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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anced CSR & ESG

CSR의 역사 4편_1970년대_CSR과 신자유주의

by Mr Yoo 2019. 6. 1.



CSR의 역사 4편

1970년대_CSR과 신자유주의



주류가 되기 위한 조건..


새로 등장한 어떤 개념이 사회의 주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요? 그 개념과 관련된 문제나 이슈가 일어나야 할 것이고, 그것에 대해 저명 인사들과 미디어들이 관심을 갖고 여러차례 얘기하고 보도도 해야 할 것이고, 그 개념과 직접 관련된 특정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그 개념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학자들도 그것에 대해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책을 내야하며,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해석들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권력인 기업들이 그 개념을 이용하여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고 마케팅을 하며 다른 기업보다 그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광고하며 경쟁전략, 차별화 전략으로 이용해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 새로운 개념이 완전히 사회화되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이 그 개념을 수용하고 그것을 확산시키기 위한 제도와 법을 만들며, 그 개념과 반대되는 일이 일어날 경우 법을 통한 제재나 불이익을 당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야 어떤 새로운 개념이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CSR은 어떤가요? 위의 문단에 "개념"이란 단어를 CSR로 바꿔서 읽어보시면 CSR이 우리사회의 주류가 되기 위한 조건이 됩니다. 지난 CSR의 역사 3편에서 1970년대 CSR이 서서히 사회의 수면위로 떠오르는 배경들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CSR이 사회의 주류가 되지 못하고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밖의 일, 소수의 사람들만 관심을 갖고 자기들끼리 중요하다고 외치는 1970년대 상황에 대해 설명하려고 합니다.              


우선, 기업의 사회적 책임, 즉 CSR이란 '용어'가 사회적 개념화(사회의 일반 대중이 사용하는 용어)가 된 것은 언제 부터일까요? CSR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학자들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부터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반 대중이 아니라 학계에서 CSR이 연구의 주제로 본격적으로 다뤄지고 어느정도 개념화된 것은 1970년대라 할 수 있습니다. 


위의 도표는 2003년 Mohan이란 학자가 1920년대부터 2002년까지 세계 유명저널에 개제된 CSR과 관련된 논문들의 제목과 키워드를 통계학적인 방법으로 조사한 결과에다가 2011년 Gond와 Moon이란 학자가 2003년부터 2011년까지의 분석자료를 더해 만든 표입니다. 이 표를 보면 '비즈니스 윤리(Business Ethics)'와 '기업의 자선활동(Corporate Philanthropy)'은 1925년 이전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개념이고 '비즈니스의 책임(Business Responsibilities)' 또는 '기업가(Businessmen)의 사회적 책임' 이란 용어는 1950년대말과 1960년대에 등장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말과 1970년대에 들어 드디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란 용어가 학계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1970년대 CSR이 경제, 경영학계에서 개념화되고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전체의 주류가 되지 못한 원인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모든 원인을 다 살펴보긴 어렵고 1970년대 미국의 정치권력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경제학과 CSR의 관계를 소개하겠습니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deman)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미국은 개인의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권리)로 생각해서 국가권력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화당'과 사회의 안정과 공평한 개인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민주당', 이 양당을 중심으로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학계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1970년대는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1969~1974)』, 『제럴드 포드(1974~1977)』 그리고 민주당의 『지미 카터(1977~1981)』가 미국의 대통령이었습니다. 


1970년대 미국정치사를 보면 재미있는 특징을 하나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싱크탱크(Think tank)'가 정책결정에 큰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싱크탱크' 란 정책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전문성과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독립적이고 비영리적인 기관을 말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의회에서 공식적인 로비가 허용되고 있기 때문에 싱크탱크들도 대부분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보다는 공화당 또는 민주당  중 한편을 지지하며 로비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고 여론(특히 지식계층을 대상으로)을 형성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양당 상하의원들 대다수가 주요 싱크탱크의 멤버들이기도 하며 이 싱크탱크들의 든든한 후원자는 기업들입니다.


기업들은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공화당 또는 민주당 성향의 싱크탱크를 후원하며 따라서 싱크탱크의 연구자들은 후원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합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 매년 수많은 총기사고가 일어나지만 여전히 총기규제에 대한 법안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총기제작기업들의 막대한 후원을 받는 싱크탱크와 로비스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미국 정책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싱크탱크는 약 300개 정도이며 이중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싱크탱크들은 대부분 1970년대 이후에 세워진 기관들입니다.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싱크탱크는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ititution), 도시연구소(Urban Institute) 등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시간에 소개한 1970년대 CSR의 등장배경이 되었던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 환경운동의 태동, 히피문화의 확산 등은 권력을 잡고 있던 공화당에게는 영 마땅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공화당과 공화당을 지지하는 싱크탱크 그리고 그 싱크탱크에 멤버인 주요경제학자들은 CSR의 등장이 절대 반갑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하원을 장악하고 있던 민주당이 저소득층에 대한 공공사회정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이를 위해 기업과 기업가에 대한 세율인상을 추진하자 공화당은 공화당 계열 싱크탱크와 학자들을 이용해 반대 여론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 9월13일자 뉴욕 타임즈에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공화당 싱크탱크의 멤버였던 『밀턴 프리드먼(1912~2006년, 오스트리아 출생, 시카고대학교 교수, 싱크탱크 전미경제연구소/후버연구소 책임연구원, 197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의 기고문이 실립니다. 이 기고문의 제목은  "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 (비즈니스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이익을 증가시키는 것)" 입니다. 이 기고문에서 프리드먼은 사회책임이라는 명분하에 이뤄지는 기업의 기부를 위선적인 겉치레 또는 경영자 개인의 명예욕을 채우기 위한 행위하고 표현하고 기업의 책임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이익을 확보하고 주주에게 배당을 지불하며 노동자에게는 급여를 지급하고 국가나 사회에는 세금을 납부하는 역할을 다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 기고문은 공화당을 중심으로 미국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정책가들에게 강력한 이론적 바탕을 제공하였으며 이후 수많은 논문과 책에 인용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주류 경제계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은 단지 이익창출뿐이라는 개념에 묶여있습니다. 




영화 "VICE" 가 묘사한 미국의 자유주의


지난 4월에 개봉한 영화 VICE(미국에서 부통령을 Vice President라고 함)를 보면 앞에서 설명한 1970년대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이라크 전쟁까지 미국의 정치인이자 (아들) 조지부시대통령때 부통령을 역임한 『딕 체니』를 중심으로 공화당의 자유주의자들이 어떻게 국가정책을 결정하고 권력을 유지했는지에 대해 아주 재밌고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입니다. 명배우 '크리스찬 베일'의 정치인 연기가 정말..... 짱입니다.   



그리고, 지미카터..


워터 게이트(1972년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민주당 사무실에 닉슨 대통령이 도청기를 설치한 것이 들통난 일)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닉슨 대통령(1969~1974)을 대신해 부통령 제럴드 포드(1974~1977)가 집권하는 동안 기업들의 엄청난 로비자금이 공화당을 통해 의회로 들어가면서 미국의 기업들은 거의 아무런 제재와 책임을 지지 않은채 미국과 세계로 자유롭게 뻗어나갔습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기업이 원인이 되는 글로벌 사회, 환경문제의 씨앗이 바로 이때 뿌려진 것입니다.  따라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말은 1970년 중반까지 미국주류사회에서 거의 표면에 들어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반대편 민주당 입장에서는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는 사회,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범인 기업의 책임과 역할을 마냥 간과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977년 대통령 선거에서 포드가 낙선하고 지미 카터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지미카터(1924~)는 지금도 여전히 해비타트를 비롯해 사회, 환경,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민간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시민운동가입니다. 그는 상원의원과 대통령 재임당시부터 세계평화와 동서냉전의 종식을 위해 노력했으며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리고 화석연료를 대체(1970년대 중동의 정세 불안정으로 인한 세계적인 오일쇼크의 영향도 있었습니다)할 새로운 에너지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백악관 지붕에 태양광 집열판을 최초로 설치한 대통령이기도 하며 퇴임이후 지속적인 시민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CSR은 다시 수면위로 올라왔습니다. 공화당과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기업들 때문에 등살을 펴지 못하던 수정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은 기업의 사회, 환경적 책임을 다시 쟁점화했고 기업의 사회, 환경적 책임이 결코 기업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성과와 지속가능한 경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학자가 바로 아치 B. 캐롤(Archie B. Carroll)입니다.




캐롤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


1979년 미국 최고의 경영학회지 AMR(Academy of Management Review. 여기에 논문한편 실으면 국내 어지간한 대학의 교수자리는 바로 차지할 수 있습니다.)에 조지아 대학의 아치 캐롤교수가 『기업성과에 대한 3차원 개념모델 / A Three-Dimensional Conceptual Model of Corporate Performance』 이라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이 논문에서 캐롤은 기업의 성과가 단순히 부를 창출하는 경제적 부분에 제한되어 있는 것만은 아니며 사회와 환경의 다양한 측면에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기업이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측면의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한다면 반대로 그것을 창출해야 할 일정정도의 책임이 존재한다는 논리를 펼칩니다. 이런 논거를 중심으로  ' 비즈니스의 사회적 책임은 그 해당 시점에서 조직에 대한 사회의 경제적, 법적, 윤리적 및 임의적 기대를 포함한다' 고 하였습니다. 이후 1991년에 임의적 기대를 자선적 책임으로 구체화하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CSR 피라미드 개념'을 도식화하였습니다. 아래 그림과 같이 1979년 논문에는 아직 피라미드 형태를 갖추고 있지는 않습니다. 논문원본을 첨부합니다.


A Three-Dimensional Conceptual Model of Corporate Performance.pdf



1970년대의 대부분을 기업의 무한한 자유를 용인하는 정책을 편 공화당과 그것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밀턴 프리드먼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CSR이 사회의 주류화가 되지는 못했지만, 반대편에서 CSR을 꾸준히 개념화하고 체계적으로 연구한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자세히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캐롤을 비롯한 여러학자들이 점점더 거대해지고 강력해지는 다국적 기업들의 폭주를 막지 못하면 사회, 환경적으로 인류에게 큰 재앙이 올것이라는 걱정과 염려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에도 역시 CSR은 주류가 되지 못하고 여전히 학자들의 연구실과 논문에만 머물러 있게 됩니다. 1980년대 CSR의 역사는 다음 회에 소개하겠습니다.  


CSR이란 개념이 아무래도 미국에서 건너오다 보니 미국을 중심으로 CSR의 역사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시다시피 2000년대 초반까지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말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1970년대를 돌아보면 미국과 비슷하게 정권과 기업이 야합하여 정권유지를 위한 정치자금을 대기업들이 대고 권력은 엄청난 특혜를 대기업에게 제공했습니다. 그렇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성장기반을 마련한 대기업들이 지금까지 경제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것입니다.  권력과 돈이 결합하는 상황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싹을 틔우기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Balanced CSR 유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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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어느새 6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1월에 세웠던 상반기 계획의 절반은 커녕 1/10도 못 이뤘는데 벌써 6월입니다. 올해는 계획을 과하게 세운건지.. 아니면 제가 게을러 진건지... 아무래도 체력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더워지는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고 다음 주엔 5월의 CSR 이슈를 정리해보겠습니다. 블로그 찾아주셔서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A Three-Dimensional Conceptual Model of Corporate Performance.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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