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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anced CSR & ESG

지속가능보고서 무엇을 위한 것인가? 서부발전 사고를 애통해하며....

by Mr Yoo 2018. 12. 15.




서부발전 사고를 애통해하며...

지속가능보고서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삼가, 김용균씨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 12월11일 새벽 한국서부발전(주) 태안발전소에서 석탄 컨베어벨트 아래 떨어진 석탄을 제거하려다 사고로 숨진 김용균(24세)씨의 명복을 빕니다. 김용균씨는 서부발전의 외주업체 비정규직 직원이었습니다. 이번 사고는 지난 2016년 5월 서울 구의역에서 발생한 스무살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어처구니없는 사고사와 소름끼칠만큼 똑같습니다. 원청업체인 서부발전은 (경영혁신의 탈을 쓴) 비용 절감을 위해 위험한 작업을 외주업체에 맡겼고, 외주업체는 원청업체의 낮은 용역비를 맞추기 위해 2인 1조로 이루어져야만하는 위험천만한 작업에 한명만 투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비시에는 컨베어벨트를 멈추는 것이 안전수칙임에도 불구하고 설비를 멈추지 말라는 지시에 따라 일을 하다가 참변을 당했습니다. 2인1조로 작업이 이루어졌더라면, 서부발전에서 원칙대로 안전수칙을 지키게끔 작업지시를 했더라면 꽃다운 나이의 청년이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청년들에게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 말라고 할 수 있는가?


구의역 사고 후 2년이 지나도 똑같은 사고가 반복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큰 소리치던 국회위원들은 자신들의 연봉을 높이는 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처리하면서.. '안전관리와 위험직군에 대한 외주화를 방지하는 법안'은 기업의 자율성과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보수야당의 억지스런 주장에 막혀 올해를 넘기고 있습니다. 보수언론과 기업 이익집단들은 청년실업에 대해 '요즘 청년들이 눈높이가 너무 높아서 편한 일만 선호한다' 거나 '중소기업들은 사람구하느라 애먹고 있는데 청년들은 모두 대기업 취업과 공무원만 되려고 한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의역, 서부발전과 같은 사고가 계속 일어나는 상황에서 젊은 청년들에게 목숨 걸고, 미래도 보장되지 않는 직장을 선택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기성세대의 폭언, 폭력입니다. 젊은이들이 최저 임금을 받고 목숨을 걸며 일해야 하는 사회를 만든 책임은 지금의 기성세대에게 있습니다. 청년들이 지금 이 사회를 만든게 아니잖습니까? 저를 비롯한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가린다는 말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청년들에게 미안해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남은 에너지를 다 쏟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Beyond Energy Create Happiness..??


'국민행복을 창조하는 에너지 기업' 이라는 제목의 한국서부발전 지속가능보고서를 들여다봤습니다. 한국서부발전은 지난 2011년 지속가능보고서 발간을 시작한 이후 올해로 여덟번째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이보다 더 좋은 회사는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엄청난 경쟁률의 공채를 뚫고 정규직으로 입사하면 고액연봉이 보장된 아주 안정적인 좋은 회사입니다. 뿐만 아니라 안전관리와 협력(외주)기업 상생에 관련해서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잘 갖춰놓고 있습니다. 정규직에겐 천국과 같은 회사이고 지속가능보고서에 나온 완벽한 안전관리 시스템이 현장에서 잘 작동된다면 안전사고도 발생할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보고서에 기록되지 않는 사고들..


서부발전 지속가능보고서에 기록된 안전재해발생률은 위의 그림과 같이 0에 가까운 0.07입니다. 지난 3년간 안전사고 발생건수도 겨우 2건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보고서에 제시된  재해발생 데이터는 외주업체를 제외한 서부발전 정규직에 대한 것입니다. 실제통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5년간 서부발전의 태안, 서인천, 평택 등의 발전소에서 근무하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5명, 부상자는 39명이나 됩니다. 이 중 95.5%인 42명이 모두 외주업체직원입니다. 나머지 2명은 정규직원으로 위의 표와 같이 보고서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렇듯 외주업체직원들의 재해를 통계에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서부발전은 '무재해 인증'을 받았고 외부에서 안전경영관련 상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거짓 성과로 산재보험료 22억4천679만원을 감면받기도 했습니다. 이 돈은 외주업체직원들의 목숨, 부상과 바꾼 돈입니다.   






이벤트와 선포식.. 보고서에만 존재하는 필수 안전수칙


서부발전 지속가능보고서에 자랑스럽게 등장하는 '한국서부발전 안전수칙(WP-STAR10)' 엔 '위험인지시 작업중지 및 작업거부권행사'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또한 보고서에는 "현장에서는 한국서부발전 임직원은 물론 협력기업 및 방문객 모두가 본 수칙을 예외없이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당 5m의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위험천만한 컨베어벨트를 멈추지도 않고 그 아래에 떨어진 석탄을 제거하러 들어간 김용균씨에겐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용균씨의 사고가 확인 된 시점에도 그 컨베어벨트는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서부발전측은 방송 인터뷰에서 컨베어벨트가 움직이는 상황에서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동한 김용균씨의 개인 부주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주업체는 평소 일상적인 정비활동에서 컨베어벨트를 멈추는 일을 서부발전에서 용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한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위험을 인지하면 작업을 중지해야 하는 안전수칙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이 스크린 도어 안에 들어가 작업을 하면 다른 한 사람은 밖에서 안전을 점검해야 하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구의역에서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1억짜리 홍보 팜플렛 = 지속가능보고서


2004년 삼성물산, 포스코, 현대기아자동차가 국내에서 처음 발간하기 시작한 지속가능보고서는 2018년 현재 국내 120여개 공/사기업이 발간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보고서의 원래취지는 해당기업의 지속가능경영 현황과 성과를 글로벌 가이드라인에 맞게 작성하여 내외부 이해관계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입니다. 기업은 스스로 솔직하고 투명한 공개를 통해 더 나은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경영을 실천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 지속가능보고서의 원래 역할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속가능보고서는 '솔직함, 투명함, 스스로'와는 거리가 한참 멉니다. 지속가능보고서를 한번이라도 제작해본 실무자들은 잘 알겠지만,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속가능보고서는 '어떤 대행업체를 얼마에 선정하는가'의 문제일 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지속가능경영의 실체를 반영하고 있지 못합니다. 


지속가능보고서를 담당하는 실무자들을 만나 이야기 해보면 손가락에 꼽을 만큼 소수의 기업을 제외하고는 "대행업체에서 원고작성과 디자인, 글로벌 가이드라인에 맞게 편집까지 해오고, 설령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잘 채워서 만들어 준다"고 이야기합니다. 실무자가 할 일은 어느 업체가 우리회사의 보고서를 좀더 화려하고 잘나 보이게 만들어 줄까를 고민해서 선택하는 일입니다. 


대개의 지속가능보고서들이 1억에 가까운 거액의 돈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중견중소기업들이 지속가능보고서를 내고 싶어도 비용때문에 못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까운 사이인 CSR 컨설턴트는 "우리나라 CSR컨설팅은 기업들이 CSR을 잘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보고서 작성을 대행해주는 역할만 하고 있다"고 현실을 개탄했습니다. 




지속가능경영과 상관없는 지속가능보고서..


저 또한 회사에서 지속가능보고서를 만드는 실무자입니다. 지속가능보고서가 사회적책임이나 지속가능경영의 개념을 기업내부 임직원들에게 알리는 역할, 글로벌 가이드 라인을 경영활동에 내재화시키는 역할은 어느정도 하고 있다고 보지만, 보고서의 내용과 경영현장에서의 실제 실천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지속가능보고서 제작을 대행해 주는 업체들도 이런 차이를 잘 알고 있으며, 오히려 이 차이를 얼마만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메이크 업 해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대행업체의 능력(?)이라고 인식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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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발전의 지속가능보고서와 김용균씨 사고기사를 모니터 한 화면에 같이 띄워놓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울화가 치밀고 욕이 나오고 CSR 담당자로서 무력감과 자괘감이 듭니다. 지속가능보고서 하나 제대로 만든다고 이런 사고가 완벽히 예방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지속가능보고서를 기업의 치부를 가리는 화장도구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지속가능보고서의 원래 용도와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며 그린워싱(Green Washing)과 같은 치졸한 짓입니다. 


구의역, 서부발전사고 말고도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숱한 산업재해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사고도 있지만 작업장의 안전수칙만 제대로 지켰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가 대부분입니다. 대기업 정규직을 위한 근무환경과 안전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지만 반대로 외주업체 비정규직의 근무환경과 안전은 정규직의 더 좋고 안전한 근무환경을 만들어 주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이 이 사건에서 멀어지면 서부발전은 이번 사고의 원인을 외주업체 비정규직직원의 개인 부주의로 돌린채 사고를 무마하고 지속가능보고서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무재해기록을 자랑할 것입니다. 내년 서부발전 지속가능보고서를 기대하겠습니다. 내년 보고서에 이번 사고가 어떻게 기록되는지, 외주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전문제해결을 위해 어떤 개선활동을 했는지를 꼼꼼히 살펴보고 이 블로그에 잘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안전관리 및 위험직군 외주화 방지법안'이 하루속히 통과되기를 촉구합니다!! 그리고, 서부발전을 비롯한 기업에서 CSR을 담당하고 지속가능보고서를 제작하는 실무자들 제발 우리 정신 좀 차립시다. 대행업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좀 제대로 CSR을 해봅시다. 그래야 한다는 걸 우리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Balanced CSR 유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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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블로그 찾아주셔서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다음 주는 오늘 올리기로 했던 'CSR의 선구자들' 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마무리 잘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