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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anced CSR & ESG

CSR 체계 만들기(1) _ CSR 체계의 진화

by Mr Yoo 2020. 2. 3.



CSR 체계 만들기(1)

CSR 체계의 진화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

 

2008년 여름, 건설엔지니어링 회사의 사회공헌 담당자로 최종 면접을 볼 때 면접관이었던 사장님이 이런 질문을 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말해보세요?”. 내 대답은 평범했다. “어떤 일을 취미로 하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전문가라고 생각합니다”.

 

사장님은 그 대답을 할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을 이어 나갔다. “우리 같은 건설회사에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그림을 그릴 줄 아느냐 모르느냐입니다. 유승권씨는 경력직으로 우리 회사에 입사하는데 사회공헌의 그림을 그릴 줄 압니까?”

 

순간 머리속이 하얘지면서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건설회사에서 그림이라고 하면 설계도를 뜻하는 것 같은데, 사회공헌에서 설계도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적절한 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무슨 대답을 한 것 같기는 한데,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 보아도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뻔하고 허접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운이 좋았던지 입사에 성공했다. 그리고 입사 후 처음 몇 달 동안 열심히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 그림의 제목은 사회공헌 체계도였다.





지도와 설계도

 

사회공헌 체계도를 그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장님께 보고하기 전 직속 임원(상무, 전무)들에게도 확인을 받아야 하는데 사회공헌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거나 지식과 경험이 적은 임원들에게 체계도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몇 번이나 퇴짜를 맞고 의기소침해 있는 나에게 같은 팀의 선배가 이렇게 충고했다.

 

체계도를 너무 어렵게(전문적으로) 그리면 안돼... 체계도는 지도나 설계도와 같다고.. 지도는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고, 설계도는 건물을 어떤 모양으로 지을지 알려주는 건데, 지도와 설계도를 그린 사람만 알수 있게 그리면 무슨 소용이야.. ”

 

선배의 충고는 전문가에 대한 나의 이해를 더 깊게 했다. 진짜 전문가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면에서 나는 아직 전문가가 되려면 멀었다.

 

CSR을 잘하려면 잘 그려진 그림, 체계도가 필요하다. ‘그런 거 없어도 우리 회사는 CSR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정말 그렇다면 그 회사 CSR 실무자의 역량이 뛰어난 것이다. 그 실무자의 머릿속에는 분명히 멋진 체계가 존재할 것이다. ‘그런 게 있기는 한데 홈페이지에만 있고 실무에 적용을 잘하지 않는다고 하는 회사들은 그 체계를 직접 만들지 않았거나 (돈 주고 외부 컨설턴트가 만들어 줬거나) 체계적으로 일하는 것 보다는 회장이나 사장의 입만 보고 일을 하는 회사일 것이다.




 

시스템 어프로치!! 시스템 매니지먼트!!


경영학에서 배우는 시스템 경영은 정말 중요하다. 사람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기업의 수명은 짧다. 미국에서 조사한 바이지만 포춘 200대 기업의 수명이 채 30년이 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점점 더 줄어서 25년 안팍이 되고 있다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2001)’를 저술한 짐 콜린스는 10년도 되지 않아 다시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2009)?’를 출판해서 또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었다. 2001년에 위대한 기업으로 소개했던 기업들이 2009년에는 몰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짐 콜린스는 빠르게 성장하고 빠르게 소멸하는 기업들의 공통된 특징은 경영의 원칙이나 체계 없이 창업자나 최고 경영자의 개인적인 역량에만 의존하고 있는 점이라고 했다. 반면 50년 이상 오래가는 기업들은 탄탄한 경영 시스템과 숙성된 경영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CSR도 시스템 어프로치, 시스템 매니지 먼트가 필요하다. 외부에서 요청하는 아이템 중에 마음에 들고 트랜드에 맞는 그리고 윗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지원하는 방식의 사회공헌만 하던 시절에는 체계도라는 것이 딱히 필요 없을 수 있겠지만, CSR이 사회공헌을 넘어 비즈니스 영역으로 점점 더 확대되고 결합하면서 이제는 눈치나 센스, 정보력, 네트워크, 인간미, 좋은 관계 등 실무자 개인의 역량만으로 일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CSR 체계도를 어떻게 그려야 잘 그렸다고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 칭찬받고 말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회사의 CSR이 비즈니스와 잘 결합하고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 리딩 기업들처럼 지속가능경영까지 확장되어 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CSR 체계가 진화하고 있다.

 

CSR 체계도를 잘 그리는 방법을 알기 전에 먼저 알아둘 것은 최근 CSR 체계가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글로벌 리딩 기업들을 중심으로 지속가능경영 체계가 진화하고 있는 것인데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우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들도 대부분 지속가능경영 체계를 CSR이 그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지속가능경영 체계를 실무적으로 CSR 체계로 불러도 무방하다고 본다.

 

하지만, 멀지 않은 시점에 우리나라 기업들의 CSR팀 명칭도 지속가능경영팀으로 바뀔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 리딩 기업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10년전부터 CSR팀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지속가능경영팀으로 이름을 바꾸기 시작했다.

 

기존 CSR 팀이 주로 사회공헌과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담당했었다면 지금의 지속가능경영팀은 E(환경), S(사회), G(지배구조) 영역 전부를 커버하고 있다. 조직의 명칭과 역할(R)&책임(R)이 바뀌니 당연히 업무 체계도도 바뀔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비전과 미션이 간결하게 하나로 통합되고 있다.

 

CSR 체계 진화의 가장 큰 특징은 비전과 미션이 간결하게 통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통합이다. 하나는 비즈니스 비전/미션과 CSR의 비전/미션이 통합되고 있는 것이다. 앞선 CSR 스펙트럼에서도 계속 설명했지만 CSR이 비즈니스로 빠르게 확장하고 결합하고 있기 때문에 CSR의 비전/미션도 비즈니스의 비전/미션과 통합되고 있다.

 

또 하나는 비전과 미션의 기계적 통합이다. , 예전에는 비전과 미션이 별도의 문장으로 존재했는데 지금은 하나의 미션 선언으로 통합되고 간결화 되고 있다. 기업의 이상향(예를 들면 글로벌 최고 OO기업)을 뜻하는 비전이 점점 사라지고 기업이 비즈니스를 하는 명분을 설명하는 미션 선언으로 통합되고 있다.

 

세계적인 경영전략, 마케팅 전문가인 필립 코틀러는 그의 책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2013)?’에서 앞으로 저성장 시대가 길게 이어질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오로지 성장만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하는 기업의 비전은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이루지 못할 꿈과 같은 비전보다는 기업의 구성원을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에게 비즈니스에 몰입할 수 있는 비즈니스의 진정한 존재 이유, 그리고 공감할 수 있는 비즈니스의 사명을 제시하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로운 기업이라고 했다.

 

실제 유니레버는 2015년 비즈니스와 CSR의 전략적 통합작업을 진행하면서 비즈니스와 CSR의 비전, 미션을 하나로 합쳐  우리의 목적은 일상생활에서 지속가능성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파타고니아의 경우 통합 미션이 우리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되 불필요한 환경 피해를 유발하지 않으며 환경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사업을 이용한다였다. 이 미션 선언을 201811월 이렇게 간결하고 강력하게 정리했다. “우리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사업을 한다로 말이다.




독자 모델에서 공통 모델로 변화

 

2010년 이전의 CSR 체계는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개성있게 만든 체계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2010ISO26000이 발표되고 2015년에는 UN SDGs가 발표되면서 글로벌 리딩 기업들의 CSR 체계가 점점더 비슷해지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그 기업만의 특별한 부분을 찾는 재미가 줄어 들었다.

 

재미는 줄었지만 CSR체계가 유사해진다는 의미는 그만큼 기업들이 집중하는 사회, 환경문제가 좁혀졌다는 것이고 (그것은 그 문제들이 정말 심각한 문제라는 의미이다) 우리 기업들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지속가능경영의 TBL(Tripple Bottom Line)E(환경), S(사회), G(거버넌스)를 글로벌 거대 투자사와 은행들이 투자와 대출의 중요한 평가지표로 활용하고 ESG 평가를 필수로 하는 SRI(사회책임투자)의 비율을 빠른 속도로 증가시키자 기업들은 CSR 주요 영역을 ESG로 거의 동일하게 고정하고 있다. 이것은 좋은 의미이다. 기존에는 환경경영에만 또는 사회공헌에만 CSR활동을 집중하던 기업들이 이제는 환경과 사회 모두 신경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홈페이지와 보고서에서 KPI..!!

 

가장 놀랍고 반갑고 그토록 원했던 변화는 CSR체계가 드디어, 드디어!! CSR 팀이 아닌 비즈니스팀의 KPI에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또한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 리딩기업에서는 10년 전부터 일어난 일인데 우리나라엔 10년 걸려 도착했다. 비행기타면 넉넉잡아 15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인데, 10년이나 걸렸다.

 

SK2019년부터 사회적 가치 지표를 KPI50% 반영했으며, 기업시민을 선포한 포스코도 적지 않은 비율을 임원 KPI에 적용하여 비즈니스에서 사회적 가치를 발생시킬 수 있는 방안을 열심히 찾고 있다.

 

2000년대 중반 기업 임직원 봉사활동의 붐이 일어났을 때 임직원 봉사활동 참여율을 임원과 부서별 KPI에 적용했던 기억이 있다기업별로 봉사활동 참여율이 얼마고 몇시간을 했고 하는 것들이 언론에 발표되면서 경쟁적으로 봉사활동을 했다. 돌이켜 보면 숫자를 채우기 위한 무의미한 봉사활동이 정말 많았다. 지금은 주 52시간 근무와 자율적인 기업문화 등이 확산되면서 임직원 봉사활동을 KPI에 넣는 경우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제대로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찌되었건 홈페이지와 지속가능보고서에만 존재하던 CSR 체계가 일반 비즈니스 부서의 KPI로 적용되는 것은 우리나라 CSR계의 획기적인 사건이자 전환점이다. SK와 포스코의 시도가 꼭!! 반드시!! 성공하기를 바란다.

 

CSR 체계도 어떻게 그리면 잘 그릴 수 있을까?

 

... 에 대해서는 다음 주부터 하나씩 차근 차근 설명해 드리겠다. 2월 한 달 동안 CSR 체계도에 대한 글을 실을 예정이다. 재미는 없겠지만 실무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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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블로그 찾아주셔서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혹시 블로그 내용과 관련해서 하실 말씀이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메일로 연락주십시오. (gogo19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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