보면 스티브 잡스는 평소에 기부나 사회공헌에 인색했고 사회적 책임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평가들이 나옵니다. 실제 스티스 잡스는 83억달러의 자산가였지만 잡스가 어디에 기부했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심지어 그의 부인과 딸에게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아 부인과 딸은 한때 생활보호대상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딸이 대학에 합격했을때 등록금을 주지 않아 애플의 공동창업자인 스티븐 워즈니악이 대신 등록금을 내주는 장면이 영화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1986년 잡스가 애플에서 퇴출된 후 '스티븐 P. 잡스재단'을 설립하기도 했지만 1년 만에 문을 닫았고, 1997년 다시 애플에 복귀한 후에도 수익성을 이유로 사내 자선프로그램을 폐지하기도 했습니다.
잡스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잡스가 기부에는 인색했을지 몰라도 그가 창조해낸 제품들로 인류의 삶과 소통방식은 한단계 진보할 수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행복을 주는 도구, 사회문제가 해결되는 도구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현금을 얼마나 기부했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협력업체인 폭스콘이 잘 해결해주리라 믿는다.
저는 잡스의 '개인적인' 기부나 자선활동보다는 그가 기업을 어떻게 운영했는가 하는 것이 CSR 관점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유명한 폭스콘사태를 보면 잡스는 CSR과 거리가 먼 경영자였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애플은 직접 소유한 제조공장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제품을 대만IT기업인 폭스콘의 중국공장에서 생산합니다. 그런데 애플이 한참 잘나가던 2000년대 중반 이후 폭스콘 중국공장들에서 많은 문제가 일어납니다. 강압적인 회사분위기와 과도한 초과노동 등의 문제로 회사내에서 파업이 계속 발생하고 노동자들이 자살을 기도해 실제 1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정도되면 우리나라에서는 사업장을 폐쇄했을텐데 당시 중국정부의 대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폭스콘은 애플외에도 다른 회사의 제품도 생산했습니다만 노동문제나 자살문제가 발생한 생산라인은 대부분 애플의 생산라인이었습니다.
당시 언론기사들을 보면 폭스콘의 한 노동자는 "회사 기숙사에서 잠을 자는데 새벽 2시에 갑자기 깨워 생산라인에 들어가라고 했다. 미국 애플본사에서 갑자기 부품 디자인이 변경되었다고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다. 휴일에도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 대해 애플의 전(前)디자이너 한명은 인터뷰에서 "잡스는 디자인과 디테일에 병적으로 집착했다. 그는 완성된 제품이라도 조금이라도 맘에 안들면 새로 만들라고 했다. 애플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그런 아주 사소한 디테일을 좋아하지만, 그때문에 디자이너들이나 제조업체들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잡스는 2011년 췌장암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2010년 이후 발생한 폭스콘 문제들에 대해서 잡스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는 반론도 있지만, 언론사들과 전문가들은 잡스의 전성기였던 2000년대부터 누적된 문제들이 2010년에 이르러 드디어 폭발했을 뿐이며, 잡스에게 길들여진 애플사의 경영진들이 잡스 사후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다는 평을 하고 있습니다. 잡스의 뒤를 이어 애플의 최고 경영자가 된 팀쿡은 2010년 폭스콘 공장을 방문하여 노동자들의 인권과 복지문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애플의 책임을 언급하기 보다는) 폭스콘이 알아서 잘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폭스콘의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폭스콘은 최근 노동자들의 작업여건과 환경을 개선하기 보다는 생산라인에 더 많은 로봇을 투입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시장에서의 CSR..
만일 애플과 같은 수준의 제품이 여러회사의 것이 있었다면 애플에서 CSR과 관련된 문제가 불거졌을때 윤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애플이 아닌 애플보다 조금더 윤리적이고 친인권적인 회사의 제품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플과 같은 기술적 수준과 만족을 소비자에게 선사하는 제품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경쟁업체로 우리나라 기업인 S사가 있지만, S사가 애플보다 더 윤리적이거나 더 친인권적이거나, 혹은 노동자들에게 더 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L사가 있긴하지만 스마트 폰에 있어서는 아직 애플과 S사에 비해 소비자 만족도가 많이 떨어집니다. L사의 스마트 폰을 쓰고 있는 저로서는 좀더 분발해주기를 바랍니다.
소비자들이 사회, 환경적으로 문제가 많은 회사의 제품 밖에 선택 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할까요? 애플의 사례를 보면서 CSR을 기업의 자발성 또는 최고 경영자의 리더십에만 맡겨두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스티브 잡스가 경영에서 물러나고 폭스콘 사태를 겪은 후 애플은 협력업체들의 인권보장과 노동환경을 개선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많이 뒤늦은 감이 있지만 아동노동이나 과도한 초과노동이 발견된 협력업체와 거래를 끊고 CSR 감사팀을 현지 공장에 주기적으로 파견하고 있으며 CSR과 관련된 보고서도 발간하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 생전에 이런 변화가 일어났다면 그는 좀더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재벌 2,3세는 아니었지만 CSR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좋은 경영자로 기록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의 독선적이고 통제중심 경영으로 인해 애플본사를 비롯한 협력업체들의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기술혁신과 뛰어난 제품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사람보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애플의 생산라인에서 고통을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16명의 중국 노동자들이 아이폰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에는 CSR의 선구자 역할을 한 멋지고 훌륭한 최고 경영자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블로그 찾아주셔서 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따숩게 입고 다니시고 감기 조심하십시오.
Balanced CSR 유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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